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은』 한나라 이전 문헌 중에서 결이 조금 다르다. 춘추전국시대에 인문학이 꽃핀 것은 주나라가 종교성 짙은 은나라 문화를 걷어 낸 덕분이었다. 이를 ‘종교의 인문화’, ‘우환의식’, ‘인문 정신’이라고 학자마다 달리 부르는데,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하늘[天]에 기대지 않고 인간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골자이다. 『논어』와 『맹자』에 ‘세상을 주관하는 하늘’이 여전히 등장하지만, 종교적 권능을 부여하고 맹신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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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고 성실한 것이 하늘의 길이라면 그렇게 되려 노력하는 것이 사람이 가야 할 길(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이라고 선언했듯이 ‘성(誠)’이라는 개념으로 우주와 인간을 설명한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불성무물(不誠無物)’ 즉 ‘성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파격적(?) 선언은 『중용』에서만 등장한다. 하늘을 포함한 만물의 본질은 ‘성(誠)’이므로, 인간의 본질 또한 ‘성’이다. 이제 인간은 ‘성’을 매개로 하늘과 하나 되는 길이 열린다[天人合一]. 그래서 『중용』에서 말한다. “천지의 화육/생성을 도울 수 있어, 하늘과 땅과 나란히 서게 된다(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 제자백가 중에서 ‘인간의 위상’을 이렇게 높게 설정한 텍스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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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
하늘의 소리(명령)가 (만물에) 내려앉은 것을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하며, 도를 받들고 체현하는 것을 ‘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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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희노애락)이라는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을 ‘중’이라고 하고, 감정을 상황에 맞게 표출하는 것을 ‘화’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고, ‘화’는 천하 사람이 반드시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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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군자가 중용을 체현할 수 있는 것은 군자다우면서 때에 맞게 행동한 덕분이다. 소인이 중용을 거스르는 것은 소인이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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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공자께서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배움을 좋아하면 지에 가까워지고, 힘써 실천하면 인에 가까워지면, 부끄러움을 알면 용에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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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
誠者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聖人也
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
진실하고 성실한 것이 하늘의 길이라면 그렇게 되려 노력하는 것이 사람이 가야 할 길입니다.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중용의 길로 갈 수 있고, 고민하지 않아도 중용의 길을 터득하게 됩니다. 조용히 중용의 길을 걸으신다면 인격을 완성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바른길을 택해 굳게 지키고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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