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건 나도 몰라. 하지만 군대가 진입하고 있어. 보건 당국이 시킨 일이래.”
“군대가? 뭘 하려고?”
“새로운 질병 때문이래. 라디오를 들어서 알 거야, 그치? 그들은 전염병이 우리한테서 퍼져 나갈까 봐 두려워해.”
앨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우물가에서 우연히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러려니 했고, 더 이상 그런 소문들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마약, 폭력, 질병, 기아…… 이곳에서 죽을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를 더 추가해서 걱정하겠는가. --- p.20
여전히 그 이름에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그는 어떤 식으로든 불려야 했다. ‘노아(Noah)’라는 알파벳 네 글자가 그의 오른 손바닥에 굵은 펜촉으로 그은 듯한 글씨로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가 깨어났던 지옥의 한 모퉁이처럼 그 이름은 그에게 낯설었다. 신분증도 돈도 주머니에 없었고, 기억도 고통의 바다에 빠뜨리고 없었다. --- p.28
44층 편집국은 방금 전 화재 경보가 울린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했다. 책상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고, 직원들은 전부 어디론가 향할 태세로 움직였다. 아이패드나 메모장을 손에 든 직원들은 셀린을 지나쳐 커다란 회의실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사방이 플렉시 유리판으로 된 네모난 회의실은 사무실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고, 사람들로 가득 차서 이제는 더 이상 앉을 자리도 없었다. --- p.106
노아가 다른 여권을 꺼내 들었다. 인적 사항이 기록된 코팅면에서 ‘존 그린’이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그는 그것을 거의 떨어뜨릴 뻔했다. 숨을 멈추고 또 다른 여권을 열었다. 충격은 더욱 커졌다.
데이비드 모튼, 존 그린, 사무엘 브링크만.
‘세 개의 다른 여권, 세 개의 다른 이름.’
그러나 동일인물의 사진.
‘내 사진.’
그는 신분증을 모두 나란히 놓고 그것들을 노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난 누구야?”
노아는 속삭이듯 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는 이전의 삶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가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 p.134
서구 문명이 21세기 이후에도 살아남을 가망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시는지요?
글쎄요, 약 10퍼센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동료 한 명과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동료는 제가 너무 낙관적이라고 질책하더군요.
저는 11퍼센트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고
바뀔 수 있는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양한 데이터베이스가 (……)
인간은 너무 늦게 반응한다고 말해줍니다. --- p.265
‘적이 누군지 안다면 수천 번 싸워도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얼굴 없는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또다시 그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노아가 이미 아는 내용을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널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아. 그러니까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오스카의 따귀를 때리는 것처럼 오인하도록 행동해. 그런 후 뒤에 있는 사슬을 잡아 마스크 쓴 남자의 목에 감아. 그러면 그는 반사적으로 손이 목으로 갈 테고, 네가 총을 탈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그 뒤는 어린애 장난이지.’ --- p.323
“1972년 로마클럽이라고 불리는 학자, 사업가, 정치가 그리고 문화예술가들로 구성된 모임이 지구의 붕괴를 예견했습니다. 왜냐하면 급속히 늘어나는 인구가 자연을 남용해 더 이상 공존을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로마클럽은 인류가 자연과 공존하도록 시민들의 인식 전환을 유도했으며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함께 일하는 합일체를 형성했습니다. 그 반면 Room 17이라는 급진적인 비밀조직도 결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인구를 지구가 감당해낼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줄이고자 했습니다.” --- p.413~414
이미 현재에도 저항이 점차 더 세지고 있습니다.
2020년대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조에 이를 것인데
결국 혁명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형태로
분출될 것이라고 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낡은 시스템은 스스로 소멸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쫓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뭔가를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
그런 변화는 물론
평화로운 의회의 토론을 통해서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70억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습니다. --- p.431
“우리는 실재하는 사실들을 알고 있어. 어떤 천치라도 구글로 검색할 수 있지만, 우린 못 본 척 지나쳐버리지. 비참함에 대항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아. 대체 왜?”
--- p.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