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의 짧은 생애였다. 메이지 시대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불치의 시대병에 걸렸던 나카무라 쓰네는 차례차례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 그림만이 삶의 증거였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시대, 서양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신사조와 신문화의 빛을 탐닉하듯
쬘 수밖에 없었던 화가. 단 한 번, 온몸이 불타오르는 사랑에 빠졌지만 이 역시 허무하게 잃었고, 인생의 막바지에 해골을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을 남기고 떠났다.
---「죽음을 들고 평온한 남자_나카무라 쓰네, 〈두개골을 든 자화상〉」중에서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모티프, 예컨대 파리의 광고판이나 벽에 온통 마음을 사로잡혔던, 말 그대로 그림에 ‘미친’ 자였다. 야마다 신이치가 회상하기를, 사에키는 젊은 시절부터 좋은 모티프를 만나 예술적 흥분을 느끼면 갑작스런 변의를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바바야!(똥이야!)”라고 오사카 사투리로 외치며 가까운 풀숲으로 뛰어들어가 일을 보았다고 한다. 예술적 흥분이 신체와도 직결했다고 말해도 좋을까. 정말이지 ‘그림에 미친 화가’다, 운 에피소드다.
---「저리도 격렬하게 아름다운 노랑, 빨강, 검정이라니_사에키 유조, 〈러시아 소녀〉」중에서
애처로운 심정으로 이 그림을 응시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천재’란 그림의 기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열여섯에 이미 ‘죽음’을 떠올리고, 작품으로 형상화했던 세키네 쇼지. 오래 살지 못했던 것도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열아홉 소년이 그린 ‘비애’_세키네 쇼지, 〈신앙의 슬픔〉」중에서
아이미쓰는 위에서 말한 전쟁기의 화가와는 달리 전쟁화를 그리지 않았다. 차라리 ‘그릴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각가 이데 노리오井手則雄의 회상에 따르면, 어느 날 모임에서 화가 후루사와 이와미古?岩美가 “요즘은 군부에 협력해서라도 살아남아야만 해.”라고 말했을 때, 아이미쓰는 히로시마 사투리로 “아무리 그리 말해도 나는 전쟁화는 못 그려, 어쩌면 좋지?”라고 울먹였다고 한다.
---「‘검은 손’, 그리고 응시하는 ‘눈’_아이미쓰, 〈눈이 있는 풍경〉」중에서
〈갱부〉는 근대 일본 조각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였는지 확실히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조각상은 내 청춘시대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보고 있으면 내 젊은 날의 동경이랄까 패기, 야심, 좌절감 같은 당시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고투는 미다!_오기와라 로쿠잔, 〈갱부〉」중에서
규슈 구마모토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두 개의 ‘조국’을 가졌고 그 두 조국이 전쟁을 벌였던 기구한 운명에 사로잡혔던 사람. 그리고 1920~1930년대 미국에서 등장했던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했던 노다 히데오가 ‘아슬아슬한 반전평화운동’에 투신했다고 해서 그것이 화가의 길에서 ‘일탈’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한 시대를 성실히 살아나간 사람이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운명과도 다름없었다. 반복하는 말이겠지만 노다 히데오의 장점은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비장한 듯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순간까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어디까지나 낙관적으로 이야기를 건넸다는 점에 있다. 일본의 근대화가 중에서도 드물고 귀중한 존재였다고 말할 수 있다.
---「들꽃의 조용한 에너지_노다 히데오, 〈노지리 호숫가의 꽃〉」중에서
그에게는 ‘청력을 잃었다는’ 핸디캡(오히려 ‘특징’이라고 말해야만 할지도 모르겠지만)이 있었다. 민중으로부터 떨어진 위치에서 주로 책과 화집을 통해 얻은 지식과 관심을 기초로 자신의 예술적 경지를 개척한 화가였다. 사상의 근저에는 서양 문명을 향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었고, ‘자유와 개인의 존엄’ 같은 서양식 개념도 흐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슌스케는 예컨대 같은 도호쿠 지방 후쿠시마 출신이자 빈농 가정에서 자라났던 세키네 쇼지와는 대조적이다. 일본의 집단주의적 문화 풍토 속에서, 특히 전쟁과 전체주의 시대에 자신이 선 위치를 지키면서 주체성을 관철하는 어려운 행위는 고독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추측이지만 슌스케의 작품 아래에서 통주저음처럼 깔려 흐르는 ‘적막함’의 이유는 바로 ‘홀로 선 자의 고독’은 아니었을까.
---「변경에서 태어난 근대적 자아_마쓰모토 슌스케, 〈의사당이 있는 풍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