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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사라진 자리에 상상력을 심다!
어느 가수의 이야기다. 새로운 음반을 내놓고 으레 하는 뮤직비디오를 주연까지 겸하여 찍은 그는, 한 심야라디오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솔직히 뮤직비디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 음악을 듣는 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슬픔이나 기쁨의 감정, 따뜻함과 차가움의 느낌을 개개인에게 슬쩍 던져놓고 싶습니다.” 후회와는 다른, 아마도 음악이라는 장르를 다루는 예술가의 속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책을 만들며, 사실 그와 같은 생각을 자주했었다. 아니, 〈케이크 도둑〉을 기획하며 새삼 떠올렸다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할 것 같다. <케이크 도둑>은 케이크를 쫓는 과정 속에서 얽히고설키는 등장인물들의 관계, 서로 동떨어진 듯 보이다가도 몇 페이지 뒤에 절묘하게 연결되는 사건의 복선이 놀라운 작품이다. 이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공간에 글자를 새겨 넣는다면 어딘가 균열이 생길 정도로 그 짜임새가 촘촘하다. 알기 쉬운 메시지에 그 메시지보다 더욱 알기 쉬운 그림들만 보다가 우연한 기회에 접한 〈케이크 도둑〉은, 어느 특정한 주제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담고 있더라도 그것 역시 독자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보는 이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이야기와, 그 후의 뒷맛에 엄지손가락 두 개를 치켜세울 만하다. 아마도 글자가 사라진 자리에 자리잡은 놀라운 상상력과 창조의 세계에 어른들이 먼저 빠지지 않을는지……. 그 두 번째 이야기를 미리 엿본 기획자의 마음이 벌써부터 즐겁다. 눈으로 읽지 말고 머리로 읽어라! 케이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끝없는 이야기 릴레이 끝없이 진화하는 요즘 영화계에 던져진 무성영화처럼, <케이크 도둑>은 글자가 없다. 표지조차 여성복과 남성복처럼 성격이 확실히 드러나는 여타 그림책과 달리 그 구분이 모호하다.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예의범절? 아니면 방귀나 똥? <케이크 도둑>의 표지엔 한 멍멍이 부부의 조용한 일상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오른쪽에 펼쳐진 숲 속에 검은 쥐 두 마리가 멍멍이 부부를 훔쳐보고 있는 것이 앞으로 펼쳐진 엄청난 스펙터클의 소박한 서곡 정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