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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란

석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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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570쪽 | 762g | 148*210*28mm
ISBN13 9791197171512
ISBN10 119717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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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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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담장 주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없었고,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에 평화로웠다. 조대비는 조용한 평화를 눈으로 음미하듯 바라보았다. 소소한 나무들 사이에서 울음을 우는 새는 없었고 화려한 꽃들 사이를 나비가 날고 있었다. 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나비의 율동은 움직이는 그림처럼 보였다.

조대비는 방문을 열면 그림처럼 들어오는 풍경을 좋아했다. 방문으로 보이는 꽃들은 액자를 걸어놓은 것처럼 크기가 꼭 맞아야 했다. 조성하는 방문 크기에 맞춰 꽃을 심었다. 꽃 주위 돌에는 천년의 시간을 의미하는 목숨 수壽 글자를 음각했다. 철쭉 옆으로 매발톱꽃이 야생냄새를 풍겼고 매발톱꽃 옆으로 가막살나무, 때죽나무, 오동나무 잎들이 비밀스런 그늘을 만들었다.

방문이 많은 집이어야 했다. 사방으로 벽보다 방문이 많아서 바람이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고 마당에는 꽃들이 계절 따라 피어서 꽃이 없는 날은 없어야 했고 햇빛, 비, 눈이 하늘에서 자유롭게 내리는 대로 볼 수 있어야 했다. 조대비 말에 따르면 자연은 자유롭지 않고 질서정연했다. 조대비가 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질서였다.
--- p.15

탕! 탕! 탕!
이하응은 사랑방에서 난을 치다가 어깨를 움찔했고 붓질은 어긋났다. 총소리를 들으며 붓을 댄 순간 난엽은 그 자리에서 푹 꺾여버렸다. 귓가의 총소리는 사라졌고 종이에 남은 것은 빗나간 선이었다. 이하응은 화가 난 표정으로 종이를 마구 구겨서 방문으로 휙 던졌다. 방문 앞에는 종이 뭉치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집이 창덕궁과 가까운 탓이었다. 금년 들어 농민들은 서너 달에 한 번꼴로 궁궐 앞에서 시끄럽게 시위했다. 수문군들이 모두 붙잡아 신분 조사를 해보면 농민들도 아니었다. 과거에 농사를 지었든 장사를 했든 지금은 생계가 막막한 양민들이었다. 수문군들 입장에서는 농민들을 붙잡는 일도 시들해진 모양이었다.

이 세상 어디가 도원桃源이냐. 도원은 아득한 거리에서 등 돌리고 있구나. 싸움 끝에 남은 적막을 책임질 자는 누구냐.

이하응은 남은 먹물로 글자를 휘갈겨 쓰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지독히 권태로운 날들이었다. 총소리가 들려도 권태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안에 칩거한 지 달포가 지나있었다. 기방에서 잠을 자거나 술 먹고 시회 패거리와 싸움질하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종친 모임에서 바둑을 두다가 바둑판을 엎어버렸다. 어쩌다가 술기운에 김병기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을 날리면 기분은 화끈하게 풀렸는데 거물을 건드린 만큼 후환이 컸다. 언제 어디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 모를 일이라서 적어도 한 계절은 방안에서 두문불출해야 했다. 김병기를 교방에서 만났다가 술상을 엎어버린 이후로 지금은 얌전히 앉아 묵란을 치는 중이었다.
--- p.32

먼 하늘은 늦여름의 물기를 왕창 떨어트리고 있었다. 시야가 지독하게 흐린 날이었다. 이하응은 희뿌연 산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안개는 한 발자국씩만 물러섰다. 어딘가 웅숭깊은 샘물이 있어서 차디찬 허공으로 흰 빛깔을 계속 뿜어내는 것 같았다. 이하응은 안개로 꽉 차 있는 길을 걸어가다가 저도 모르게 아, 심호흡을 했다. 안개 속에서 맥문동 꽃밭을 딱 마주친 순간 가슴은 선택된 색깔로 흐려졌다. 뿌옇게 퍼진 황금색 바탕에 이리저리 검은 선을 그은 몽유도원도처럼 뿌옇게 퍼진 흰색 바탕에 이리저리 보랏빛 선이 그어진 풍경이었다.

