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 헨리 8세가 아내 카타리나와 이혼을 하고 싶었으나 교황의 허락을 받을 수가 없었다. 왕은 로마의 교황과 완전히 결별할 각오로 마지막 담판을 시도하려고 작정하고 교황청에 위트셔 백작을 파견했다. 개를 몹시 좋아했던 백작은 교황을 알현하는 자리에 개를 데리고 들어갔다. 개도 주인을 끔찍이 사랑했다. 교황 클레멘스가 키스를 하라는 뜻으로 영국 사절에게 발을 내밀었다. 그때 백작의 예민한 개가 그 동작을 잘못 이해하여 교황의 발꿈치를 물어버렸다. 그 바람에 교황과의 협상이 중단되었고, 헨리 8세는 얼마 후에 이혼을 강행했다. 그런 다음 그는 새로운 국교(國敎)를 창설하고 다섯 차례나 재혼했다. 그러니까 개가 교황 클레멘스의 발동작을 오해함으로써, 영국 교회의 분열을 조장한 셈이 되었다.
--- p. 163
언제 어디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돈독한 유대 관계가 최초로 형성되었는가에 관해서는 정확한 증거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 역사가 너무 일찍 시작되었던지라 그 흔적들이 선사 시대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탓이리라.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간접 증거들을 요약한다면, 개의 초기 역사는 대략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다른 가축들과 달리 개는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과 더불어 살았음에 틀림없다. 인간들이 유목민으로서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떠돌고 있던 선사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늑대와 비슷한 짐승들이 인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 시절에 이 짐승들은 포획된 동물의 찌꺼기를 받아먹기 위해, 사냥하는 인간을 따라다녔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도처에서 개와 유사한 포유 동물의 화석이 발견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늑대가 개로 변한 과정, 다시 말해서 늑대가 거의 공생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가축으로 변한 최초의 과정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동물과 그 조상들의 계보를 연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비해 말, 소, 양, 닭 따위의 발전사에 관해서는 훨씬 더 완벽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 pp. 17 ~ 18
썩어빠진 인간이여!
너희 사랑은 육욕이요, 우정은 속임수이며,
미소는 아첨이요, 너희가 하는 말은 거짓뿐이로다!
천성은 사악하고 이름만 그럴싸한지라,
너를 닮은 짐승조차 부끄럽다 한탄하겠구나.
이보시오! 우연히 여기 묘비 하나가 보이더라도
그냥 지나가시오. 애도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으니까.
여기 친구의 유해가 있음을 알리고자 묘비를 세웠노라.
내가 아는 유일한 친구 ― 그가 여기 잠들었노라.
― 바이런, “뉴펀들랜드를 위한 묘비명” 중에서
--- p. 354
데카르트는 동물에게 의식(意識)이 없다는 점을 확실한 근거에 따라 증명했다고 확신했다. ······ 데카르트에 의하면 동물의 행동은 절대로 의식에 의해 조종되지 않으므로 순수하게 기계적인 것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짐승은 인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간 적은 이성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신체 기관이라는 장치에 의해 작동하는 자연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톱니와 바늘로 구성된 시계와 마찬가지라서 우리의 모든 지혜를 동원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재고 시각을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데카르트의 이런 견해는 결코 경멸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기계들은 신의 손으로 창조된 것이라서 인간이 발명할 수 있는 그 어떤 기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 p.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