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이 장은 음미할수록 새 희망을 갖게 한다. 덕을 닦는 사람은 같은 뜻을 지닌 사람과 연대할 수 있기에 결코 외롭지 않다고 일러 주기 때문이다.
『사기』 「백이열전」에서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가 자신의 이념을 지켰으나 외롭게 죽어 간 사실을 슬퍼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당시에는 같은 소리를 내고 같은 기운을 지닌 사람을 얻지 못했지만 공자가 그들을 칭송해 주었기에 그 이름을 영원히 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덕 있는 사람이라면 살아서 혹 이웃을 얻지 못할지라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를 정당하게 평가할 이웃을 만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1권「075강 덕인은 외롭지 않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길을 가다가 쓰러지나니, 지금 너는 금을 긋고 있다.
금여획! 이보다 우리를 아프게 질책하는 말이 또 있을까? 염유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지금 너는 금을 긋고 있다.”라고 엄하게 꾸짖었다. ---1권「093강 금을 긋지 말라」
통하려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펴 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 주는데도 남은 세 귀퉁이로 반응하지 않으면 다시 가르쳐 주지 않는다.
『논어』를 처음 공부할 때 「술이」 편의 이 장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던 기억이 난다. “불분불계, 불비불발.” 통하려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펴 주지 않는다는 이 말은 오늘날의 교육자와 학생들도 깊이 새겨 두어야만 할 것이다. 이 구절에서 계발이란 말이 나왔다. ---1권「109강 교육의 방법」
나는 무엇을 전문으로 할까? 말 모는 일을 할까? 활 쏘는 일을 할까? 나는 말 모는 일을 전문으로 하겠다.
달항(達巷)이라는 마을의 사람이 공자를 평해 박학하지만 어느 한 가지도 이름난 것이 없다고 애석해했다. 공자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제자들에게 위와 같이 겸손하게 말했다. 공자의 말에는 유머가 담겨 있다.
공자가 말 모는 일이나 전문으로 하겠다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겸손한 표현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도란 아득히 높고 먼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의 어디건 도가 없는 곳은 없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기도 하다. ---2권「002강 도는 삶 속에 있다」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여쭈어 보자, 공자께서는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거늘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자신의 뜻을 다 펴지 못하고 단명하는 것은 정녕 불행한 일이다. 일생의 수명을 다하고 죽는 경우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이럴 때 우리는 죽음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 뒤의 일을 천착하지 말라고 공자는 가르쳤다. 현세의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라고 한 것이다. ---2권「034강 사람의 일」
내가 너희보다 하루라도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려워 마라. 평소 너희는 말하기를 남이 나를 몰라준다고 하지만, 만약 누군가 너희를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 등 네 제자가 공자를 모시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공자가 “어려워하지 마라.”라고 다독이고는 “만약 누군가 너희를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었다. 자신의 존재가 미미해서 남들이 몰라줄 때 불만을 품게 되고 심지어 초조해지는 것이 상정(常情)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그 초조한 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포부를 말해 보라고 권한 것이다. “내가 너희보다 하루라도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려워 마라.” 이 말은 곧 제자들을 힘 닿는 데까지 계발해 주고자 했던 참스승의 언어이다. ---2권「047강 스승의 격려」
삼태기 멘 은자가 이윽고 말했다. “비루하다, 잗단 소리여!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거든 그만둘 뿐이다. 물이 깊으면 옷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바지 걷고 건넌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과감하구나! 그런다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으리라.”
오늘날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따라야 할 자세가 바로 이것이다.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고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나와 내 주변부터 빛을 밝히는 일, 그리하여 온 세상이 밝아지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일. 이것을 우리는 공자에게서 배워야 한다. ---2권「157강 세상을 잊지 않는 뜻」
함께 말할 만한데도 함께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요 함께 말할 만하지 못한데도 함께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남과의 관계에서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실인(失人)하거나 남의 잘못을 제대로 일러 주지 않아 실언(失言)을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장에서 공자가 가르친 내용이다.
실인이란 흉금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을 만났는데도 그와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아 사람을 놓치는 것을 뜻한다. 실언이란 타이르면 잘못을 고칠 텐데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아 그 사람이 죄악에 빠지게 만들거나, 타이른다고 잘못을 고칠 리 없거늘 잘못을 지적해 말만 허비하는 것을 뜻한다. 곧 아름다운 바탕을 지닌 사람을 도의 영역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이 실인이요, 충고의 말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 실언이다. ---3권「010강 할 말은 하라』
여러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고, 여러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일생 남을 평가하고 또 남에게 평가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남을 사심 없이 공정하게 평가하고 있는가? 이 장에서 공자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나 뭇사람의 부당한 논단에 휘둘리지 말고 내 스스로 상대방의 인격을 정밀하게 살펴보라고 권고한다. 차근차근 살펴보는 일, 이것이야말로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법인 것이다. ---3권「029강 인물 평가의 방법」
자로가 돌아와 그 사실을 아뢰자 공자께서는 낙담하고 서글퍼하면서 말씀하셨다. “날짐승 들짐승과는 무리 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사람의 무리와 함께하지 않고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더불어 변역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날짐승 들짐승과 무리를 이루는 것은 인간 세계를 과감하게 잊어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인간 세계를 과감하게 잊어버리는 것을 과망(果忘)이라고 한다. 공자는 과망을 할 수 없었다. 후대의 지식인들도 과망을 하지 않았다. 현실의 문제를 글로 쓰고 부패한 정치가를 비판했으며 백성들의 피폐한 삶에 눈물 흘렸다. 불교에서도 진정한 해탈은 혼자만 열반하는 것이 아니라 피모대각(被毛戴角, 털을 입고 뿔을 머리에 임)의 소가 되어서 쟁기를 짊어지고 밭을 가는 데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유교도 불교도 홀로 초월하지 않고 만인의 고통을 함께하며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길이라고 똑같이 가르친 것이다.
---3권「102강 짐승과 무리 지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