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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 - 지성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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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 - 지성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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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7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708쪽 | 838g | 138*198*40mm
ISBN13 9788996282396
ISBN10 8996282391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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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Paul. T   평점4점
  •  특이사항 : TR-0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1부 더블린 (1856-1876)
가족 · 수치스러운 비밀을 없앨 수 없다면 차라리 활용하라
학교 · 오, 지옥 같은 어린 시절이여!
친척 · 사실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다
오히려 현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기가 힘들다
독서 · 오리에게 수영은 희망사항이 아니다
학습 ·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경험하고도 배우지 못한다
열정 · 나의 정신은 도덕적 열정에서 태어났다
취업 · 정당하게 먹고살겠다고 본성에 반하는 죄를 짓다

제2부 런던 (1876-1900)
소설가 · 바라는 게 없는 자는 절망하지도 않는다
연설가 · 나의 명성은 실패와 더불어 커졌다
필생의 귀인 · 나에게 일어난 최고의 행운은 시드니 웹을 만난 것이다
피의 일요일 · 신이시여, 저들을 저들 자신으로부터 구하소서!
페이비언 스타일 · 나는 사상가이지 투사가 아니다
로맨스 · 매우 쇼답지만, 멍청한
영국박물관 독서실 · 참으로 멋진 공산주의적 시설
여자들 · 내 호주머니는 언제나 사랑의 잔돈으로 가득하여라
더 노토리어스 · 예술 문제에 관한 한 나는 인정사정없다
연극비평가 · 극작가의 일이란 경험을 이해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치가 · 버틸 수 있는 마지막까지 혹사되어서 좋다
극작가 · 단지 반응하지 않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다
결혼 · 모든 결혼은 다 다르다
평판 · 심각함은 대단해 보이고 싶은 소인배의 허세다

제3부 런던 - 에이욧 세인트 로렌스 (1900-1950)
희극 · 정말로 지적인 작품은 전부 유머러스하다
논객 · 오직 웃음을 통해서만, 악의 없이 악을 물리치고, 오글거림 없이 의리를 말할 수 있다
논쟁 · 사람들은 진실을 두려워하고, 비겁한 마음에서 미움이 싹튼다
위원회맨 · 영국인들이 서로 싸우고 모욕하는 것을 막느라, 인생의 상당 부분을 보냈다
정복 · 오늘 내가 얘기한 것은 내일이면 모두가 얘기할 것이다
망중한 · 유럽 어디를 가도 쇼의 조각상을 피할 수가 없다
전쟁 · 전쟁의 열병은 여느 전염병과 다르지 않다
우정 · 옛 친구의 체면을 세워주려다 본인의 체면을 깎아 먹다
모스크바 · 사악함이 아니라 무지함이 문제다
걸작 · 관객은 자기가 놓친 대사를 언제나 최고의 대사로 상상한다
제2의 소년기 · 삶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다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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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지연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경인교대와 부산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옮긴 책으로 『파워 오피니언 50』(공역), 『쇼에게 세상을 묻다』(공역),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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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인간] 초연이 끝나고 쇼가 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올라갔을 때, 브라이트는 혼자 용감하게 우- 하고 야유를 보냈다. 한창 물오른 대중연설가였던 쇼는 그러한 반감도 연설에 이용했다. “이보게 친구, 나도 자네와 같은 생각일세. 하지만 반대파가 이렇게 많은데 우리 둘이 뭘 어쩌겠나? ”
--- p.299

“개인적인 감정 없이 쓴 비평은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 좋은 예술이건 나쁜 예술이건 예술을 개인적인 문제로 만드는 능력이 그 사람을 비평가로 만든다.”
--- p.194

