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이 5년 전 세상을 떠나신 이후, 아들 내외인 저와 남편은 시아버님이 살고 계시던 집과 서재의 유품들을 조금씩 정리해 나갔습니다. 남편은 시아버님이 정년퇴임 이후 오피스텔 연구실에서 15년 동안 사용하시던 의자의 천을 새로운 천으로 직접 구해서 갈아 끼우고, 수십 년 동안 수집하신 LP 음반 1천여 장을 들여놓을 수 있는 참나무 책장을 장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남편이 보관 해오던 엽서꾸러미에 항상 마음이 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덴마크에서 온 엽서들이었습니다. 그 엽서들은 1978년부터 1979년까지 꼬박 1년 동안 시아버님이 우편으로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엽서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서 남편과 약속을 하게 됩니다.
‘우리 아버님 5주기 정도가 되면 이 엽서들이 들어 있는 작고 아름다운 책을 냅시다. 그리고 기념모임도 마련합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왕립극장을 지나면 광장 동쪽에 커다란 닻이 놓여 있고 크고 작은 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는 운하가 있습니다. 이 운하 일대가 이른바 뉘하운(Nyhavn), 곧 ‘새 항구’라는 뜻으로 널리 알려진 뱃사람들의 거리입니다. 부두의 커다란 닻은 2차대전 때 전사한 덴마크 선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그 앞에는 언제나 꽃다발이 놓여 있고, 이 마을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술집·디스코테크·문신집, 그 밖에 배와 선원들을 위한 온갖 것을 파는 점포들로 꽉 찬 이 거리는 밤에도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색의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며, 먹고 마시고 춤추는 걸쭉한 선원들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에 섞여 여인들의 요염한 웃음소리가 이방인의 가슴을 어지럽게 해줍니다.
--- 「Chapter 1 ‘뉘하운 운하거리」 중에서
간 밤 11시 경에 창문 덮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보았더니, 깜깜한 하늘에 별이 어찌 그리 크고 선명하게 반짝이는지. 북두칠성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국자 모양으로 걸려 있어 신기하기만 했다. 눈 덮인 북극의 산, 검푸른 산과 수없이 많은 호수들. 얼어붙은 빙하들이 오싹할 만큼 아름답다. 에스키모 어린이의 구김살 없는 웃음의 인사를 받아주렴. 7월 28일 현지 시간 16시 45분. 아빠가.
--- 「Chapter 2, 1978년 7월 28일 딸 표신희에게 보낸 엽서
글을 읽고 깨치는 일이 언제나 그렇게 기쁘고 감격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풀리지 않는 난문이나 진전 없는 글읽기에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자신의 아둔함과 무능에 절망할 때도 한두 번
이 아니다. 가끔 읽고 있는 책의 저자가 그 책을 썼을 때의 나이와내 나이를 헤아려 보고는 심한 자책과 분발을 다짐하기도 하지만, 온 몸에 피곤이 일시에 몰려오고 의욕을 잃기도 한다. 이럴 때면, 술도 담배도 못하는 나는 커피를 끓여 마시며 음악을 듣기도 하고 명화집이나 박물관 관계 책을 뒤적이면서 쉼을 얻는다. 이따금 벽에 걸어 놓은 루오의 〈황혼〉에서 평화를 찾으며, 로댕의 조각 〈대 성당〉의 사진을 바라보며 두 손의 마주함, 뜻과 뜻의 만남, 흘러감과 몰락을 거부하고 만듦에 헌신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도 한다.
--- 「Chapter 3 ‘나의 서재」 중에서
6·25 전쟁 당시 다섯째 동생 재명은 나라를 위해 모자라는 나이를 늘려서 기어이 군에 나갔다. 어머니는 밤마다 마당의 우물물을 길어 목욕을 하시고 아들의 안녕을 비셨다. 치열한 싸움은 중부전선에서 소대장인 동생이 이끄는 병사들을 시체로 나뒹굴게 만들었다. 그 속에 동생도 파묻혀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별안간 동생의 눈앞에 어머니의 환상이 나타났다. 동생은 “어머니! 어머니”를 마구 외쳤다. 바로 그 순간 후퇴하던 아군이 그 소리를 듣고 동생을 끄집어내어 후방으로 이송시켜 부산 육군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 「Chapter 4 ‘조상 제사보다 산 내 자식이」 중에서
저는 자라면서 아버지께서 화 내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한 시대였지만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자녀들의 일에 대해 권위적으로 간섭하지 않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나가도록 하셨습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