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ㆍ너ㆍ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 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경우에 따라서 바뀌기만 할 뿐 바로 그 복수만 늘 존재하는 거지.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절대로 ‘하나+하나+하나’가 아니라 늘 400만인 거야. 그러니 사람들은 민족을 통째로 등에 지고서 살아가는 것이고. 무거워. 무거워. 무거워 등이 뭉개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져버리지.
--- p.72-73
네 글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 절실히 느꼈어. 너는 네 나라에서, 나는 내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요술 주문을 알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잠하게 살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럴 수 있다면 모든 뉴스와 특보를 금지할 거야. “늘 켜져 있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뭔지 나도 잘 알거든. 윙윙거리기도 하고, 망치질 해대는 것 같기도 하고, 소리와 이미지들 속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한.
아, 정말 요술 주문이 있다면, 그런 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낼 텐데! 하지만 내가 그렇게 순진하진 않거든. 내년이면 대학에 갈 나이니까. 역사가 인정사정 없다는 건 나도 알아. 역사는 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으며, 어떨 땐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걸 부수면서 나아가지.
--- p.112-113
“네가 보다시피 우리가 분쟁을 멎게 할 수는 없어. 그렇다고 모두에게 돈을 나눠줄 수도 없고. 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들 속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 상처들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스스로 더 강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거야. … 특히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각자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걸, 그들이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란 걸 인식하는 거야. 그 사람들 각자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니까.”
--- p.148
우리 두 민족은 단어를 쓰는 데조차도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지. 너희들은 “이스라엘”이라 하고, 우리는 “팔레스타인”이라 하지. 너희는 “예루샬라임”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알쿠드”라 부르고. 너희는 시켐의 도시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우리 전사들이 나플루즈에서 너희를 손아귀에 넣었다고 말하지. (실제로는 똑같은 도시, 똑같은 사람들이지!) 너희는 “테러리스트”라 하지만 우리는 “마르티르”라 하지. (그 사람이 죽었을 땐 특히 그래.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투사, 용감한 투사가 되는 거고.). 너희들은 “안전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평화가 우선이고 그런 다음에 안전은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사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수용소를 만들기 전에 우리는 ‘두 민족 사전’부터 만들어야 할 거야. 너희랑 우리가 쓰는 단어들에 동의하게 되는 사전 말이야.
--- p.167-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