고요한 곳에서 고요해지는 것은 참된 고요함이 아니니, 소란스러운 곳에서 고요해지는 것이 곧 본성의 참된 경지이다. 즐거운 곳에서 즐거워지는 것은 참된 즐거움이 아니니, 괴로운 마음속에서 즐거워진 뒤에야 마음의 참된 움직임을 볼 수 있다. [前088. 靜中靜非眞靜, 動處靜得來, ?是性天之眞境. 樂處樂非眞樂, 苦中樂得來, ?見以體 之眞機.]
“…조용한 곳에서 차분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즐거운 곳에서 즐거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환경에 따라 가지게 된 마음이지 본성에 따른 작용은 아닙니다. 떠들썩한 시위의 현장에서도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처럼, 아무런 근심도 고민도 없었던 천진했던 본성을 떠올려 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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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하여 쓸쓸한 모습은 왕성하고 가득 찬 가운데 있고, 생겨 자라나는 기운의 변화는 곧 시들어 떨어지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편안함에 거처하여도 마땅히 한 가지 마음으로써 환난을 근심해야 하며, 변고에 처해서도 굳게 여러 번 참아 성공을 도모해야 한다. [前117. 衰颯的景象, 就在盛滿中, 發生的機緘, 卽在零落內. 故君子居安宜操一心以慮憂, 處 變當堅百忍以圖成.]
“사귄 지 오래되어 권태기에 접어든 커플도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들어 떨어진 잎도 예쁘게 꽃피우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만물은 모두 생성과 쇠락의 과정을 거치며 발전하고, 이를 반복하며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상황이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혹시라도 다가올 환난과 변고에 대해서도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사건건 걱정을 달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상적인 편안함 속에서도 너무 흐트러지지 말고 늘 자신의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 p.84
가정에는 진실로 참된 부처가 있고 일상생활에도 참된 도가 있다. 사람이 정성스러운 마음과 온화한 기운, 기쁜 얼굴빛과 부드러운 말로 부모 형제간에 한 몸처럼 통하게 하고 뜻을 교류하게 할 수 있으면 호흡을 고르게 하거나 * 마음의 본바탕을 살펴보는 것 ** 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前021. 家庭有個眞佛, 日用有種眞道. 人能誠心和氣, 愉色婉言, 使父母兄弟間, 形骸兩釋, 意 氣交流, 勝於調息觀心萬倍矣.]
“부처는 반드시 절이나 경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만날수 있습니다. 가정 속의 부처는 나의 부모님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화목한 가정 속에서 부모 형제간에 뜻이 잘 맞으면 특별한 수양법을 쓰지 않아도 절로 참다운 도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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