쇼가 타고난 극작가임을 알아본 평론가나 배우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내가 희곡을 쓰는 건 이 일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내 머릿속에 인물이나 장면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타고난 이야기꾼은 아니다. 나에게는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즉, 대사와 행동이 있는 어떤 순간들이 떠오르며, 그 순간들은 고유의 생명력을 갖고 저절로 이야기로 발전한다.” 그런 면에서 쇼는 셰익스피어를 닮았다. 셰익스피어 역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흥미가 없어서, 플롯은 전부 타고난 이야기꾼들에게서 빌려왔다.
--- pp.286

“우리 쇼한테 비프스테이크를 먹이고 붉은 피도 좀 수혈하는 게 어떨까요?” 어느 날 트리가 물었다. “맙소사, 안 돼요.” 캠벨 부인이 끼어들었다. “지금도 충분히 나쁜 남자인데 고기까지 먹이면 런던에 무사할 여자가 없을걸요.”
--- p.479

“… 나는 이후 한 달을 (로댕의 작업실) 뫼동에서 보냈고 그곳이 집처럼 편해졌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던 것이, 그 흉상은 사라 베르나르의 멋진 스케치를 연상시키는 15분 만의 짧은 스케치에서 시작되어, 중세 이후 조각의 역사를 고스란히 거치며 완성되어 갔답니다. 그 흉상이 20세기에 도달했을 때, 그런 보배는 다시 없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나는 제발 그것을 갖고 가게 해달라고 그에게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더 해야 합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소름 돋게도, 그 흉상은 베르니니, 카노바, 토발트센, 깁슨과 폴리의 작품이 되었다가 마침내 로댕의 작품으로 거듭났습니다. 나는 모델을 서면서 그런 광경은 두 번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
--- pp.490-491

쇼는 성 경험을 “인간이 성장을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할 과정”으로 생각해서, 성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로부터 지식을 전수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여자들의 유혹을 허락했고, 패터슨 부인을 만난 지 2년이 됐을 즈음에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짧은 이야기를 썼다.
--- pp.177

“정신력이 나 정도 되는 사람은 사체를 먹지 않아.”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요한은 메뚜기(쥐엄나무)와 석청을 먹어서 세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세례자로 타고났기 때문에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채식은 쇼의 에너지를 고양함으로써 개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범죄자가 감자와 양배추를 먹는다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 범죄자다워질 뿐이다. 쇼 역시 채식으로 더욱 쇼다워질 뿐이었다.”
--- p. 91

쇼는 처음 연사로 나섰을 때 자신을 괴롭혔던 긴장감을 극복하고 효율적인 웅변가로 거듭났다. 모든 반론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해 둔 답에 대해 질문하도록 유도했으며, 상황에 따라 상대를 달래기도 하고 깔아뭉개기도 했다. 뻔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버트 오웬에게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얻었다. “논증하지 말라. 주장을 되풀이하라.” 하지만 쇼는 주장을 되풀이하되 좋은 논증처럼 들리도록 신경썼다.
--- p.96

쇼는 (윌리엄) 모리스가 필요해 마지않던 인물이었다. 쇼는 모리스의 예술 철학을 보완해주었고, 특이해 보이지 않거나 평이 좋지 않은 예술은 의미없다고 깎아내리는 교양 없는 속물들을 속 시원히 처리해주었다. 둘의 사적인 대화에 사회주의 같은 주제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12세기 조각상들, 베로나의 산 제노 성당과 밀라노의 산 암브로지오 성당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이라면,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놓고 시시한 말다툼을 벌이지는 않는 법이다.
--- p. 136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버나드 쇼 전기
처음 만나는 쇼의 사적인 역사!

