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이 느긋하게 널브러져 자는 모습을 보면, 고양이의 평균 수면 시간이 하루 열여섯 시간이라는데 바깥아이들은 한시인들 어디서 편히 잠을 잘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애들이 신 나게 장난치는 걸 보면, 다 큰 고양이도 얼마나 장난을 좋아하는데 바깥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늘 긴장 속에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애들을 행복하게 지내게 하고 싶으면서 그때마다 바깥아이들의 불행이 떠올라 가슴을 찌른다. --- p.96
명랑이 때문에 놀랄 때가 있다. 내가 무심히 곁을 지나는데 갑자기 후다닥 우당탕 기겁을 하며 달아나는 것이다. 명랑이 이 녀석, 뭐 찔리는 거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저한테 해코지 한 번 한 적 없는데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아무튼 겁은 우라지게 많어!" 종종 어디선가 들어본 이런저런 험구를 입에 올리며 혼자 킬킬 웃곤 한다. 고양이들과 함께 살면서 생긴 버릇이다. 자기 애한테 정을 담뿍 담아 욕을 하는 엄마들 심정, 이제 이해된다. 하여간 명랑이 녀석, 의심도 더럽게 많고! --- p.134
“알았어, 명랑아! 그만 좀 해!” 아주, 저 혼자만 깨끗해요! 파바바바박! 퍽! 퍽! 퍽! 명랑이가 화장실 모래를 미친놈처럼 퍼서 뿌려댄다. 응가를 덮지 않고 그냥 나오는 보꼬랑 딴판이다. 농사를 져라, 농사를 져! 네가 땅강아지냐? 명랑이를 흘겨보다 보니 모래 위에 변이 묽다. 이크! 아니나 달라,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명랑이가 엉덩이를 낮추는 꼴이 방바닥에 똥꼬를 문질러 닦으려는 게 분명하다. 휴지를 말아 쥐고 달려가, 가까스로 방바닥을 보호했다. 세이프! --- p.198
전에는 나도 길고양이를 치료하느라 많은 돈을 들이는 건 합리적이지 못한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비용을 건강한 길고양이들에게 쓰는 게 낫다고. 하지만 ‘합리’라는 게 뭘까? 이치에 맞는, 즉 도리 아닐까? 살려달라고, 살겠다고 생명의 의지를 보이며 간절히 바라보는 그 눈빛을 저버리지 않는 게 사람의 근본도리일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더욱이 그 고양이들이 다친 건 전적으로 우리 인간 탓이다. 만일 내가 달리는 자동차에 맞닥뜨린 고양이라면? 상상만 해도 그 무시무시한 폭력성에 정신이 아뜩하고 속이 메슥거린다. --- p.259
수입의 대부분을 저들에게 쓰고 기꺼이 시중들면서 가끔 황송하기도 한 게 고양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양이집사라 칭한다. 때로는 그 희생이 과도하기도 하지만 고양이라는 종족은 그걸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을, 그래서 위안과 생기를, 곧 뼛속까지 훈훈해지는 행복감을 준다. 사랑이라는 게 감정 상태인지 영적 상태인지 헷갈리게 하는 그 행복감! 내가 바깥고양이들과 연루돼 겪는 고달픔은 우리 란아, 보꼬, 명랑이가 주는 행운을 갚는 셈인가 보다. 당최 공짜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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