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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유치할수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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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2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39쪽 | 425g | 148*210*20mm
ISBN13 9788959593750
ISBN10 895959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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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해용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섬진강 상류의 임실군 청웅면에서 태어나 자랐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고려대학교에서 통계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잠시 근무하다 후진양성의 뜻을 품고 1982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 통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연대학장과 대학원장, 한국조사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때 첫사랑의 상처로 방황한 기억도 있다. 그때의 상처로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세상을 꿈꾸며 이웃들과 함께 열심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자전적 에세이 『부지깽이 사랑』이 있으며, 이번에 발간한 『사랑은 유치할수록 아름답다』는 두 번째 에세이로 사랑과 행복에 대한 작가의 철학과 고뇌를 솔직하게 담았다.
그림 : 박복규
대학 졸업 후 잠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1983년부터 2011년까지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미술대학장, 교육대학원장을 지냈다. 현재 미술대학 명예교수이며,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에 작업실을 짓고 작품 활동에 정진하고 있다. 일찍이 쪽빛에 매료되어 연구에 젊음을 바쳤으며 그 결과 쪽빛에 대해서는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는 신안 앞바다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며 바다의 신비로운 색채에 빠져 바닷속 풍경을 화폭에 담는 데 열심이다. 13회의 개인전과 수많은 초대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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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4막 4장

마누라가 쇼핑하는 데 따라가기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 역시 집사람과 동행해 본 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집사람이 구두를 사주겠다고 하기에 백화점을 따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구두 하나만 사가지고 백화점을 나오기가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집사람이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잠시 따라다녔습니다. 사지도 않을 물건을 만지고 걸쳐 보고 물어보기를 무려 몇 시간….

맨 정신으로는 따라다니기 힘들었습니다. 평소 집에서는 만사 귀찮아하던 집사람이 백화점에서는 밤하늘의 별처럼 눈이 반짝였습니다. 구경하는 데 넋이 나가 주변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한마디 하고 싶은 충동이 목 바로 밑에까지 올라왔지만 후환이 두려워 입을 닫았습니다. 결국 나는 중도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휴게실에서 쉬기로 하고 집사람은 혼자 구경을 좀 더 하기로 하였습니다. 휴게실에는 나같이 나이 든 사람과 어린애들 몇이 놀고 있었습니다.

몸을 의자에 기대고 멍한 눈으로 앉아 쉬고 있는데 옆에 있던 꼬마는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신이 나서 놀고 있었습니다. 꼬마가 귀엽게 생겨서 “꼬마 몇 살?” 하고 물었습니다. 꼬마는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세 개를 펴고 두 개를 오므려서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아! 세 살이구나?” 내 말을 들은 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 의자에 서서 날 바라다보았습니다.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주머니에 있던 사탕 몇 개를 꺼내주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몇 개는 손에 쥐고, 몇 개는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땅에 떨어진 사탕을 주우려면 또 손에 쥐고 있던 다른 사탕이 떨어지고, 또다시 떨어진 사탕을 주우려면 다른 사탕이 떨어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였습니다. 모두 가지려는 노력이 가상해서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다가 주워서 몇 개는 주머니에 넣어주고 몇 개만 손에 쥐도록 해주었습니다.

꼬마는 사탕을 들고 총총걸음으로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엄마한테 갔습니다. 그리고는 엄마 손을 끌어당기더니 나를 가리키며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꼬마 이야기를 듣더니 아이 엄마가 내게 감사하다며 공손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꼬마는 다시 내게 오더니 내 옷을 만지기도 하고 무릎에 올라와 앉기도 하며 마치 잘 알고 지내는 가족처럼 굴었습니다.

나도 심심하던 차에 조카처럼 귀여워 안아주고 얼러주며 한참을 같이 놀았습니다. 아이 엄마가 볼일이 다 끝났는지 우리가 놀고 있는 쪽으로 오더니 이제 집에 가자며 꼬마 손을 잡았습니다.
아쉬운 이별을 할 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꼬마는 가지 않겠다며 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에 정이 들었나 봅니다. 아이 엄마가 순간 당황하면서 “아저씨, 미안해요” 하더니 아이에게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꼬마 녀석이 “할-아-아 버-어-지 안녕!” 하는 인사를 뒤로하고 엄마를 따라 쫄랑거리며 멀어져 갔습니다. 가면서도 몇 번을 뒤돌아보며 내게 손을 흔든 그 녀석은 많은 여운을 남기고 갔습니다.

아! 할아버지라?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들어본 ‘할아버지’라는 말은 그 꼬마에 대한 사랑의 깊이만큼 내 마음에 각인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할아버지? 그 어린아이 엄마의 눈에는 내가 할아버지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빙그레 허탈한 웃음을 웃고 있는데 집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미안했던지 “이제 가자!”며 내 팔짱을 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심코 지난 세월의 숫자만큼이나 눈가에 잡히는 주름과 목에 깊게 패인 자국들이 “너 할아버지 맞아!” 하며 내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만 구두 한 켤레 얻어 신으러 백화점 따라갔다가 졸지에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돌아온 그날 내 인생의 4막 4장이 시작되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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