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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를 듣다

리뷰 총점9.7 리뷰 32건 | 판매지수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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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460쪽 | 524g | 136*196*30mm
ISBN13 9791189571917
ISBN10 118957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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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 가는 실 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편의점에서 산 비닐우산 위를 무수한 물방울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모퉁이를 돌자 신사의 기둥문이 보인다.
---「첫 문장」중에서

‘달나라’
흰 바탕에 주황색 글씨가 적힌 세련된 간판이었다. 반짝이는 네온 장식도 달려 있었다. 재활용품 가게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고 그걸 떠나 이름부터 이상했다. 창고처럼 보이는 이 건물이 쇼와 시절*에는 제법 북적이던 댄스 홀이었다고 한다. 댄스 홀이 폐업한 뒤에는 어떤 원예업자가 사들여 창고로 썼고 그 후 한동안 비어 있던 건물을 빌려 재활용품 가게가 영업을 시작했다.
--- p.7

그 여자는 느닷없이 손목을 그었다. 뿜어져 나온 피가 순백의 섀하얀 원피스에 커다란 꽃을 피웠다. 공원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던 여자는 서자마자 커터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베었다. 너무나 태연하고 서슴없는 동작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무릎에 올려놓은 문고본 책이 다리 옆에 툭 떨어졌다.
--- p.10

“왜 손목을 긋고 저한테 보여 준 거예요?”
“그건…….”
유리코는 작은 꽃다발을 빙글빙글 돌렸다.
“당신이 아주 부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요.”
순간 현기증이 느껴졌다. 앞으로 기울어질 뻔한 자세를 간신히 바로잡는다.
--- p.27

“그곳이 날 받아 주는 곳이니까요. 그 학교만이 유일하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으니 관심이 생겼다. 느닷없이 내 삶에 뛰어든 가시마 유리코와 아사미 선생. 그들이 교류하는 야간부 고등학교라는 곳.
--- p.30

“실은 다이고 말인데, 이치노세와 주먹다짐을 하고 난 다음에 말이지.”
그녀는 갑자기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길에 대자로 드러누워서 ‘괜찮아! 나한테는 친구가 한 명 있으니까!’라고 했대.”
유리코는 “다이고는 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라고 했다.
--- p.115

―그 소리가 저를 위축시킵니다. 밤의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소리가.
이리에 씨의 말은 지금도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 있다.
--- p.131

예로부터 일본에는 너구리나 오소리, 흰코사향고양이는 ‘무지나’라 불리며 인간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구라모토 저택 정원에서는 라쿤도 무지나 반열에 오른 게 아닐까.
고노스케 씨가 본 무지나는 뭐였을까.
죽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뭘까.
--- p.149

이 노파는 모든 일을 설렁설렁하고 대충 판단하는 것 같지만 결국 모든 일이 마땅히 향해야 할 귀착점으로 향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 걸 미리 계산했을 리 없는데도 아무렇게나 뻗어 간 실타래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정작 본인은 담담하지만.
--- p.265

“안다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돼. 세상 모든 일은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류타. 넌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행동할 거야. 그리고 거기서 뭔가가 만들어질 테고. 물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것도 받아들이는 힘을 길러야 한단다. 안다는 건 그런 거야. 모르고 있으면 배울 수 없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성장할 수도 없어.”
--- p.289

이런 불상을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던 남자. 그는 정말 도둑이었을까. 만약 당시 그가 경찰 수사망에 걸려 조사를 받고 혐의가 풀렸다면 나카야가 이토록 사건에 연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상한 사례는 그밖에 더 있을지 모른다. 지금 나카야는 그때 놓쳐 버린 많은 물고기들을 쫓고 있다.
--- p.332

모든 게 ‘달나라’로 수렴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건과 깊숙이 관련된 두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실에서 나는 새삼 신비로움을 느꼈다. 운명이라는 한 단어로 결론짓기에는 부족했고 그 안에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어떤 힘이 작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히로키 씨가 찬찬히 입을 열었다.
“그 모든 일은 그곳에 네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단다.”
--- p.420

―안녕, 류타.
그곳에는 오직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류타 정도는 한자로 제대로 써 달라고, 바보야.”
이제는 곁에 없는 친구를 향해 나는 면박했다.
--- p.422

“걔는 괜찮아. 어디를 가든 잘 살 애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고 했던 다카에의 말이 되살아났다. 그 고집 센 노파가 나보다 훨씬 다이고를 잘 알고 있었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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