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허리 쪽이 좀 근질거리는군, 볼펜 끝으로 살짝 긁어볼까. 아, 좀 낫네, 그나저나 드니가 오늘밤에는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았으면 좋겠어, 진짜 최근 들어 많이 피곤해하고 시무룩해진 건 사실이야,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가 꽤 오래 되지, 부부의 삶이라는 것도 이제는 직무상 불충분함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한다든가 기간계약제나 무기간계약제를 마구잡이 적용하는 기업의 법칙과 다름없는 논리로 굴러가게 되는 것 같아, 이제 막 하루가 시작인데 난 벌써부터 기운이 쭉 빠지네……” --- p.28

“슈퇴퍼가 당장 그와 정반대 의견을 내놓는군, 스위스를 추천하고 있으니 말이야, 기업 워크숍을 위해 둘도 없는 장소라는 거지, 거기다 세르뱅 산 등반까지 제안하고 있어, 하루에 담배 두 갑 이상을 피워대는 위인으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 아닌가 말이야, 아니나다를까 로르티가 위아래로 훑어보는군, 언젠가는 그를 미련 없이 방출하겠지, 틀림없어, 그 전에 슈퇴퍼가 알아서 죽어나가지 않는다면 말이야.”

지옥
기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쩔쩔맨다. 자신의 현재 자리를 유지하는 게 최우선이다. 회의 시작 전 가슴 두근거리는 증상, 고무적이지 않은 회의, 신경통들만 도진다. 조직개편 안건에서 저마다 살아남기 위한 답변을 한다. 모두가 고학력이고 한때 잘나갔던 엘리트, 그러나 49세 중년은 해고당할 불안감에 사립학교 아이들 부양료를 걱정하고, 50세 이상 조기 퇴직으로 낙오자가 된 기분을 느껴야 하는 현실. 기업은 오물구덩이, 인간의 모습은 우리 속 쥐들이다. 퇴출에 대한 불안감으로 쫓기는 삶 속에 매일 똑같은 지리멸렬할 회의 광경이 펼쳐진다.

연옥
지배하는 자와 당하는 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스스로 선택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있는 것. 영화배우나 성공한 자가 되려는 강력한 꿈을 꿔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무식하게 한길만을 묵묵히 밟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CEO만큼이나 단호한 결의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면 성공. 에너지 집중, 의지와 열정,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낙원
더없이 진부한 일상이야말로 절대적인 기적. 스스로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죽음의 직전을 벗어난 이후 느끼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기억들이 모두 행복과 기쁨의 순간들로 다가온다. 지긋지긋하던 고통과 환멸도 더 큰 고독 앞에서 견디기 수월하다는 사실을 안다. 각자 안에 감춰진 환희를 되찾도록 해야 한다. 세상이 아름다움을 모르는 자는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자들이다.

