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을 고쳐 지을 땅을 도산 남쪽에서 얻다
改卜書堂得地於陶山南洞
계상서당에 비바람 부니 風雨溪堂不庇床
침상조차 가려주지 못하여,
거처 옮기려고 빼어난 곳 찾아 卜遷求勝?林岡
숲과 언덕을 누볐네.
어찌 알았으리? 백년토록 那知百歲藏脩地
마음 두고 학문 닦을 땅이,
바로 평소에 나무하고 只在平生采釣傍
고기 낚던 곳 곁에 있을 줄이야.
꽃 사람 보고 웃는데 花笑向人情不淺
정의(情誼) 얕지 않고,
새는 벗 구하면서 지저귀는데 鳥鳴求友意偏長
뜻 오로지 심장하다네.
세 갈래 오솔길 옮겨와 誓移三逕來栖息
거처하고자 다짐하였더니,
즐거운 곳 누구와 樂處何人共襲芳
함께 향기 맡으리?
* 퇴계 가에 지어 놓았던 서당에 비와 바람이 불어 댄다. 서당을 지은 지가 오래되어 곳곳이 낡고 허물어져 잠잘 만한 조그만 침상조차 가려주지 못하였다. 서당의 터를 옮겨 지으려고 경치가 빼어난 곳을 찾아 예안의 온 숲과 언덕을 헤매며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겠는가? 한 평생 염두에 두고 학문을 닦고자 염원하였던 땅이 바로 평소에 나무하고 고기 낚으며 늘 자주 왕래하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걸. 꽃을 보니 꼭 사람을 보고 웃는 듯하여 정의(情誼)가 얕아 보이지 않았고, 하늘을 나는 새는 벗을 구하면서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시경』의 「나무를 벰(伐木)」이라는 시에 나오는 “새 우는 소리는 지지배배, 저 새들을 보아도 오히려 벗 찾는 소리 내네.”라 하는 것과 똑같이 들리는 것이 그 뜻이 정말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서한시대의 장후가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정원에 만들었던 소나무를 심은 길과 국화를 심은 길, 대나무를 심은 길 같은 세 갈래 오솔길을 내가 여기 도산 땅에 옮겨와서 여기서 거처하리라 다짐하였는데, 이런 즐거운 곳에서는 나 혼자만이 즐거움을 느낄 뿐 누구와 함께 향기를 맡으며 지내겠는가? 이러한 즐거움을 함께 느낄 사람은 아마도 지금 세상에는 그리 흔하지 않겠지?
가을 날 높은 곳에 오르다
秋日登
세상에 나가서는 훌륭한 出世能無友善才
인재 사귈 능력 없고,
쓸쓸히 거처하며 항상 索居恒恐壯心頹
씩씩한 마음 무너질까 걱정되네.
푸른 산은 삐죽삐죽 靑山??終難狎
끝내 가까이하기 어렵고,
흰머리는 성성하니 白髮森森漸不猜
차츰 얼마 되지 않네.
즐거운 일 다만 樂事只應尋處得
찾는 곳 있는 데 답할 뿐이니,
근심스런 마음 어찌 愁腸那復念時回
다시 때 되돌릴 것 생각하겠는가?
하늘이 물 찰랑찰랑하는 곳 天開絶勝滄浪境
훌륭한 경지 열었으니,
자연 속에서 내 마음을 風月襟懷付釣臺
낚시터에나 부치려네.
* 벼슬살이 하겠다고 세상에 나갔을 때는 훌륭한 인재를 사귈 능력이 없었다. 또 이렇게 물러나 홀로 쓸쓸하게 지내자니 이제는 또 벼슬살이할 때의 씩씩한 마음이 무너지지나 않을까 몹시 걱정이 된다. 푸른 산은 삐죽삐죽 높이 솟아 나같이 늙고 약골인 사람은 끝내 가까이 하기가 어렵고, 흰머리는 성성하여 점점 얼마 남지 않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즐거운 일은 찾는 곳에 응하여 얻을 수 있을 뿐이니 근심스런 마음이 어찌 다시 지나간 때 되돌릴 것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강물이 찰랑찰랑 흔들리도록 경치가 빼어난 경지를 열어 놓았으니, 바람 불고 달빛 비치는 자연 속에 나의 흉금을 강가의 낚시터에나 부쳐 보려고 한다.
도산서당 陶山書堂
순임금 친히 질그릇 구우니 大舜親陶樂且安
즐겁고 또 편안하였으며,
도연명 몸소 농사지으니 淵明躬稼亦歡顔
또한 얼굴에 기쁨 넘치네.
성인과 현인의 마음 쓰는 일 聖賢心事吾何得
내 어찌 터득하리오만,
흰 머리 되어 돌아와 白首歸來試考槃
『시경』의 「고반시」 읊어보네.
* 순임금은 하수의 가에서 친히 도산서당의 “도”자와 같은 뜻의 질그릇을 구우며 즐겁고 또 편안하게 지냈다. 또한 도씨 성을 가진 도연명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온 얼굴에 기쁨이 넘쳐흘렀다. 순임금 같은 성인과 도연명 같은 현인의 마음 쓰는 일을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어찌 터득하겠는가마는 머리 허옇게 세어가지고 고향으로 되돌아와 은거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경』의 「고반시」를 읊조려 본다.
