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은 창조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개인, 부부,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면, 고통받는 개인의 비밀 공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된다.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마음속에 간직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의 비밀은 고통과 더불어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인성을 형성하는 데 꼭 필요한 환상의 공간을 빼앗길 위험이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거짓자아’를 자신의 인성으로 삼게 된다. 자신의 인성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말이다. 끊임없이 실망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는 아무런 문제없는 인생이라는 눈먼 속임수를 간직하고 싶어한다. ---p.54
아이들이 무엇보다 먼저 느껴야 하는 감정은 자신이 가족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안정감이다. 이러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때 아이는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위치에 대한 확신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나아가 아이가 가족적인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정서적인 문제들, 즉 질투, 욕구, 기만, 사랑, 혐오 등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근친상간에서부터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심각한 아동학대에 이르기까지 최악의 가족 재앙은 종종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에 의해서 자행된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부터 가족은 더 이상 내면세계와 비밀을 보호해주는 곳이 되지 못한다. 각자의 역할이 뒤섞이면서 가족은 더 이상 원활하게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에 가족 구성원에서 심리적 충격을 주는 것은 ‘가족의 비밀’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가족의 비밀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실패, 혹은 ‘공포의 테러리즘’에 의한 비밀 공간의 파괴다. ---p.57~58
사생활 거래, 그것은 연출자들에 의한 미디어의 승리였다
방송 관계자들은 대중에게 ‘진짜 현실’을 보여주고 아무것도 감추지 않으려면, 현실과 대중 사이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말아야한다고 판단했다. (중략) 몇몇 저널리스트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 역시 사람들의 인생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전혀 가공되지 않은 자료, 아무런 비평이 덧붙여지지 않은 기사, 전문가의 견해가 포함되지 않은 채 때로 거친 표현이 포함된 증언이 있는 그대로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그 결과 대중매체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재료를 제공해주는 대신 사람들의 생각을 마비시켰다. ---p.91~92
비밀을 누설할 것인지 혹은 그것을 간직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비밀의 공간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혐오에 찬 시선, 모욕적인 시선, 교훈을 주려는 시선, 비난과 경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모든 것을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비밀은 개인을 벗어나지 않는다. (중략) 뿐만 아니라 비밀은 사고를 성숙시키는 기능을 한다. 사고가 필요한 시간 동안 무르익을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인생의 고통스러운 사건에 직면하여, 개인의 자아는 종종 대립되고 모순적인 생각들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이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규범과 이상 체계가 나타내는 사회적, 도덕적, 가족적 가치는 그와 대립되는 경험이나 욕구가 나타나게 되면 사실상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때 경험하게 되는 내적 갈등의 결과에 비밀의 운명이 달려있다. 공상을 지켜주는 수호자가 될 것인지, 혹은 자아를 괴롭히는 박해자가 될 것인지 말이다. ---p.148~149
비밀은 또한 심리 구조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삶에 직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비밀의 이러한 기능은 단지 어린 시절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수행되며, 사람들에게 창조적, 상징적 사고를 하고, 세상에 대해 적절한 환상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따라서 개인은 현실을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바꿀 수 있으며, 어쩔 수 없이 경험하거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받아들이거나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비밀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비밀의 주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타인은 타인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략)
비밀의 비밀
우리는 스스로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비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우리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베일에 가려진 감추어진 사실이다. 그 사실은 우리의 손이 아닌,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존재론적 의문을 제기할 때, 비로소 그러한 사실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경우에 비밀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가 된다. “나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감추어진 사실에 접근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심리분석은 우리의 비밀에 대한 비밀, 즉 무의식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욕구, 꿈, 성공, 불행, 실패의 감추어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다. ---p.202~203
‘모든 비밀의 비밀’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면서 진정한 자아를 향해 나 있는 길을 가다보면, 우리가 이 책을 시작하면서 만난 적이 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자라서 이제 어른이 되었다. 아이는 너무 이른 시기에 엄청난 고통, 위로할 수 없는 상실감, 끝없는 불안감이라는 장애물에 직면해야 했다. 그것은 누구의 탓이었을까? 환경, 가족, 그 자신, 혹은 운명의 탓이었을까?---p.204
그 유명한 ‘가족의 비밀’을 밝히려는 일도, 우리 자신에 대한 탐색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모두 헛된 일이다. 얼마나 많은 비밀의 폭로가 단지 그 자신의 폭력성을 퍼뜨리는 데 그쳤는가? 공격적인 솔직함은 때로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한다. 빗나간 사랑이나 광기어린 열광 속에서, 혹은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나 복수심에 의해서 이루어진 ‘폭로’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비밀을 나눌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상호작용이나 신뢰가 없는 한,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비밀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만큼이나, 수많은 ‘폭로’는 큰 실망을 가져왔다. 환상의 상실은 그 환상을 움직였던 마술이라는 궁극적 비밀을 함께 드러내게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비밀, 즉 우리의 운명을 지켜주는 문지기가 될 수는 없다.
---p.205~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