<b>[인물 캐릭터]</b><br/>1. 메이에 : 빠듯한 일상의 주부임원<br/>나른한 태도, 느릿한 음성에 우아하고 균형 있는 자태가 육감적이나 어딘가 슬퍼 보인다. 어린 딸을 유모에게 맡기고 출근을 한다. 커피를 많이 마시며 신경질적인 면이 있다. 좌골신경통 초기증상. 아파트 대출금이랑 자동차 할부금, 기타등등의 고정요금들을 오로지 봉급 하나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해고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항상 늦게 귀가하는 남편과의 부부생활은 권태롭기만 하다. <br/><br/>2. 퓌졸 : 천박한 바람둥이 타입<br/>웨이브 진 갈색 머리에 희멀건 푸른 눈, 상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인상, 구미가 안 당기는 오동통한 체형. 헬스클럽이나 드나드는 전행적인 제비족. 당나귀 같은 얼굴로 히죽거린다. 전전긍긍하는 꼴이 백치 같은 인상을 풍긴다. 자기 구두코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노숙자가 될 수 없어서 마지못해 회사에 다니고 있다. <br/><br/>3. 브레몽 : 39세 고학력 독신녀 <br/>볼품없는 외모. 승진해 사 입었을 투피스 속에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다. 암퇘지처럼 먹어대도 계속 배가 고프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응용심리학 고급전문연구과정을 이수한 고학력자. 쩔쩔매다가 횡설수설하고는 울어버린다. 나태하고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암송아지 같다. 불편한 의자에 좀 쑤셔하고 있다. <br/><br/>4. 티시에 : 이혼을 앞둔 49세 배불뚝이 <br/>신장 170에 90킬로그램. 비듬방지로션을 바르지만 옷깃은 비듬들의 활주로. 흉하고 그로테스크한 미소. 무능하고, 누가 봐도 딱 오십대 아저씨에 시골냄새 물씬 풍기는 인상. 역사학 논문을 썼고 교수나 학자 같은 어투로 말한다. 아기코끼리처럼 맥없는 표정과 원숭이 같은 눈동자 사이의 확연한 불균형이 뭔가 꿍꿍이속이 있음을 말해준다. 열심히 코만 파고 있다. 한때 잘나가던 학창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빚더미와 소송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br/><br/>5. 슈퇴퍼 : 전직 사장인 50세 알코올중독자<br/>80년대 정보통신업계의 정신적 스승이자 선구자였으나 걸프전 때 파산.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운다. 위스키는 네 잔씩 남몰래 옷장에 숨겨두고 홀짝인다. 감자튀김이든 초콜릿 슈크림이든 입맛 당기는 대로 먹어치운다. 분노로 떨리는 콧수염, 말년에 이른 오노레 발자크를 닮았다. 쾌락주의자 같으면서 화산처럼 들끓는 듯한 인상, 플로베르도 닮았다. 침울한 표정, 공수병에라도 걸린 늙은 불독 같은 얼굴. 쫓겨날지도 모른다. <br/><br/>6. 드발 : 퇴폐적이며 냉소적인 젊은 게이<br/>촌티 물씬 나는 두상에 식물줄기 같은 목덜미. 도토리, 뿔닭을 연상시킨다.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하이에나나 자칼이 우는 소리 같다. 왕초의 명을 받드는 사람처럼 제 몸 바쳐 뛰어드는 간부급 직원의 전형. 오로지 로르티만을 섬기는 쓰레기 같은 녀석. 매주 열 시간씩 헬스를 한다. 앞뒤로 짱구인 대머리 전사가 공격하려는 기세처럼 보인다. 오만한 태도, 거만덩어리. <br/><br/>7. 카스탈리오네 : 권력욕에 눈먼 변태여성<br/>깊숙이 박힌 작은 두 눈과 뾰족한 콧날, 교활한 암여우 같다. 거짓이 느껴지는, 지극히 계산적이면서 출세제일주의자 같은 인상. 의전적인 말투로 회의참석자들 이름과 직책을 또박또박 내뱉는다. 일도 별로 안 하면서 로르티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타고난 음모꾼. 냉혈살인마, 사마귀 같은 무시무시한 분위기. 광기 어린 경멸의 눈빛. 격한 성격의 광적인 여장부. 육감적이면서 어딘가 독선적인 표정으로 입을 비죽거리며 자세를 꼿꼿이 한다.<br/><br/>8. 로르티 : 40대의 금전적 마왕 CEO <br/>하버드에서 경영의 기본원칙을 두루 섭렵한 엘리트. 흰색 와이셔츠, 감색바탕의 가느다란 회색줄무늬 정장차림. 희끗희끗한 갈색머리는 뒤로 반듯하게 빗어 넘겼고, 넥타이는 시에나 흙 색깔에 노란색 미세 무늬(무당벌레? 테니스공?)가 새겨진 것. 날렵한 몸매, 차갑고 푸른 눈동자, 말끔하게 벗겨진 관자놀이, 미남이지만 그 빤지르르한 면상이 이중인격자 같은 느낌을 준다. 거드름을 피운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데 새로 생긴 정부가 있다. <br/><br/>9. 클레망 두르빌 :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 인사책임자<br/>탁월한 법률가, 섬세하고 교양 있지만 못생기고 정 안가는 여자. 이마의 주름살과 눈가의 기미가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사람 같다. 늙은 암염소처럼 생겼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고, 남편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며 딸은 소식이 없다. 간밤에 악몽에 시달리며 신경안정제를 복용한다. 시체 같은 모습, 뭉툭한 턱 선, 동그란 이마, 눈자위가 퀭하다.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진 얼굴, 쩔쩔매는 인상. <br/><br/>10. 루셀 : 성적 망상에 사로잡힌 고위급간부<br/>직원을 이끌고 관리하러 왔다. 지배하는 자와 당하는 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빈정대는 눈빛이다. 회사는 제2의 직장이라 여기며 초연한 척 딴전을 부린다. 냉소적인 인간. 4년째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 교수가 되거나 회사를 차리거나 고급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도 한다. 광대가 되어볼 생각을 하거나 자유인을 꿈꾸기도 한다. 자기 몫의 인생을 챙기기 위해 여차하면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회의참석자들의 사생활을 들먹이며 성적 망상에 빠져 있다. <br/><br/>11. 알리기에리 : 40대 전직 미술미평가<br/>넋 놓고 앉아 공상에 젖어 있거나, 항상 딴전을 피우고 있다. 무슨 일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이며 창밖의 무지개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뭔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골똘히, 계속 뚫어져라 보고만 있다. 마약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한때 고등사범학교에서 문과시험 준비생이었다. 유일하게 살아 숨 쉬는 인간. 누구에게나 호의적인 눈빛이며 웃는다. 죽음을 모면하고 맞아들이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기억들이 모두 행복과 기쁨의 순간들로 느껴진다.

굉장히 재밌는 소설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대단히 날카롭고 정확하다. 개개의 화자에 대한 묘사 역시 참신하고 흥미롭다. 처음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을지 모르나, 계속해서 내용을 반추해보게 될 것이다. 그것도 다소 불편한 심기로… - 르 몽드 데 리브르(Le Monde des Livres)

고도성장의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 - 라 캥젠 리테레르(La Quinzaine litteraire)

서로가 서로를 타협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자체가 곧 지옥을 연상케 한다. 이 책은 한 대기업의 전략회의장을 무대로 서로 타협을 노리는 인간군상의 공적, 사적 갈등을 보여준다. - 아르 프레스(Art Press)

작가의 변 “이 소설은 오늘날 기업의 초상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의 에너지가 동시에 신장되면서 파괴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라 캥젠 리테레르(La Quinzaine litteraire)

이 책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독창적이다. 작중 등장인물들 개개인만으로도 제각각 한 권씩의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 리브르 엡도(Livres Hebdo)

숨 가쁘고 신랄한 비평이 불꽃 튄다. - 파리 마치(Paris Match)

모두가 자신들의 나약함, 치졸한 인간성이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결국은 해고대상자에서 제외되어야만 하기에 불안에 떨고 있다. - 랄자스 페이 드 프랑슈 콩테(L'Alsace-Pays de Franche Com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