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들의 독특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책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경봉, 만공, 만허, 성철, 전강, 청담, 효봉 큰스님들의 숨겨진 재미있는 일화를 묶은 <해우소에서 만난 큰 스님>(고요아침)은 종교의 구원과 삶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킨 선승들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책이다.
경허와 성철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실린 선승들은 우리와 동시대를 산 인물들이다. 그들은 20세기 초엽에서 시작해 금세기 말까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의 일화 속에는 지난 100년 동안 이 땅의 구도자들이 어떤 가치에 집착해 왔으며 그들이 생활 속에서 얻은 지혜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엿보게 한다.
인도의 불교가 히말라야를 넘어와서 꽃피운 가장 찬란한 것은 바로 선禪의 세계이다. 선의 세계는 불타의 가르침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다. 그 세계는 달마라는 불세출의 종교가가 싹을 키워서 중국이라는 독특한 문화풍토와 만남으로써 탄생된 세계이다.
그 선의 세계는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차 있다. 그 세계는 단순한 하나의 종교를 뛰어 넘어 인간 본연의 세계와 닿아 있다. 당나라 이후 화려하게 꽃핀 선의 전통이 오늘날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 삼국불교가 지난 2000년 동안 서세동점瑞世東漸의 바람 앞에서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이 땅에는 경허라는 새로운 선의 바람을 일으키는 인물이 태어났던 것이다. 음의 세계를 내보였던 것이다. 이때가 1879년 11월의 어느날이었다. 이 이후 한국의 선禪은 경봉, 만공, 만암, 성철, 전강, 청담, 효봉, 현존하는 한국 불교의 최고의 선지식 서옹까지 이어진다. 흔히 원효를 한국불교의 새벽, 지눌은 한국 간화선(看話禪 : 화두를 받아 끊임없이 의심해 들어가는 수행법)의 효시, 서산대사는 한국 중세선의 기둥이라고 할 때 경허선사는 근대선의 중흥조라고 일컫는다. 근대 한국 선의 중흥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 같은 일화 속에 숨은 깨달음
경봉, 만공, 만암, 성철, 전강, 청담, 효봉 스님들이 선의 과정을 깨달아가는 일화는 한마디로 전설에 가까울 정도로 치열하고 놀랍다. 그리고 그 삶은 컴퓨터와 통신으로 가득찬 이 가상의 세계 속에서 ?진실한 삶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손에 한 번 들면 결코 놓을 수 없는 선지식들의 삶의 경지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 경봉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문을 배운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16세 때 통도사에서 출가해 극락암에서 36세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오늘날 술집이나 음식점에 가면 볼 수 있는 화장실의 이름을 해우소로 바꾼 스님이다. 화장실이 왜 해우소가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몸 속에 들어 있는 큰 걱정을 떨어버리는 곳'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 바로 해우소인 것이다.
"웃지들 마라. 웃을 일이 아니야. 우리 모두 빈손으로 나왔어. 아, 빈손으로만 나왔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홀딱 벗고 나왔지. 빈 몸 빈손으로 나왔던 ?나?라는 물건이 어느새 세상 밥 먹고 크더니 도둑놈을 키웠어. 그것도 여섯 도둑을. 그 여섯 도둑이 무엇이냐. 바로 눈, 코, 귀, 혀, 몸뚱이, 뜻이 바로 그거야? ―<영감 껴안고 나온 보살 있으면 손들어> 중에서
경봉 스님의 법문은 인간이 타락해 가는 것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에 있다고 역설을 했다. 그는 또한 일반대중에게 쉬운 법문을 통해 깨달음을 전해준 이로 유명하다.
- 경허
그를 두고 사람들은 한국의 마조馬祖라고 한다. 당나라 때 선승으로 그 유명한 '할'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기이한 행적을 통해 깨달음을 전한 경허는 한국 선을 부흥시킨 스님이다. 어머니와 일반 대중 앞에서 그는 아랫도리를 벗었다.
"자, 어머니 여기를 보십시오." 경허가 어머니를 불렀지만 박씨 부인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30대의 경허는 박씨 부인이 어릴 때 기저귀를 갈아주던 경허가 아니었다. "어머니, 그리고 대중들 잘 보았소? 어머님이 날 낳고 기를 때, 어머니는 내가 똥을 싸면 벗겨서 씻어 주고 옷이 젖으면 벗겨서 갈아 입으셨소.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늙고 나는 컸소. 우리 둘은 어머니와 자식으로 변함이 없는데 어머니는 오늘 내 벗은 몸을 망측하여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였소. 그 옛날 나를 벗기고 씻겨 주던 어머니는 어디 가고 벌거벗은 아들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만 남았으니 이것이 간사한 사람의 마음, 부모 자식간에도 마음이 이렇게 변할진대 친구 이웃사이는 더할 것이오? ―<벌거 벗은 경허> 중에서
- 만공
1871년 전북에서 태어나 14세에 동학사에서 경허 스님을 만난 뒤 천장암에서 출가했다. 그의 설법은 쉽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보여 주었으며 문재에도 뛰어나 수많은 게송과 법문을 남겼다.
하루는 나인과 상궁들이 만공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았다. 만공 스님은 동자승을 불렀다. 그리고 동자승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 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노래를 듣는 나인과 상궁들의 얼굴은 각양각색이었다. 모두가 그 노래의 속뜻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끝나자 만공이 입을 열었다. "깨우칠 것이고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추잡한 잡념에 이끌릴 것입니다." ,그 날 법문의 깨달음은 생각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딱다구리 법문> 중에서
- 만암
1876년 전남 고창에서 태어났다. 그는 10세에 전남 담양 백양사로 출가했다. 퇴락한 백양사 중건에 나서 10여 년에 걸쳐 불사佛事를 완성하여 그 기틀을 다졌다.
"늘어나기만 하는 고무줄은 쓸모가 없지요. 고무줄이 또 줄어들기만 하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습니다. 늘었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고무줄을 신기해하고 그것으로 옷을 매는 것이지요. 세상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재물도 모으기만 하면 늘어나기만 하는 고무줄 같고, 그것을 아끼기만 하면 줄어들기만 하는 고무줄과 같은 것입니다."
―<고무줄 법문> 중에서
성철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로부터 시작해서 '친견 삼천 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16년간의 생식과 8년 동안의 장좌불와長坐不臥로 불교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와, 삼천배를 다 했다" 걸음을 걷는 보살의 얼굴에는 이제 성철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성철 스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엉뚱한 소리였다. "얘야, 저기 그 종이 가져오너라." 시자가 종이 뭉치를 가져오자 그것을 밤새도록 삼천 배를 한 보살에게 나누어주었다. 그것은 흰 백지에 둥글 원圓을 쓴 것이었다. "말세 중생은 자기기도는 자기가 하는거야"
―<종이나 한 장 가지고 가라> 중에서
이외에도 전강, 청담, 효봉 스님의 일화도 결코 빼 놓을 수는 없다.
이런 선승들의 재미있고 깨달음이 있는 일화를 통해 일반인들은 한국불교의 선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수행이란 어떤 것인가를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