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어려운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세상을 대표하게 되며, 종종 충동의 적이 되는 현실을 서서히 소개하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엄마에 대한 흠모와 사랑이 존재하는 게 절대적으로 확실하지만, 엄마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어딘가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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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건 그렇다 치고, 아기를 미워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저는 아기를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도 잘 해나가고 있는 평범한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혹시나 아기를 해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공포 속에 사는 엄마들을 저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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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 속에는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저는 모든 걸 수월하게 느끼고 의심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엄마 밑에서 자라기보다는, 인간 존재의 모든 내적 갈등을 품고 있는 엄마의 아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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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것을 쥐고, 손가락이나 옷자락을 빨고, 헝겊 인형을 움켜쥐는 것 등이 모두 아기가 보이는 최초의 애정 행위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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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 아이의 미성숙한 자기(self)는 옷을 빠는 등 이상한 버릇의 형태로 자기표현을 합니다. 그런 행동이 아이에겐 현실로 느껴지는 것이죠. 이를 통해 엄마와 아기는 동물적 본능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적 관계를 맺는 기회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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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차츰 아이를 현실에, 또 현실을 아이에게 소개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금지입니다.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방법 중 하나’라고 말씀드려서 여러분은 반가우시겠죠? 금지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의 기초는 “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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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항상 부드러운 물건만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돌멩이와 막대기와 단단한 마룻바닥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안기는 것만큼이나 저리 가라는 말을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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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정상이고 건강한 감정이라는 말씀을 저는 우선 주저 없이 드리고 싶습니다. 질투는 아이가 사랑을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사랑할 능력이 없다면 질투를 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후에 우리는 질투의 건강하지 않은 측면에 대해서, 특히 숨겨진 질투에 대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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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질투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들은 질투를 느끼고 조절할 수도 있었던 시기에 충분히 화내고, 질투하고, 공격성을 드러낼 뚜렷한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그들도 질투하는 시기를 지나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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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는 일을 이상화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나름의 좌절과 지겹게 반복되는 일과가 있고, 정말 더 이상 못하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살피다가도 비슷한 생각이 들지 말란 법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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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분노는 그 분노 뒤에 존재하는 사랑을 손상시킵니다. 우리가 욕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순간에 분노를 말로 모아 표현하고 나면, 하던 일을 새롭게 다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임상에서 저는 엄마들이 자신의 쓰라린 분노에 가 닿을 수 있을 때 위로받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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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엄마들과 이야기하고, 또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저는 결국 최고의 엄마가 되는 사람은 처음에 항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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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보호해주는 시기가 지난 후 엄마는 조금씩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아이는 자유로운 표현과 충동적 행동을 위한 새로운 기회에 덤벼듭니다. 안전과 통제에 저항하는 이러한 전쟁은 어린 시절 내내 지속됩니다. 그러나 통제는 항상 필요합니다. 부모는 돌담과 철창으로 된 규율과 틀을 항상 준비하고 있으나, 이는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있고, 아이가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데 관심이 있는 한에서입니다. 부모는 반항을 환영합니다. 부모는 평화의 관리자 역할을 계속하지만 무법을, 심지어 혁명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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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단계에서 좋은 환경은 안전감을 형성해주고, 안전감은 자기 통제로 우리를 이끌며, 자기 통제가 확고하다면 이때 남이 부과한 안전은 모욕에 불과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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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세심하게 만들어주고 자신의 판단에 의심을 갖게 해주는 건 죄책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죄책감을 느끼는 능력을 갖지 못한 부모를 실제 만난 적이 있는데, 이들은 아이가 아플 때 그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합니다.
--- p. 176
무언가가 옳다는 느낌은 분명 ‘엄마나 아빠가 내게 이런 것을 기대하는구나’ 하는 아이의 생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건 죄책감과 연결된 좋고 나쁨의 의미입니다. 죄책감을 줄여주는 것은 아이에게 좋게 느껴지고, 죄책감을 증가시키는 것은 나쁘게 느껴집니다.
--- p. 187
아기가 생생하게 삶을 경험하는 초기 단계에 부모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된다면 아기의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잘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 나름의 죄책감을 형성할 수 있는 한에서, 오직 그럴 때만 우리의 좋고 나쁨에 대한 생각들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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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층위에서 엄마들은 단 한 가지를 바랍니다. 아이가 성장하여 울타리를 벗어나고, 학교에 가고, 세상과 마주하기를 바라죠. 또 다른 층위에서, 아마 더 깊은 층위일 텐데, 실제 의식하진 못하지만 엄마들은 아이를 놓아줄 생각을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깊은 층위에서 엄마는 이 가장 소중한 대상을, 그리고 엄마라는 역할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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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중엔 근근이 삶을 꾸려가고 자신의 힘든 기질을 추스르느라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챙겨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걸 다 이해해줍니다. 알 수 있고, 꽉 붙들 수 있는 물리적 여건만 갖춰져 있으면 아이들은 부모 사이의 긴장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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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이 예측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된다면 아이들은 우리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역을 연기하고 있는 거라면 분장을 지웠을 때 우리는 발각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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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조심스러운 선택을 거쳐 찾아집니다. 교실에서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닌 거죠. 아기들은 자신의 엄마를 고르는 일에 아주 능합니다. 적어도 일차적 모성 몰두라는 관점에서는요 그게 아니라면 제가 아기들을 그토록 높게 평가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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