맥문동은 꽃대가 긴 보라색 꽃이었다. 하늘로 솟은 기다란 꽃대들 때문에 창을 든 병사들처럼 보였다. 기다란 꽃들은 셀 수 없이 빽빽했고 촘촘했다. 사열 중인 병사들처럼 질서 있게 피어있는 꽃무리였다. 보랏빛 꽃무리는 눈동자에 강하게 휘감겨들었다. 창을 든 병사처럼, 천을 뚫는 바늘처럼 날카롭게 보이는 꽃들이었다. 이하응은 맥문동 밭을 넋 놓고 쳐다보다가 꽃대 하나를 슬며시 꺾어 들었다.
--- p.47

한집안 싸움이었다. 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서 적은 분명하지 않았고 게다가 이파전이 아니라 삼파전이었다. 이하응은 흰 알을 꼭지에 놓고 검은 알을 하나씩 집어 들어 꼭지 아래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놓았다. 전형적인 삼각형 구도에서 흰 알은 왕이었고 두 개의 검은 알은 백성이었다. 힘의 역학으로 따져보아도 밑바닥에서 균열을 일으키면 꼭대기는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동학이나 서학이나 구별할 것 없이 결국에는 계층 이동 싸움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동학과 서학이 한편이었고 성리학이 상대편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동학과 서학으로 또 갈라졌다. 양편의 백성들이 모두 성리학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성리학이 무너지는 자리에 서학이 치고 들어올 것인가, 동학이 치고 들어올 것인가. 오백 년 이 씨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 해도 백성들은 그들이 원하는 지상 천국을 이룰 것인가. 이하응은 삼각형의 꼭지 성리학을 내려놓았다. 동학을 한편으로 두고 서학을 상대편으로 둔다면 결국에는 조선의 정체성 싸움이었다. 허면 어느 쪽이 더 많이 조선의 백성을 끌어들일 것인가. 성리학이 한편이고 동학이 상대편이라면 내란이 일어날 것이었다. 성리학이 한편이고 서학이 상대편이라면 국제 전쟁이 일어날 것이었다. 성리학은 어느 편과도 전쟁을 해야 하고 성리학이 무너지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

혼자 두는 바둑판은 깊은 생각으로 이끌었지만 재미는 없었다. 이쪽 편을 드나 저쪽 편을 드나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특별한 묘수는 없었다. 절망만 확인할 뿐이었다. 정도전이 조선을 설계할 때부터 조선은 백성이 주인인 나라였다. 오백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새삼스러운 문제였다. 허나 조선에서 어떤 왕이 천제를 대신할 정도로 강한 왕권을 휘두른 적이 있었던가. 이하응은 수심에 찬 눈을 들었다. 조선은 밤을 지낸 수탉이 홰를 치는 것처럼 부활해야 한다.
--- p.227

이하응은 혼곤한 의식 속에서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늘은 나의 편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 날에 꾼 악몽이 호사다마의 의미는 아닐 터였다. 이하응은 자꾸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를 쓰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쓸쓸히 웃었다. 인간이란 거센 물살을 탄 거품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하늘의 운수를 따지곤 했다.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던 생각들은 때때로 하늘이란 이름을 달고 힘을 가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늘이라니. 하늘의 소리라니. 꿈속이야말로 헛것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가장 무방비한 상태가 아닌가.

꿈에서 최제우는 왕이 되어 있었다. 왕이 아닌 자가 왕이 된 모습은 당당했고 자연스러웠다. 최제우는 오른손에 죽창을 들고 맥문동 꽃밭에 서 있었다. 흐릿한 안개가 푸른 나무들 속으로 실뱀처럼 스며들고 그의 오른편에는 천어天語를 들었다는 최시형이 서 있었다. 성리학은 이미 운수를 다했다고 최제우가 외치고 있었다. 이하응도 안개 속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외칠수록 죽창을 든 최제우는 백 명, 천 명, 만 명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아, 맥문동 꽃밭의 안개. 시야를 가린 안개는 천지를 가득 메우며 살갗을 차갑게 스쳤다. 땅도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안개였다.
---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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