불안과 혼돈의 시대를 항해하는 법
지성과 유머로 활기를 불어넣다


“내가 동네 언덕에 올라가 더블린을 내려다보며 나 자신에 대해 사색했다면, 나도 예이츠나 싱 같은 시인이 됐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생각을 명료하게 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그래서 계속 거기 머무를 수가 없었지. 어떤 문제나 처지에 직면해 동시대 아일랜드인들이 슬픈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언제나 코미디가 되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일랜드 시인이 되지 않은 걸세. … 나는 아일랜드 언덕에서 인생을 꿈꾸듯 보낼 수가 없었어. 영국은 이미 아일랜드를 정복했지. 그러니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을 정복하는 수밖에.”
--- p.376

버나드 쇼를 ‘버나드 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익숙한 것에도 질문을 던지며 논리적으로 사고하려는 지성과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유머감각은 쇼의 인생을 특징지은 가장 큰 요소들이다. 그는 구시대적 인습과 불합리한 사회제도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극장 안에서는 물론 극장 밖에서도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촌철살인의 재치와 유머로 문제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의 말솜씨에는 웬만한 전문가들도 시쳇말로 탈탈 털리기 십상이었다. 쇼의 그런 지성과 유머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쇼는 자라면서 훈육에 시달리지 않았다. 쇼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자녀들에게도 무관심한 편이었지만, 그러한 가정환경이 쇼가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부모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아서 “쇼는 생각하는 방법을 알기도 전에 자유사상가가 되어버렸다.” 어느 날 쇼는 중대한 자각의 순간을 맞는다.

“어느 땅거미 지는 저녁, 나는 토르카 언덕의 가시금작화 덤불을 헤매고 다니다가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믿지도 않는 기도를 매일 저녁 반복하는가? 나의 지적 양심은 나를 책으로 이끌었고, 나의 솔직한 심정은 미신적인 관습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내가 말을 깨친 이후 처음으로, 나는 기도하지 않았다. 기도하지 않는 대신 나 자신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기도를 빼먹는 게 왜 이렇게 불편한가? 이것이 양심인가? 그렇지만 다음날 밤이 되자 불편한 마음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원래 이교도였던 것처럼 기도에 대해 완벽하게 잊었다.”
의지할 기도가 사라지고 자력으로 서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는 사물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양심의 가책과 의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진실과 명예는 어른들이 착한 척하기 위해 말로만 하는 그런 표현들이 아니라 나 스스로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 도덕적 열정이 탄생하는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내 경험에 의하면 도덕적 열정이야말로 유일한 참열정이다. … 전에 내 안에 있던 다른 열정들은 모두 게으르고 목표가 없었다. … 도덕적 열정은 다른 열정에 고귀함과 양심과 의미를 부여했고, 욕망 덩어리에 지나지 않던 것들을 질서정연한 목표와 원칙으로 발전시켰다. 나의 정신은 그러한 도덕적인 열정에서 태어났다.”
pp.51-52

이후 도덕적 열정은 평생 쇼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고, 도덕적 열정에 기반한 쇼의 지성과 유머는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투철한 동업자 정신에 입각해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에 맞섰고 연극계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작품 가격을 일반적인 시장 가격보다 낮게 부르거나 라이벌 작가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해서 계약을 따내는 행위가 그에게는 동업자에 대한 배신행위이자 범죄행위였다. 외국의 극장주들이 영국의 극작가들에게 거저나 다름없는 액수를 지불하고 판권을 사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시절, 쇼는 “그 나라 작가들은 어떻게 먹고살겠냐”며 계약을 거부했다. 해외에서 쇼 작품의 판권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자, 쇼는 해당 국가의 작가들이 최고 얼마 받는지를 확인하고 그 금액을 요구했다. 혹시 그 마저도 부족한 액수라고 판단되면 런던에서와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할 것을 요구했다. 저쪽에서 격렬하게 항의하더라도 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쇼의 요구가 관철되면, “해당 국가의 가난에 찌들어 있던 작가들이 화들짝 놀라며 쇼와 동일한 조건을 요구하고 밀어붙였다.” 쇼는 이를 노동조합의 승리로 여기며 기뻐했다.

문제를 바로잡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언제나 환영받았던 건 아니다. 1914년 모든 영국인이 전쟁의 열병에 사로잡혀 있을 때 쇼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고도 공공의 적이 됐다. 에드워드 8세의 결혼 문제에 관해 짧은 풍자문을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왕의 귀천상혼은 이제 이슈 축에도 못 낀다. 하지만 1936년 영국에서는 모두가 그 문제를 생사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쇼밖에 없는 듯했다. 쇼가 지성을 발휘했다가 국민적 공분을 산 경우였다.

