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화개재에서 세석평전까지! 나에게는 아직 미답의 구간으로 남아있는 능선을 연결시켜야 한다. 이것이, 쉰 세살이 되는 여름에 내가 내린 결정이며, 장맛비에도 불구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 이유이다. 그 동안, 몇차례 지리산을 찾았었지만, 이 끝봉우리 아니면 저 끝봉우리, 이 골짜기 길 아니면 저 골짜기 길을 헐레벌떡 남 따라 오르내렸을 뿐이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떠날 때는 여럿 중의 하나로 떠나더라도 걸음만은 나의 속도로 나의 길을 걷다 돌아오기로 하자. 가다가다 힘이 모자라면 며칠 더, 산에서 묵고 오더라도 지리산의 고샅고샅을 고즈넉이 내려다보면서, 오래 파먹을 수 있는 추억으로 담아오기로 하자. 일상이 자신의 쳇바퀴에서 미련 없이 나를 풀어 줄 때쯤이면, 나의 체력도 산을 걷기에는 이미 늦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뜬금없이 게릴라성 호우를 솓아붓는 장마철에 미루어 오던 종주를 계획하고 떠나는 나의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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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하자개 김성학 씨네에 맡겨 둔 작은 보따리를 찾아들고 다시 절로 올라오니, 칠순 넘은 노보살이, 공양 드시우 한다. 땔감은 넉넉하여 아랫목이 절절 끊는데, 미닫이 문하나를 사이에 둔 노보살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 흐를 때까지 TV를 끄지 않으신다. 산중 절간에서 조용한 밤을 지내리라던 기대가 시작부터 빗나가 버렸다. 멀고 먼 해우소에나 함께 가 주실라나 보니 코를 골고 계신다.
창호지문 한 겹 밖엔 그야말로 심심산골의 어둠과 적막이 차지하고 있다. 풍경 끝 양철생선이 두어 번 땡그랑거린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 아차 내 신발! 그때야 마루 밑에 넣어 둔 내 등산화가 생각났다. 절간 쥐들이 두툼한 소가죽 신발을 검열하는 모양이다. 방안에서부터 랜턴을 켜들고, 문고리를 몇번 덜컥거리고야 문을 열고 나갔다. 신발아 미안하다. 나만 방안에 있었구나. 너 없이는 못 갈 길을 앞에다 두고, 나만 따뜻하였구나. 머리맡에 모셔놓고, 노루잠 끝에 아침을 맞는다.
작은 산새들이 요사채 앞 나무에 날아들어 낯선 사람을 보아도 놀라지 않는다. 나를 이 산의 일부로 인정해 주자는 건가? 샘터 찾아가 세수하고 비누 없이 양말 빨아 널었더니, 이내 꽁꽁 얼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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