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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모노클

읻다시인선-14이동
리뷰 총점9.7 리뷰 3건 | 판매지수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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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98g | 115*190*20mm
ISBN13 9791189433635
ISBN10 118943363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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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반쪽을 가득 뒤덮은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밤은, 도둑맞은 표정을 자유로이 돌리는 멍든 여자를 기뻐 날뛰게 한다.
---「곤충」중에서

피아노에서 건반이 다 빠져나갔다 / 컴컴한 황야에서 나는 기쁨에 젖으리니 / 벌거벗은 낮의 행진을 방해하는 / 공중에 드러난 현은 끊어지리라
---「제비꽃 무덤」중에서

변화무쌍한 식물의 성장이 얼마나 발랄한지, 나는 그만 책을 읽을 수도 담배를 피울 수도 없었다. 가지가 흔들린다, 활활 타오르는 녹음에 에워싸인다, 식물들의 그 어떤 작은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나 자신의 표현력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고, 손을 들거나 웃는 일조차 식물들의 표정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 것은 무엇 하나 없고 식물들이 움직이는 그대로를 반복하고, 표정 또한 식물들에게서 훔친 것이다.
---「전주곡」중에서

고리 하나가 더 늘었다는 것은 명랑한 날의 기념이자, 과거로 이어지는 사슬이 늘었다는 뜻이므로. 빛바랜 모든 것은 공중에 흩어져 마지막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차츰차츰 다가오는 공허한 울림, 그것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떠도는 파멸의 리듬일 줄이야. 자연의 움직임, 또는 정해진 질서가 입술 위에서 화려한 꿈을 갈망하는가.
---「전주곡」중에서

이곳 사람들은 미쳐 있다 슬퍼하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의미가 없다 눈은 녹색으로 물들었다 믿음은 불확실해지고 앞을 보는 일은 나를 초조하게 한다 / 내 뒤에서 눈을 가리는 것은 누구인가? 나를 잠에 빠뜨려다오.
---「녹색 불꽃」중에서

나는 미도리라는 이름의 소년을 알고 있었다. 뜰에서 길가로 가지를 뻗은 살구꽃처럼 무척 연약한 느낌이었다. 격리 병실에서 막 나온 참이었으니. 소년의 감색 새옷에서 나던 냄새가 눈에 선하다. 돌연 내 눈앞을 스쳐 갔다. 소년은 어둑한 과수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두운 여름」중에서

오직 한낮의 벌거벗은 빛 속에서만 현실은 붕괴한다.
---「꿈」중에서

어린 시절의 기차 통학. 벼랑과 벼랑 사이 풀숲과 삼림지대가 객실로 들어왔다. 양쪽의 유리에 옮겨붙는 밝은 녹색 불길로 우리의 안구와 손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승객들의 얼굴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짙은 부분과 옅은 부분으로 나뉘어, 덕지덕지 창가에 남겨졌다. 풀로 만든 벽에 기대어 우리는 교과서를 무릎 위에 펼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두운 여름」중에서

찌부러진 포도의 즙이 / 공기를 물들이고, 어둠은 공기에 젖는다. / 창백한 황혼 녘에 서성이며 / 사람들은 무거운 듯 심장을 말리고 있다.
---「포도의 오점」중에서

손가락은 건반 위 공기를 튕긴다. / 음악은 통곡으로 울려 퍼지며 헤맨다. / 다시 빛바랜 하루가 남고, / 한 무리의 죽음이 정체되어 있다.
---「계절의 모노클」중에서

창백한 황혼이 창문을 기어오른다. / 램프가 여자의 목처럼 하늘에 매달려 있다. / 거무칙칙한 공기가 방을 가득 채운다―한 장의 담요를 펼친다. / 책과 잉크와 녹슨 나이프는 나에게서 조금씩 생명을 앗아가는 듯하다. / 세상 모두가 비웃을 때, / 밤은 이미 내 손 안에 있었다.
---「녹슨 나이프」중에서

상냥했던 사람의 시체는 어디에 묻혔을까. 우리의 잃어버린 행복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아침, 눈 덮인 지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의 꿈을 파내는 것만 같은 삽 소리가 들린다.
---「겨울의 초상」중에서

맑은 날 / 말은 고갯길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싶었습니다. / 한 땀 한 땀 구름을 꿰며 / 휘파람새가 지저귑니다. / 그것은 자기에게 오지 않고, 자기를 떠난 행복처럼 / 슬픈 울림이었습니다.
---「계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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