저자 말대로, “위기 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린치 당할 위험이 크다”. 사실 유머의 대가가 아니었다면, 쇼도 시인 셸리처럼 우체국 앞에서 성난 영국인에게 두들겨 맞았을지도 모른다. 쇼가 뛰어든 모든 논쟁에서 유머는 그의 방패막이가 되거나 반대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가 됐다. 신랄하면서도 재치 있는 그의 연설은 오늘날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을 떠올리게 한다. 쇼가 만일 지금 시대를 살고 있다면, 우디 앨런과 빌 마허, 루이 C.K. 같은 코미디언들을 발 아래 두었을 것이다. 쇼의 첫 번째 대중연설이 말해준다 .

“의장님은 이 자리에서 특정 계층이 불편해할 말은 안 나왔으면 하고 바랄 겁니다. 저는 강도에 대해 언급하려고 하는데, 만약 여기 강도가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저에게 그분의 직업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을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분들의 기술이나 수완이 대단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가장 투기적인 자본가보다도 훨씬 더 큰 위험을 감수합니다. 자유와 생명, 심지어 절제력까지 담보로 걸 정도니까요. 또한, 저는 그분들이 대규모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도 모르지 않습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 경찰, 교도관, 교도소 설계자 그리고 때로는 사형집행인들의 생계가 그분들의 대담한 사업에 달렸지요. …… 혹시 이 자리에 주주나 지주가 계신다면, 제가 강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가 없었던 만큼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도 전혀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저 강도와 지주와 주주, 이 셋이 공동체에 입히는 해가 본질적으로는 똑같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랍니다.”
--- p.113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지성과 유머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감상적이 되거나 나보다 강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무지해서건 사악한 의도에서건, 사람들의 불안과 혼란을 이용하려는 세력을 쇼는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유머를 무기로 광신과 무지의 불길을 진압하는 소방관이었다. 남녀평등 문제부터 소득평등화, 애국주의, 동물실험, 의료민영화, 형벌 문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사정거리에 들어온 모든 종류의 폐단과 싸웠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진실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세상에 신성불가침한 이론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의 판단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수많은 의견을 피력하면서 모순에 빠지지 않는 기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지성과 유머는 적어도 인류에게 활기를 불어넣지 않았는가. 버나드 쇼는 지성과 유머가 인간의 가장 큰 무기이자 미덕이라는 것을 입증한 표본이다.

무기력한 세대를 위한 처방전
“꺼내 읽어요”


“나는 내가 소위 말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운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나는 아주 애처로울 정도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보다 박식하거나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멍청하리만치 잘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충격을 받았다. C. J. 스미스라고 나보다 나이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수습직원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어린 녀석들은 모두 자기가 위대한 인물이 될 거라고 믿는다나. 보통의 젊은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얘기였다. 그러나 나는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위대한 인물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해서, 정말로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p.59

전기에서 언제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주인공이 재능을 활짝 꽃피우기 전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부분이다. 쇼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다. 쇼의 달변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위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 청년 시절 쇼는 그 흔한 야망이나 미래에 대한 환상조차 없을 정도로 소심했다. 스무 살에 그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더블린을 떠나 어머니가 있는 런던으로 갔다. 하지만 확실한 계획도, 목적도, 방법도 없었기에 취직하라는 압력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모든 기회를 피했다. … 나는 구제불능의 무직자였다. 한동안은 (나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구직을 하는 척했다. 너무 적극적이지 않은 선에서 구인광고에 응했다.”
--- p.68