정유일이 찾아와 함께 도산에 이르러 한번
둘러보고 이별한 후에 뒤쫓아 부치다
정유일이 근자에 가주서로 은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청쇄시재’라는
말을 하였다
鄭子中來訪, 俱至陶山, 眺覽, 旣別, 追寄 子中近以假注書, 入銀臺,
故有靑試才之語
몇 해 만에 겨우 보았네, 幾歲?看環堵闢
자그마한 집 열림,
오늘 새벽 갑자기 今晨頓有玉人來
옥 같은 사람 찾아왔네.
함께 시원하고 상쾌함 좋아하니 共憐蕭?堂臨沼
서당 소에 비치고,
깊은 물을 함께 즐기니 同玩涵泓水映臺
물에 높은 곳 비치네.
누런 책과 흰 구름은 黃卷白雲容我拙
나의 옹졸함 받아들이고,
자신전의 청쇄문에서는 紫宸靑?試君才
그대 재주 시험하네.
그대 보내고 홀로 送君獨自盤桓處
서성이는 곳에,
꽃 지고 봄도 가니 花落春歸思莫裁
생각 어쩌지 못하네.
* 누추한 이곳의 도산서당에 처박혀 지내다가 오늘 새벽에 옥 같은 귀인인 정유일이 갑자기 찾아와 주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자그마한 방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나나 정유일이 모두 서당이 맑고 시원하게 천연대 앞의 탁영담 같은 깊은 웅덩이에 비치는 것을 사랑했다. 깊이 웅덩이진 못물을 함께 즐기고 있자니 바로 앞의 높은 곳인 천연대가 물에 비친다. 은자 같은 모습을 한 흰 구름이 둥실 떠 있는 이곳 도산에서 성현들의 훌륭한 말씀이 담긴 누런 책을 보고 있자니 나의 옹졸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임금님 계신 자신전의 푸른 사슬 모양의 무늬를 새긴 대궐의 궁문에서는 일찍이 그대의 훌륭한 재주를 시험하셨었지. 잠깐 만의 반가운 만남이 끝나고 궁궐로 다시 그대를 떠나보낸 뒤에 홀로 하릴없이 왔다갔다 서성이는 이곳에, 꽃이 다 지고 따라서 봄도 다 가고 나니 그대 생각에 이 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네.
도산에서 뜻을 말하다
陶山言志
스스로 기뻐하네, 도산서당 自喜山堂半已成
반 이미 이루어졌음을,
산에 살면서도 오히려 山居猶得免躬耕
몸소 밭 가는 것 면할 수 있네.
책 옮기니 차츰차츰 移書稍稍舊龕盡
옛 서실 다 비고,
대나무 심어 보고 또 보니 植竹看看新?生
새 죽순 싹트네.
깨닫지 못하겠네, 샘물 소리 未覺泉聲妨夜靜
밤 고요함에 방해되는 줄,
더욱 사랑스럽네, 산의 경치 更憐山色好朝晴
아침에 개니 좋음이.
바야흐로 알았네, 예로부터 方知自古中林士
숲 속의 선비,
모든 일 깡그리 잊고 萬事渾忘欲晦名
이름 숨기려 함을.
* 스스로 도산서당이 반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기뻐하니, 산속에 거처하면서도 오히려 직접 밭을 갈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을 면할 수 있다. 반이나마 이루어진 서당으로 책을 옮겨 오니 차츰차츰 옛날에 책을 보관하던 감실같이 좁은 서실은 비어가고, 서당 주위에 대나무를 심어 놓고 틈나는 대로 나가서 보고 또 보고하니 새 죽순이 싹터 오른다. 서당 바깥에서는 샘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나오지만 사람들이 내는 소음과는 달리 밤의 고요함을 방해함을 전혀 느끼지를 못하겠다. 산의 경치도 아침이 되어 활짝 아름답게 개니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여기에 와서 거처해 보니 비로소 옛날부터 숲 속에 숨어 은거하던 선비들이 이런 멋진 풍경 때문에 속세의 모든 일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명예 따위를 숨기려 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도산서당에서 밤중에 일어나
山堂夜起
산 비어 온 방 고요한데, 山空一室靜
밤 되니 추워져 서리 기운 높네. 夜寒霜氣高
외로운 베개 맡에 잠 이룰 수 없어, 孤枕不能寐
일어나 앉아 옷깃 여미네. 起坐整襟袍
늙은 눈에 가는 글자 보자니, 老眼看細字
짧은 등불 번거로이 자주 심지 돋우네. 短?煩屢挑
책 가운데 참된 맛 있어, 書中有眞味
실컷 먹으니 진귀한 요리보다 낫네. ?沃勝珍?
하늘에 반 바퀴 달 떠오르니, 當空半輪月
낮인 줄 잘못 알아 새 놀라 우네. 誤晝驚禽號
빛 모난 연못 바닥으로 들어, 影入方塘底
그곳에 다가가서 손으로 잡으려 하네. 臨之欲手撈
서쪽 정사 조용하니 자취 없어, 西舍?無?
