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사씨남정기」「서포만필」등에서 추출해 엮은 뛰어난 서사
『구운몽』『사씨남정기』등 뛰어난 한글소설을 남긴 서포 김만중의 국문정신과 유배문학을 전승, 보전하여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제정된 제3회 김만중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임종욱 작가의 장편소설『남해는 잠들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장편소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남해 서포 김만중의 남해 유배생활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김만중의 대표작 한글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와 산문집『서포만필』등에서 추출한 주요 소재와 주제, 등장인물까지 재탄생시켜, 소설 속에 씨줄과 날줄로 교묘하고 흥미롭게 엮은 수작이다. 서포가 남긴 작품의 근간에서 추출한 서사를 바탕으로 삼은 까닭에 문학적 격조와 구성, 서사 전개력 등에서 뛰어나며 서사의 인과관계가 잘 얽혀 있는 것은 물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전개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잠시라도 손에서 책을 떼어놓지 못하게 만든다.
소설 전체를 15신의 장으로 나누어 각 장의 시작을 남해 유배지에서 보내는 김만중의 서신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그 장의 끝을 한양에 살고 있는 김만중의 부인이 남편에게 보내는 답장으로 갈무리하는 독특한 구조를 띠게 했다. 각 장의 서신 중 김만중이 부인에게 보내는 앞의 서신은 그 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미리 엿볼 수 있게 하는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부인이 김만중에게 답장을 하는 맨 뒤의 서신은 그 장의 사건을 마무리하고 다음 장으로 이어질 사건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 읽는 맛을 더하게 한다.
임종욱 작가는 당선소감에서 “왜 김만중은 만년에 소설을 썼을까? 그것도 한글로? 이제는 문학사의 당연한 사실이라 큰 의문거리도 되지 않지만, 나는 계속 그런 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아무 데도 없었고,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상상을 했다. 김만중이 남해에 와서 3년을 살다가 최후를 마친 그 기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상상이 이 소설의 큰 얼개가 되었다. 내 상상력의 결실은 물론 허구로 얽혀 있는 소설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내 상상이 실재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소설 심사평 중에서
소설 부문 예심 통과작은 장편 3편, 중편 2편, 단편 1편으로 도합 여섯 편이었다. 여섯 편 중 수준이 미흡한 단편소설 한 편을 가장 먼저 논외로 삼고 나머지 다섯 편을 놓고 본심심사를 진행하였다.
장편소설 부문에 올라온 세 편의 심사 대상 중에 가장 먼저 논외의 대상이 된 작품은 『진향(眞香)』이었다. 황진이의 전생이 수로부인이라는 가상의 설정으로 1인칭(수로부인)과 3인칭(황진이) 시점을 교번으로 사용하며 병렬식으로 구성한 소설이지만 전체적 내용이 설익고 산만한 편이라 소설적 수련이 더 필요하다는 데 심사위원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였다.
나머지 두 편의 장편소설『꽃밭에서』와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내용이 동일하게 서포 김만중의 남해 유배 생활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라 심사위원들 간에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꽃밭에서』가 남해의 실체적 배경을 김만중과 결부시킨 작품인 반면,『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서포의『구운몽』,『사씨남정기』,『서포만필』에서 추출된 재료를 극화한 것이었다. 동일한 배경을 다룬 것이지만 서포 작품의 근간에서 추출한 서사를 바탕으로 삼은『남해는 잠들지 않는다』가 심사위원 대부분의 호감을 산 반면『꽃밭에서』는 가천 다랭이마을과 마늘 재배, 용문사와 남해 탈신굿 등의 요소를 유배생활과 결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격조와 구성, 서사 전개력 등에서 미흡하고 거칠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울러 서사의 인과관계가 약해 평면적 전개로 일관하고 1인칭 시점을 사용해 유배생활의 정서가 절제되지 못한 점 또한『남해는 잠들지 않는다』에 견주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서포 김만중(1637~1692년)의 삶, 그 중에서도 말년에 해당하는 남해 유배 생활 3년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몇 해 전부터였다. 대학에 다닐 때 그가 쓴『구운몽』이나『사씨남정기』,『서포만필』 등을 읽어보기는 했다. 그러나 그의 말년 삶이 내 관심을 끈 것은 남해군으로부터 문집 번역을 의뢰받고 난 뒤부터였다. 유희경(劉希慶, 1545~1636년)의『촌은집(村隱集)』을 번역하게 되자 나는 자주 남해를 찾게 되었다.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훈훈한 인심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직접 찾아간 남해는 기대 이상의 멋진 곳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수려한 경관이 이어졌고, 들판과 산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하늘의 혜택을 받은 명승지임을 자랑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바라보게 된 노도(櫓島). 남해 사람들은 그곳이 바로 우리 문학사 불멸의 작가 김만중이 유배를 와서 죽을 때까지 살았던 곳이라고 말했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 나는 다시 김만중을 남해의 한 섬에서 해우하게 된 것이다.
『촌은집』에 이어 김구(金絿, 1488~1534년)의『자암집(自菴集)』과 김만중의『서포집』 번역도 맡게 되었다. 한국 문학사가 낳은 위대한 작가 김만중의 문집이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사실에 의아해 하면서 그의 문집을 펼쳤다. 당대를 주름잡은 학자답게 난해한 전고와 까다로운 표현으로 엮어진 문집은 나를 괴롭혔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김만중의 사람됨이나 생애, 생각 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형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문집 번역을 어렵게 마무리짓고 나자 나는 김만중이 왜 말년에 남해로 유배 와 소설을 썼는지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것도 유려한 한문을 구사하던 그가 어찌하여 갑자기 한글로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말이다. 그런 궁금증은 어떤 연구서나 자료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그 답을 찾는 상상을 펼치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그런 내 궁금증의 대답을 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