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 우리에게 두드러지게 보이는 한국 역사의 한 요소는 자본의 통제에 대항하는 풍성한 전통, 특히 산업노동자계급의 투쟁 전통이다. 파업들과 노동조직화의 강렬함과 창조성, 억압에 맞선 노동자들의 요구의 강고함은 오랫동안 다른 곳에 있는 우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한국 현실의 두 번째 요소는 한국이 새로운 전지구적 질서의 구축에서 중추적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지구의 모든 부분은 최근 몇 십 년 동안 새로 출현하는 전지구적 권력구조의 경제적ㆍ정치적 회로들에 편입되는 과정을 통해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 한국은 이 변화를 특히 세차게 겪었다. 그 큰 위험과 고통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이 제공하는 새로운 해방의 잠재력 또한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두 요소들―자본주의적 통제에 대항하는 지속적 투쟁과 새로운 전지구적 질서의 구조들로 편입된 경험―은 실상 이 책에서 제시되는 다중 개념을 연구하는 데 근본적인 축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론적으로 명확히 표현하려고 했던 것을 한국 독자들은 일상적 삶으로 경험했으며 그런 이유로 한국 독자들은 당연히 우리의 연구의 출발이 되는 기본적인 생각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6
논의의 초기 단계의 접근법은 다중을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로, 그래서 잠재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계급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중 개념은 최소한 19세기와 20세기에 사용되기에 이른 노동계급 개념과는 매우 다르다. (중략) 배제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노동계급 개념과는 달리, 다중은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개념이다. 다중은 프롤레타리아 개념에 그 가장 풍부한 규정, 즉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노동하고 생산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규정을 부여한다. ---p.142
삶정치적 불만들 중에서 매우 특이한 한 가지 사례는 나르마다 살리기 운동(Narmada Bachao Andolan)이다. 항의자들의 불만들 중의 하나는 자신들이 그 동안 생활했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거대한 댐들은 각각 만여 명 그리고 때로는 수십 만 명의 거주민들을 매우 적은 보상으로 또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몰아낸다. (중략) 댐들은 분명 전기, 안전한 식수, 관개, 홍수 예방과 같은 사회적인 혜택들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 ― 그리고 이것이 나르마다 투쟁에 포함되어 있는 근본적인 이슈인데 ― 댐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사회적 비용을 빈자들이 부담하고, 이익들은 주로 부자들에게 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댐은 사유화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하천과 토지라는 공통적인 부를 사적 소유자의 수중으로, 예를 들어 땅을 소유하고서 관개(灌漑)를 통해 끌어들인 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업관련 기업의 수중으로 양도한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테크놀로지에 반대하는 항의가 아니라, 공통된 것을 사유화하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견해를 수렴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그리하여 극소수의 사람들을 살찌우며 다수의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정치권력에 맞서 벌이는 항의인 것이다. ---p.339
오늘날 새로 출현하고 있는 민주주의 세력은 단순히 무시할 수는 없는, 혹은 그저 없어지기를 빌 수만은 없는 폭력의 상황에 놓여 있다. 민주주의는 오늘날 주권으로부터의 이탈, 탈주, 엑소더스의 형태를 취하지만, 성경 이야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파라오는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도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모세가 홍해를 가른 다음 다시 파라오의 군대를 뒤덮어 버림으로써 엑소더스는 성공하게 된다. 이 고대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엑소더스를 행하는 다중의 행동이 주권권력의 억압적 폭력에 폭력의 절대적 결여로 맞서면서 주권권력의 공격에 대칭적인 대립물로써 대응하는 식의 (평화주의 이론들에 광범하게 퍼져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변증법적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엑소더스는 결코 평화주의적이지―즉 무조건 평화적이며 협조적이지―않았고 또 앞으로도 평화주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엑소더스는 능동적인 저항을, 주권의 추격하는 힘들에 맞선 후위 전쟁을 필요로 한다. 들뢰즈가 말하듯이, “탈주하라, 그러나 탈주하면서 무기를 움켜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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