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과학이 자연과학을 포함하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과학도 앞으로 인간에 대한 과학(인문학)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두 과학은 머지않아 하나의 과학이 될 것이다. - 칼 마르크스
지난번 내한했던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지식의 각 분야가 세분화하고 전문화할수록 그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안목이 커지는 세상이다"(조선일보 인터뷰 참고)라고 말했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의 학문의 경향은 학제간의 교류 혹은 교차 연구가 커다란 흐름이다. 이는 갈수록 복잡한 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학문의 전문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로써, 보다 총체적 인식에 도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마치 그리스 철학자들이 수학자였고 과학자였으며 의사였듯이.
신간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는 말 그대로 과학과 여러 학문들이 총체적으로 빚어내는 교향곡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신세대 물리학자 정재승은 어머니 강보에 싸여서부터 영화를 보러 다녔고 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인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세계의 독서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 자양분을 바탕으로 다양한 학문과 사회 현상을 과학이란 이름으로 헤집고 돌아다닌다. 가볍게는 '머피의 법칙'을 들먹이며 일상 속에 감추어진 과학의 법칙을 이야기하거나, 차가 밀릴 때 왜 내가 선 차선만 차가 밀릴까 라는 교통의 물리학, 달에서도 만리장성이 보인다는 과학 상식의 오류, O. J 심슨 사건을 무죄로 결말나게 했던 어리석은 통계학의 허구 등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이처럼 때로는 빠르고 유쾌하다가, 불쑥 진지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한다. '잭슨 폴록'을 거론하면서 현대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 위에 '카오스 이론'을 접목시키고, 바하에서 비틀즈까지 성공한 음악들을 들으며 그 패턴을 추출해 음악과 음악을 향수享受하는 사람 사이의 정서적 법칙을 토로하기도 한다. 또 신세대 과학자답게 서태지에 열광하다가 그의 헤어스타일에서 '프랙탈 구조'를 발견기도 하며, 백화점에 들렀다가 백화점 설계에 숨은 자본주의 심리학과 파레토 법칙을 예리하게 파헤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경제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복잡성의 경제학을 말하기도 하고 증권회사에서 물리학자를 모셔 가는 이유를 설명하며 주가의 복잡성을 물리학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는 해박한 지식과 폭 넓은 시선을 과학에 접목시켜, 과학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총체적 세계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을 쉽고 흥미 있게 접할 수 있는 교양 과학서인 동시에 인문학적 성찰로도 읽히는 책이다.
복잡성의 과학이란 1970년대 이후 물리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비선형 물리학의 한 분야로서, 인간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생태계의 생명 현상과 군집 운동, 뇌, 기후, 모래 더미의 운동 등 복잡한 시스템을 비선형 동역학, 카오스 이론, 인공생명 등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기술하고 다루는 학문을 말한다.
1970년대 이전까지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복잡한 운동을 기술하려면 무한대의 변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히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연의 모든 시스템을 선형 시스템으로 간주하여 단순화한 후 기술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시스템은 고유의 복잡한 행동 패턴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1970년대 이후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복잡한 패턴이 비선형적인 관계를 가진 몇 개의 변수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자연과 우리 사회의 복잡한 패턴도 몇 개의 변수로 이루어진 방정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이 이론의 발전은 많은 물리학자들을 정치, 경제, 역사, 사회, 생명 활동, 뇌의 사고 과정 등 그 동안 너무 복잡해서 기술할 수 없다고 믿어온 분야들에 뛰어들게 하였다. 저자 정재승도 이 과학자들의 한 사람으로, 자연현상들 속에서 규칙성을 찾고 해석하는 시각을 넘어'복잡한 사회현상'에 이 이론을 적용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즉 왜 피라미드 기업이 그토록 기승을 부리는지, 불규칙한 주가 곡선 안에는 어떤 질서가 숨어있는지, 비틀즈의 음악은 왜 아름다우며 세상은 왜 그토록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만 하는지를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은 복잡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