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근대국가(modern state)’는 우선 ⑴백성이 정치적·정신적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얻어 ‘국민’으로 올라서서 민본주의적 자치권으로서의 국민주권을 쟁취한 ‘자유·평등국가’이고, ⑵국가가 정신의 궁극적 자유의 연장선상에서 종교·학문·사상·정치에 무제한적 관용을 보장하는 ‘관용국가’이다. 그리고 동시에 근대국가는 ⑶국가 수뇌부에서 일인독재로 흐르기 마련인 독임제적獨任制的(monocratic) 의사결정을 추방하고 집체적(collegial) 결정을 제도화한 ‘내각제국가’이자, ⑷실무행정 담당자를 실력(성적)으로 선발하고 이 행정관리들을 위계제도·임기제·순환보직제로 배치·조직하여 복무시키는 ‘관료제국가’이고, ⑸3단계 학제(초등·중고등·대학)의 학교를 설치하여 만민에게 의무교육과 평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고 국민적 문화생활의 지속적 향상을 추구하는 ‘교육문화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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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우호프는 짧은 글 안에 내각, 각로, 각로와 황제의 권한관계, 각로의 자격, 면의面議, 의정으로부터의 육부의 배제, 내각의 속료屬僚로서의 한림원 관원과 중서사인中書舍人들(‘최고의 철학자’) 등을 다 담고 있다. 니우호프가 각로들을 보필하는 “몇몇의 최고의 철학자들”을 특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대목은 협판대학사, 학사, 시독학사, 시독, 전적, 중서사인 등 쟁쟁한 속관屬官을 두었던 청조의 내각에 대한 설명이다. 명대 내각의 속관체제는 청조 내각에서만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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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국의 망각상태는 좀 특이한 데가 있다. 이 ‘영국적 망각’은, 상업사회의 도래와 강화에 호응하여 비로소 창출된 근대적 ‘의회’와 ‘자유’를 까마득히 먼 ‘게르만 숲속’으로부터 유래하는 유구한 관습적 제도로 주장하는 이른바 ‘속류휘그들’의 ‘고대헌법론’과 유사한 ‘관습 이데올로기로’도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1908년 영국헌법론의 대가 메이틀랜드는 18세기 중국비방자 몽테스키외를 호렸고 오늘날도 그레스 등 속류학자들을 호리고 있는 ‘고대헌법론’의 이데올로기적 타성에 젖어 템플이 추밀원을 “그것이 이전에 보유했던 그 지위로 복귀시키는” 계획을 안출했다고 허언했다. 또 1912년 템펄레이는 클래런던이 1660년대에 이미 “헌법상 왕은 추밀원의 자문을 준수하도록 구속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오해했다. 영국인들은 그들이 비로소 근대적 필요에 맞춰 만들어나간 ‘의회’를 까마득한 관습의 ‘유구성’의 허위 포장으로 감쌌듯이, 다시 내각제도 거짓 유구성의 후광으로 둘러치고 감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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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케네는 중국 관료제의 한 전통인 ‘간언諫言’ 제도와, 황권을 제한하는 관료제의 엄격한 객관적·사무적(정밀기계적) 작용기제에 대해 상론한다. 그는 먼저 제국 안에 지배자의 확인 없이 법률의 효력이 힘을 가질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관청은 없다. 황칙은 관행이나 공공복지를 위반하지 않을 때, 그리고 칙령이 행성의 행정책임자인 포정사에 의해 등재되고 행성의 관할지역 전역에 걸쳐 공포된 뒤에 취소불가능한 영구적 법률이 된다. 그러나 심지어 황칙이나 법률조차도 주권적 부서 안에 등재된 뒤에만 제국 안에서 효력을 얻는다. 이를 증명하는 증거는 「감화적 서한들(Lettres edifiantes)」의 15권 284쪽에서 볼 수 있다. 선교사들은 기독교에 우호적인 황지皇旨로부터 이것이 등록되고 통상적 정식절차와 형식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혜택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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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는 공맹과 중국의 유학적 교육이념 신新인문주의적 교육이념을 내세웠다. 실제적 생활목적에 쓸 만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 칸트의 엄격한 공리주의적 교육학과 달리 훔볼트는 “사람을 단순히 수단으로서만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목적-수단 관계의 공리주의적 도덕률을 날려버리고 목적에 매이지 않는 일반적 인간교육(allgemeine und zweckfreie Menschenbildung), 즉 아주 유학적인 인간교육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는 이 점에서 고대의 고전과 옛 언어들에 대한 학습을 인간의 정신적·도덕적·지성적·미학적 개발을 촉진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인문적 인간개발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다양한 직업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 인간형성의 관점에서 국가의 이익은 국익과 국가시민들의 활용가치는 당연히 이차적인 것이었지만, 결코 무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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