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에서 다루는 항해의 여정에는 특별한 순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설치된 모든 작품은 뉘앙스와 재료 등 표현의 차이만 달리할 뿐 작가가 오래 숙고한 질문과 가치지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공간인 서울관 지하층의 서울박스, 5전시실, 복도로 이어지는 일반적 관람 동선을 따라 전시의 흐름과 맥락을 정리하여 다양한 항로 중 하나로 소개하고자 한다. 하찮고도 숭고하게: 욕망의 밤바다를
---「하찮고도 숭고하게: 욕망의 밤바다를 슬기롭게 항해하는 방법에 관하여」, 김경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중에서
최우람은 항상 특정한 순간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기보다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는 종종 조각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시뮬레이션’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동시에 작업을 인류와 결부시킨다. 이처럼 완전히 개인적인 것과 인간적 표현의 더 넓은 스펙트럼을 결합하는 것은 최우람에게 있어 의미 형성의 맥락을 제공하고, 전환하고, 질문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한다.
---「「최우람 - 맥락 제공자로서의 예술가」, 크리스티안 폴 (큐레이터, 뉴스쿨 미디어학과 교수)」중에서
아마도 최우람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닫힌 메커니즘과 열린 의미 사이의 조용하고 역동적인 긴장일 것이다. 그 긴장의 구체적인 사례가 소음이다. 최우람의 작품/ 기계에는 움직이는 부분이 아주 많기 때문에 소음도 많이 난다. 기계에서 소음이 나는 경우는 지나치게 작동하고 있거나(엔진 회전수가 너무 올라가는 경우), 마모되거나 고장 났을 경우다. 소음은 진동과 같이 오며, 진동은 기계를 망가트린다. 사람이 타는 기계라면 소음과 진동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뿐 아니라 작동오류나 고장의 원인 혹은 결과가 된다.
---「「기계는 예술을 제어할 수 있는가」, 이영준(기계비평가, 계원예술대학교 교수)」중에서
최우람의 방향 상실 서사 역시 미래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 작은 방주 가까이 배를 인도하는 황금빛 천사가 매달려 있다. 화려한 금박이 입혀져 있지만 천사는 기운을 잃고 축 늘어져 있다. 방주의 천사는 우리를 구원해줄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울과 무력함이라는 인간적인 결함을 지닌 지상의 존재다. 인간의 약점과 불완전함을 그대로 내포한 천사는 인간과 구분되지 않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이기도 하다.
---「「방향 상실의 구원 서사: 방향 상실의 구원 서사: 최우람의 최우람의 『작은 방주』 프로젝트」, 문혜진(미술 비평가)」중에서
방주는 생존을 위한 도구로 가득하다. 각각의 도구는 개별 작품이기도 한데, 높이 치솟은 〈등대〉(2022)는 다른 생존자들에게 위험을 알릴 수 있고, 과학 장비의 결합체인 〈제임스 웹〉(2022) 은 여정을 기록할 수 있다. 방주의 노는 짜여진 동작을 통해 다양한 움직임으로 배를 방어하며 (넓은 방패를 든 로마 기병대를 상상해보라), 추진력을 생성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서로 맞지 않는다. 선장 두 명이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대립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방주는 내부에서부터 분리되어 야누스와 같이 양면인 듯 보인다.
---「「국가라는 배」, 앤드류 러세스 (미술 평론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