그윽한 은자 꿈에 선경에서 노니네. 幽人夢仙?
시 이루어져 불러서 서로 화답하니, 詩成喚相和
아득히 먼 곳의 학 울음소리 듣는 듯하네. 似聞鳴九皐
* 모두들 잠이 들어 산이 텅 비고 보니 온 방이 고요하기만 하다.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니 날씨가 추워져서 서리 기운만 드높아진다. 홀로 자려고 베개를 베고 누웠으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다시 일어나 좌정하고 옷깃을 가지런하게 여민다. 밤중이라 밖에는 나갈 수 없다. 하여 책이나 볼까 하고 펼쳤으나 늙은 눈에 깨알 같은 가는 글자를 보려고 하니 행여나 좀 더 밝으면 도움이 좀 될까 하여 여러 번 자주 등불의 심지를 돋우어 본다.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실로 책 가운데 참된 맛이 있음을 알겠다. 그런지라 교훈이 담긴 글귀라도 나오면 음식을 찬찬히 씹으면서 음미하듯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어본다. 그 뜻을 음미해 보니 그 맛이 실로 한때 잠깐 입맛을 충족시켜 줄 뿐인 진귀한 요리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을 읽다 보니 동쪽 하늘에 반이 잘린 듯한 바퀴 모양의 하현달이 떠오른다. 새들이 이것을 보고 낮인 줄 착각을 하여 놀라 우짖는다. 조금 지나니 좀 더 높이 떠오른 달이 서당 앞에 있는 모난 연못인 정우당의 바닥으로 옮겨와 물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난다. 나도 모르게 연못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연못에 비친 달을 건져 내려고 한다.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는 곳인 서쪽의 농운정사를 돌아보니 고요한 것이 자취가 없다. 아마도 그곳에서 그윽하게 공부하던 학생들은 나와는 달리 열심히 공부하느라 지쳐서 잠들어 신선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노니는 꿈을 꾸고 있으리라.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일어나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살피고 하던 중에 마침 이 시 한 수가 이루어졌다. 혹 화답할 이라도 없을까 하여 한번 불러 읊어보니 사람들은 아무도 화답하지 않고 아득히 먼 저곳에서 학의 울음소리만이 들린다. 그것이 마치 나의 시에 화답하여 우는 듯이 들린다.
완락재에서 우연히 쓰다
齋中偶書
네 편으로 나누어 풀 매는데 四兵耘草一兵遲
한 편은 느릿느릿,
손 빠른 세 편이 捷手三兵共?伊
모두 그를 꾸짖네.
빠른 사람이 뿌리 남겨 捷者留根煩再拔
번거롭게 다시 뽑으니,
느린 자만 못하겠네, 처음부터 不如遲者盡初時
모조리 뽑아 버린 것만.
* 뜰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풀을 매게 되었는데 네 편으로 나누어서 매게 되었다. 이들 네 편 가운데 한 편은 늦고 다른 세 편은 빨리 풀을 뽑으면서 늦는 한 편을 가리키며 한데 모여 손가락질을 하며 그 편을 나무랐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손 빠른 사람들은 뿌리까지 다 뽑아 버리지를 않았다. 그 자리에서 다시 풀이 돋아나 처음부터 다시 김을 매는 수고를 되풀이해야 하니, 차라리 느린 패가 처음부터 뿌리까지 싹 뽑아 버려 그런 번거로움을 없앤 것만 못하다. 공부를 하는 것도 처음에는 다소 느리더라도 꼼꼼하게 하는 것이, 대충 훑어보고 지나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는가?
도산으로 매화를 찾다
陶山訪梅
묻노니 산속의 爲問山中兩玉仙
두 옥 같은 신선이여,
늦봄까지 머물러 어찌하여 留春何到百花天
온갖 꽃 피는 철까지 이르렀나?
서로 만남 다른 것 같네, 相逢不似襄陽館
예천의 객관에서와는,
한 번 웃으며 추위 우습게 여기고 一笑凌寒向我前
내 앞으로 다가왔네.
* 도산에 가서 산속에 있는 두 그루 옥같이 희고 밝은 꽃을 피우며 신선의 자태를 하고 있는 매화나무에게 물어본다. 평상시에는 다른 잡꽃이 피지 않는 늦겨울이나 이른 봄에만 꽃을 피우더니 올해는 어찌하여 늦봄이 되도록 꽃을 피워 고고한 자태를 뭇 다른 잡된 꽃들과 한데 섞이게 되었는가를. 이 꽃을 보니, 벼슬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던 도중에 머물던 예천의 관아에 있던 매화가 생각난다. 속세에서 애처로운 모습을 한 그 매화와는 사뭇 다른 것 같은데, 이곳의 주인인 나를 보고는 한번 방긋이 웃네. 오로지 나를 보기 위해 그간의 모진 추위도 다 이겨 내고 내 앞으로 쓰윽 다가서는 것 같구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