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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질병

: 실재하는 추상

[ 개정판 ] 배반 인문학 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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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28g | 120*190*20mm
ISBN13 9791167371782
ISBN10 11673717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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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도 영원히 사는 스트럴드브러그가 나온다. 그런데 영원히 죽지 않는 스트럴드브러그를 언제든지 만나 볼 수 있는 럭낵의 사람들은 정작 삶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 스트럴드브러그는 젊지 않았고 건강하지 않았던 것이다. 늙음과 쇠약함이 가져오는 불편과 영원한 생명을 모두 가지는 그들은 죽지 않음으로 인하여 생기게 되는 절망 속에 놓일 뿐이다. 과거에는 근력 감소가 정상적인 노화 현상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이를 질병의 일종으로 보고 병명을 붙여 치료 대상으로 간주한다. 질병은 시대마다 탄생하고 유행하는 것이다.
---「들어가며_시빌과 스트럴드브러그」중에서

프리다는 평생 여러 번의 수술과 유산을 경험했고 거의 언제나 고통 속에 있었다. 고통이 삶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의지가 되었다 해서 그녀가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몸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성적인 고통이 오히려 몸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픈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과 그리고 외부 세계와도 투쟁해야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의식, 자아 간의 관계와 거리를 조절하고 재설정하면서 닥쳤을 좌절감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3장 개인적인 몸, 직소퍼즐 같은 몸」중에서

《페스트》는 페스트라는 병 자체보다 병이 어떤 식으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변화시키는지에 관한 것이다. 카뮈가 그리는 20세기의 페스트는 병의 추상성만큼이나 신앙심을 부추긴다. 종교는 이 불행을 겪어 마땅할 위치에 올려놓고,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신의 재앙이라고 웅변한다. 종교는 페스트를 더 이상 추상이 아니라 “여러분을 향상시키고, 여러분에게 길을 제시하는” 진리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시의 후면에서는 박하 정제가 전염병의 예방에 좋다는 말 때문에 동이 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하 정제를 열심히 빨아 먹는 것이 기도보다 더 효과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4장 사회적인 몸, 말, 말, 말」중에서

이처럼 병원 치료로도 아프기 이전의 몸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완치’의 개념은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해지는 것이지 아프기 이전과 똑같은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 폐결핵을 앓고 완치가 되었어도 폐는 상당한 손상을 입는다. 나이가 들어 폐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그러한 상흔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몸은 나의 의식을 건드리면서 어떤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지만, 증상을 불가피하게 내 몸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따르는 것이다. “날건 말건!”의 ‘느낌표’로 우리 몸을 다독이면서 삶을 지속시켜가야 하는 것이다.
---「6장 인식적 차원, 날건 말건?!」중에서

속 쓰림 대신 ‘위 식도 역류’로, 수줍음 대신에 ‘사회불안장애’로 병명이 재정립되는 순간, 증상은 의학 분야로 넘겨지면서 치료를 요하는 질병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병으로 의식하지 못했던 과거를 의학기술의 수준이 낮았던 탓으로 돌린다. 이제 광고는 당당하게 “생리 전 증후군은 질병입니다”라고 말한다. 내려앉아 있던 침묵이 걷히면서 불투명했던 증상은 속 시원한 질병으로 규정된다. 물론 특정 병명이 있다는 것은 치료 가능한 약이 있다거나 적어도 시도해볼 만한 의료처치방법이 있다는 말이다. 이제 이름을 얻은 질병은 더 이상 예전의 불 특정한 증상으로 퇴화할 수 없고, 그 자체가 진리가 된다. 그리고 전복되지 않는 한 진리는 지속되는 권위와 명성을 걸치면서 신화로 남는다.
---「7장 정상과 비정상, 뫼비우스의 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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