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그 1주년! 이제 분노를 삭히고 테러의 이면을 들여다 볼 때…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에 날아든 여객기 한 대.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9.11 테러 참사 1주년을 맞이하였다. 테러 이후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와 테러에 대한 보복 전쟁, 그 과정에서 자행된 인권의 유린…. 그 1 주년이 되는 현재까지도 그날의 여파는 지속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외국 항공기 운항을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고, 악의 축이라 일컫는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준비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강력한 군사 조치도 끊임없이 취해지고 있다. 9.11 테러는 모든 사람들에게 국제·정치적 상황이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세계는 미국인들의 아픔을 함께 애도했고, 이슬람의 테러를 분개하며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이렇듯 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심화되면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해서 이슬람권에 대한 물리적, 정치 경제적인 폭력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9.11 테러에 맞추어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고, 이와 관련된 책들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서구가 심어준 이슬람에 대한 환상과 편견을 떨치지 못한 채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처럼 오리엔탈리즘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테러나 위협은 팔레스타인(이슬람)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 마치 소년 다윗을 공격하는 것처럼 거대한 골리앗인 전이슬람권 국가가 작은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다는 것은 왜곡된 사실이다. 오히려 그 땅의 주민인 팔레스타인 민족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강점과 분할은 양 민족의 첨예한 대립뿐만 아니라 주변 아랍 민족과 유대 민족간의 끊임없는 대립을 야기하였다. 여기에는 서방 세계의 영향, 특히 미국의 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은 그 배후인 미국에게 적개심을 품게 된 것이다.
9.11 테러의 심리적 뿌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제 세계를 경악케 했던 9.11 테러 1주년을 맞으면서, 이슬람, 특히 이슬람의 극렬한 반미의 뿌리와 분쟁의 현재진행형인 팔레스타인을 생생하게 기록한 코믹저널리스트 조 사코의 작품 《팔레스타인》을 출간하면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자 한다. 신간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 더 나아가 아랍인들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해 준다.
신간 《팔레스타인》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이 책이 팔레스타인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될 수 있도록 첨가된 글 때문이다. 우선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민과 이 책에 보내는 감사의 마음이 담긴 서문. 역시《오리엔탈리즘》의 한국어판 역자인 영남대 박홍규 교수의 추천글 <팔레스타인, 오리엔탈리즘, 오아시스>와 소수민족 분쟁 전문가인 최진영 씨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분쟁>은 국내 독자들의 이해에 믿음직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특히 오리엔탈리즘,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실체를 더욱 명확히 지적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박홍규 교수의 글은 이 책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짧고 간단하게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파란의 분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최진영의 글 또한 값진 발견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더욱 절실하게 그려낸 속편!
서구에 의해서 왜곡되고 신비화된 동방의 이미지. 그것을 일러 오리엔탈리즘이라 한다. 거기에는 문화적 차이를 서구적 가치 기준에 대입하여 모멸에 찬 눈초리가 번뜩인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 서구에 의해 대상화되고 타자화된 우리 동양에서도 오리엔탈리즘은 흔히 만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신간 《팔레스타인》의 시각은 그러한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 있다. 작가 조 사코는 아주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성공과 민주주의의 우수함을 찬양하는 나레이션도 없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험한 파괴분자, 거친 폭력배로 묘사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이스라엘인을 괴롭히는 악당들로 취급되는 일도 없다. 그리고, 점령지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사코의 묘사에는 어떤 이념이나 규칙이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눈으로 본 것을 어떤 경우는 회의적으로, 동정적으로,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아랍을 테러의 소굴로 쉽게 수긍했던 것은 수천 년 동안 형성된 아랍에 대한 수많은 편견,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른 그것을 훌쩍 넘어서고 있으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철저히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있었던가를 반성하게 한다. 그리고 그 성과는 《오리엔탈리즘》의 역자 박홍규 교수의 지적처럼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더욱 절시하게 그려낸 속편"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특종을 노리는 기자도 아닌, 필요한 사실을 추려내어 정책에 반영하는 전문가도 아닌 조 사코가, 그들 곁에 머물면서 체험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조 사코는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으로 빚어진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실을 직접 경험하여, 그것이 우리의 문제임을 깨우쳐 준다.
만화 예술의 매체적 가능성 ― 코믹 저널리즘을 극적으로 열어 보인 책!
신간《팔레스타인》은 또한 만화 예술의 매체적 가능성을 코믹 저널리즘이라는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 사코는 만화라는 매체만이 지닌 생략과 강조라는 특징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어떤 사진기자도 감히 따라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포토 저널리즘보다 강렬한 코믹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만화 예술의 지평을 한 차원 높였고 평가받는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시사만화가 상징을 무기로 한 순간을 포착하여 큰 울림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시사만화는 그 성격상 다분히 관념적인 측면이 많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과 그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나 저널리즘처럼 사실적인 모습을 담고 있어야 한다. 기금까지 이런 만화는 우리 주변에 거의 없다. 하지만 신간《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점령지구의 문제들을 공평한 시각에서 그려 무섭고도 감동적인 르포르타주를 보여주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사실적 스타일은 어떤 면에서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인 빅토리아 시대의 뉴스 매거진에 사용된 목격자 일러스트와 매우 유사하여 보도사진보다 더 강렬하다.
1991년 말부터 1992년 초까지 이스라엘의 점령지구 팔레스타인에서 그곳 사람들과 두 달여를 지내며 구체적인 체험을 자세히 기록하여, 미국으로 돌아간 조 사코는 자신이 보고 듣고 기록한 것을 만화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직접 현장을 보고 취재하는 현지 리포터의 기술과 만화 스토리 작법을 하나로 합쳐 복잡하고 무거운 현실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코믹 저널리즘의 백미로 꼽히는 만화책 《팔레스타인》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기에 실린 아홉 편의 이야기는 1996년 미국 도서출판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