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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는다

: 화가 윤지원의 기억과 장소

[ 양장 ]
리뷰 총점9.8 리뷰 4건 | 판매지수 24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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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2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360g | 125*185*20mm
ISBN13 9791165383343
ISBN10 116538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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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마당 위로 빛이 쏟아질 때 외롭다는 것을 나는 일찍 알았다. 빛과 그림자는 담벼락에 묘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잠은 달아나고 대청마루 끝에 가만히 앉아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다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는 긴 오후의 끝에 붉게 지는 해를 마주하기도 한다. 지는 해는 장엄하다. 내 그림은 바다와 태양과 그림자와 빈집의 고독 사이에서 태어났다. 뒤라스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스탕달이 옳아요. 유년 시절은 끝이 없어요.
---「텅 빈 마당 위로 빛이 쏟아졌다, 부산 송도」중에서

이제 음악을 하는 아이는 없다. 친구들은 그렇게 가르쳤는데 끝까지 하는 아이가 없으니 아깝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음악을 통해서 창의적이고 인내하고 다른 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얻었다면 큰 행운이다. 지금 연주자로 있지 않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시간은 결코 헛되이 낭비되지 않았다. 음악을 이해하고 가까이에서 접하는 삶은 또 다른 행복이다. 음악이 아니라도 인간이 경험한 어떤 것에도 낭비는 없다.
---「누구에게도 낭비는 없었다, 베르디 국립음악원」중에서

멈춰 서서 걸려 있는 그림을 보다가 다시 걷는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버스나 전차를 탈 경우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목적지까지 걸어간다. 걷다 보면 오래된 도시가 전하는 매력이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천천히 또박또박 느리게 카도르나역까지 걸어갔다. 이제 겨울이 시작된다.
---「신사와 예술의 거리, 비아 브레라」중에서

두근두근 개봉박두. 표지를 넘기니까 ‘노인과 바다 1952’라고 쓰여 있다. 아뿔싸 이럴 수가, 믿어지지 않았다. 1952년 『노인과 바다』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에 나온 명실상부한 초판본이다. 카드로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보니 세금 포함해서 이십칠 달러다. 주옥같이 귀한 삼십 분. 식당에 빈자리가 있었다면 내게 이런 행운은 오지 않았을 텐데 빈자리가 없어서 주어진 삼십 분이 행운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노인과 바다』 초판본, 이타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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