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년경 구술작업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제주4·3위원회 후유장애인 불인정에 대한 재심을 신청하고 행정소송을 하는 과정을 도와주던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구차한 이야기를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한사코 반대했다. 그러자 그분이, 증언하기는 부정적인 기억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자기 치료의 기능’이 있다는 말로 나를 설득해서 결국 구술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행정소송까지 패소하면서 충격을 받아 집에 칩거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행정소송과 구술작업 과정에서 만난 제주4·3연구소의 고성만, 김명주 연구원이 글을 많이 쓰라고 격려해 주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다 4·3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아온 사람도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교육 자료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달력 뒷장에 낙서하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몸이 자주 아프니까 나 스스로 좀 치유가 되려나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면서 4·3 이전 아름다운 산촌의 유년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을 곁들이면 좋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그래도 지금만큼 견뎌온 것은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기억의 조각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10여 년 전 김명주 연구원이 달력에 쓴 낙서 글을 컴 퓨터에 입력해주었다.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후 4·3재단의 문학상 공모에 응모했다가 떨어지고 낙심해서 한 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기도 했다. 2009년 4·3연구소가 발간한 구술 자료집 『그늘 속의 4·3』에 나의 구술 기록이 실리게 되었고, 허영선 소장님께서도 글을 계속 써보라며 격려해주기도 했다. 2019년 5월부터 이제윤 요가 선생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오셔서 요가를 가르쳐주게 되었다. 선생님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드 리고 그간의 이야기를 하니 써온 글들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 책에 함께 넣자고 했다.
요가 선생님 소개로 서른 살의 젊은 황신비 선생님을 만나 80의 나이에 난생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아무 기초도 없이 그리는 수채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원하던 것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황신비 선생님과 7개월 동안 그림 작업을 하면서 나도 힘들었지만, 선생님도 80이 된 할머니에게 그림을 지도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을 것이다.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서툰 글이 문장이 되도록 도와주신 고혜경 선생님, 책이 나오기까지 손을 보태주신 권유연 선생님, 한그루 출판사, 제주4·3연구소 허영선 소장님… 그 밖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장차 나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된다고 하니 한편으로 두렵고 한편으로는 무척 기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과 만나고 싶다.
---「머리글_다시 한번 세상과 만나고 싶다」중에서
밭일 가셨던 할아버지가 땅거미가 내려앉고 저녁노을이 지고 나서야 동구 밖부터 워낭소리를 철그렁거리며 오시면, 소 등에는 등짐이 잔뜩 얹혀 있고 우렁이가 먹을 꼴도 한 짐이었다. 할아버지와 소달구지를 타고 자갈돌 길을 갈 때면, 달구지 바퀴는 덜그럭 덜그럭, 워낭은 딸그랑 딸그랑거리며 박자를 맞추곤 하던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 p.33
광령리 외가는 토벌대가 마을 전체에 불을 질러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남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외할머니만 살아계셨어도 지금 내 모습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 외가 식구들이 몰살되며 불타버린 광령 집과 더불어 나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도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 pp.50~51
꽃이 돈이 되다니!
꽃을 딴 나의 수고가 돈이 되다니!
너무 기뻐서 가슴이 뛴다
돈이 있으면 필요한 것을 할 수 있으니
이제 나도 어엿한 한 사람이 되는 건가
바다 건너 부모도 만날 수 있겠지
일 환은 노란 연필 한 자루 사고
일 환은 공책 사고
삼 환은 저금하려고 국어 책에 끼워 둔다
내게 인동꽃 꽃말은 희망, 독립, 자유
--- p.85
이 세상에 하나뿐인 딸 르네, 아낌없는 사랑이 내린 선물. 르네는 내 삶의 원천이자 버팀목, 아니 내 삶의 전부다. 사랑은 흐르는 물에서도 뿌리를 내린다는데 르네야말로 흐르는 물 같은 내 삶에 내린 든든한 뿌리이다.
--- p.114
4월이 돌아오면 외할아버지 생각이 더 난다. 그리고 외할머니, 외삼촌, 불타버린 광령 집.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그 시간들. 무시무시한 죽창을 들고 다니던 사람들, 총소리…. 그러나 이렇게 순박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 p.127
난 내가 싫다. 내 모습이 싫다. 척추가 돌출된 뒷모습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에 한평생을 허우적댔는지. 4·3의 그날 밤, 폭우에 바윗돌이 내 등을 가차없이 내리쳐 곤두박질쳐진 이후 평생을 장애라는 육신의 감옥 속에 살아왔다. 내 모습을 나조차 보기 싫고 세상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며 조롱하듯 보는 것 같아 두렵다. 그래서 바깥세상은 상대하기도 힘들거니와 상대해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아무런 힘도 방어할 능력도 없다.
--- pp.132~133
내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4·3의 아픔을 지닌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삽화로 그려보고 싶다. 유년 시절, 천진스레 뛰놀았던 그 풍경이 그립고 보고 싶다. 달구지 타고 풀꽃 들고 서 있던 아이는 이제 없지만, 추억들은 지금도 내 삶의 원천이 되어 나를 지탱하게 해준다.
--- p.151
산책이 이렇게 기쁜 이유는, 산책이 나에게는 그만큼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더욱이 혼자 산책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일흔 넘도록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에게 입혔던 상처들이 희미해지고 마음이 굳건해지면 마음 안의 무언가가 세상과 맞닿아 연결되는 것 같다.
---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