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여 정책의 올바른 정의다. 그것은 어떻게든 관계 개선을 이루고자 무작정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 제재 등을 통해 대상 국가를 압박해 대화에 나오도록 한 다음, 그 국가가 주변국들의 불안정을 야기해온 위협을 중단하고 철회하도록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만약 그 문제 국가의 위협이 그것에 가장 많이 노출된 어느 한 나라의 압박과 대화로만 해결할 수 없을 경우 그때 요구되는 관여 정책은 일반적인 관여가 아니라 ‘전략적 관여’다. 전략적 관여를 떠받치는 기둥은 두 개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지역의 안보에 책임을 진 강대국들을 그 압박과 대화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류와 협력을 그 위협이 해소될 때까지 중단하기보다는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제8장 강대국 도약을 위한 외교안보 비전」중에서
먼저 진화생물학자 겸 역사학자인 터친의 견해를 들어보자. 그는 역사가 과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강대국의 탄생 요인으로 그는 높은 아사비야와 이민족의 대포용 두 가지를 꼽는다. 로마와 러시아, 미국 등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출현한 강대국 또는 초강대국 모두 주변의 초민족 공동체 변경의 압력에 대응하면서 아사비야로 불리는 민족 내부의 협력 수준이 높아졌고 동시에 이민족에 대한 포용이 가능해지면서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2장 강대국으로 가는 길」중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승리는 결국 대포와 함선, 그리고 전략리더십의 승리다. 조선 수군의 대포와 함선의 기술 혁신과 지리의 시공간에 대한 군사적 활용이라는 전략, 그리고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대표되는 이순신의 리더십, 동아시아와 국가 전반의 정세를 고민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류성룡의 스테이츠맨십이 주역인 것이다.
---「제2장 강대국으로 가는 길」중에서
나폴레옹에 따르면 전략이란 군사적·외교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활용하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전략국민과 전략리더란 시간과 공간을 군사적·외교적으로 활용해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국민과 리더를 의미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전략국민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시대정신으로 설정된 국가적 의제가 존재하느냐에 맞닿아 있다. 즉, 시대정신으로서의 국가 목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국민이 전략국민으로서 그 시대정신의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략국민의 선택을 받는 전략리더의 자격은 무엇인가? 전략리더는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시대정신에 따른 국가적 의제와 목표를 단순화하고 집약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진정성 있는 설득력을 갖추어 국민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링컨, 처칠, 레이건이라는 전략리더들의 출현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미국과 영국 국민이 그들을 리더로 선택할 만한 전략 마인드를 어떤 형태로든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제6장 ‘전략리더’와 ‘전략국민’의 탄생」중에서
부의 불평등 심화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우려는 2015년에 출간된 저서 『거대한 분할』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 책에서 부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상품화하고 부패시켜온 불공정한 정치와 정책들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부의 불평등 심화는 진정한 현실 정치의 문제라고 역설한다. 불변의 경제 법칙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부의 불평등이 확대되고 깊어진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그는 빈곤 척결에 대한 새로운 전쟁보다는 중산층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제1장 민생과 공감의 나라」중에서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크루그먼에 의하면, 미국의 중산층은 1930년대에 비로소 형성됐는데 경제가 성장하면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2007년 출간한 저서 『폴 크루그먼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산층 사회는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중산층은 정치 행위를 통해 창조되어야 한다. 그(중산층) 사회를 만든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뉴딜이었다.” 크루그먼이 말하는 뉴딜과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수준의 뉴딜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뉴딜은 대개 1929년 대공황 때문에 늘어난 약 1500만 명의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크루그먼이 높게 평가하는 뉴딜은 단순한 대규모 공공사업이 아니다. 그보다는 저소득층 근로자들이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 프로그램이다.
---「제5장 중산층을 복원하는 경제 패러다임」중에서
민생을 목표로 했을 때와 성장 또는 분배를 목표로 했을 때 각각의 의제 설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성장을 목표로 했을 때 국가적 의제는 시장 자율(또는 시장 만능), 작은 정부, 기계적 균형 재정 등이 있다. 분배가 목표가 될 경우 체제가 사회민주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생을 목표로 하면 의제는 시장에 대한 적절한 관여, 강한 정부, 유연한 재정 정책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 여기서 성장론자들은 오해할 수 있다. 국가가 민생을 목표로 하면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민생을 향상시키는 것이 국가 최고의 목표이고 역할이라면 민생을 해결하면서 그 민생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도 국가의 과제다. 그런 관점에서 민생·공감 강국 도약을 위한 사회경제 패러다임은 민생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같은 노선을 개념화한 것이 바로 ‘민생주의’이다. 성장이 민생의 부분 집합이기 때문이다. 국가 경영의 기회는 성장 중심 또는 분배 중심에서 민생과 성장의 균형 추진으로 이동하는 세력에 주어져야 하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제3장 민생주의, 21세기 중도우파의 새로운 패러다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