쇼는 에디슨 전화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곧 “정당하게 돈을 벌겠다고 본성에 반하는 죄를 짓는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한다. 뭔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달리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비버가 댐을 짓듯 끈질기게 글을 썼고 소설 다섯 권을 완성했다. 이메일도 복사기도 없던 시절, 그의 원고 뭉치는 영국과 미국의 출판사로 보내졌다가 60번 정도 되돌아왔다. 남는 건 출판사의 거절 편지뿐이었다. 하지만 그 끔찍한 습작 기간 덕분에 그는 글쓰기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의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에 나오는 명언 “바라는 게 없는 자는 절망하지도 않는다”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세간의 해석과 달리, 이 명언은 꿈이 있는 자들을 위로하거나 꿈이 없는 자들을 타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면 생각지 못한 위로를 얻게 된다는 쇼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가계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쇼는 젊은 시절 내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 시기를 쇼는 무슨 생각으로 버텼을까?
“젊었을 때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청년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내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가족에게 도움 대신 짐이 되기로 한 나의 선택은 시골 청년이 등장하는 기존 소설의 문법에 비추어 보면 말도 안 되는 끔찍한 행동이었다. 그렇다. 나는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그 끔찍함을 받아들였다. 나는 나 자신을 생활전선으로 내몰지 않았다. 대신 내 어머니를 내몰았다. 나는 나이든 아버지의 지팡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코트 뒷자락에 매달렸다. …… 사람들은 나의 무정함에 놀랐다. …… 하지만 도덕적 잔소리에 무심한 젊은 신 코머스처럼 나는 그저 하루에 다섯 장씩 꾸준히 써나갔고, 내 어머니의 희생을 발판 삼아서, 노예가 되는 대신 나 자신이 되었다.”
--- p.81

쇼는 요행을 바라거나 뭔가를 거저 얻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신이 “시대를 초월한 천재”라고 습관적으로 믿는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믿는다고 해서 저절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젊은 시절 나는 열 가지 일을 시도하면 그 중 아홉 가지는 실패했다. 그래서 일을 열 배 더 많이 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그의 기본적인 태도였다. 처지를 비관하거나 ‘행복’에 연연하는 건 그에게 시간 낭비였다. “내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고민할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비결이고 “행복하고 행복하지 않고는 기질에 따른 것”이라며, 요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복 강박증에 시달리던 당대인들에게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뭔가에 몰두해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움직이며 살아있을 뿐. 그건 행복보다 기분 좋은 상태다.” 쇼는 10년 가까이 무일푼으로 지내며 습작에 매진했고, 불구가 될 위험 속에서도 걸작을 완성함으로써 자신이 했던 말들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 꿈과 현실의 괴리, 행복과 불행의 개념 속에서 길을 잃고 무기력해지기 쉬운 젊은 세대에게 『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가 훌륭한 처방전이 될 수 있는 이유다.

100세 시대의 롤모델

“버나드 쇼는 노년기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인물이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의 길, 2013, pp.227

오래 사는 것을 그 자체로 대단하게 여기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시종일관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았던 쇼는 그런 의미에서 100세 시대의 롤모델로 손색이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해 『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 몇 가지는 이렇다. 첫째, “사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즐거울 수는 있다.” 아버지의 알콜 중독, 가족의 해체, 긴 무명 생활, 흥행 실패, 여론의 비난 등 비극적 상황에 처할 때마다 쇼는 우울함보다 웃음을 택했다. “비극을 사소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사소함을 비극으로 만들지는 않는” 유머감각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무기였고 그의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쇼의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힌트는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쇼는 평생 열린 자세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다. 권위에 대한 편견 없이 논쟁적으로 배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나이 들어서도 독단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모두가 은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이에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젊은 세대와 단절되기 쉬운 노년기에 오히려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등극한 것은 쇼의 그런 태도에서 기인한다. 마지막 힌트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미적 취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미적 취향이 없으면 “폭음과 폭식, 성적 탐닉 외에 어떠한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거나” 빈둥거리며 지루한 향락에 빠지기 쉽다. 나이 들어서 처음 배운 서핑과 사진 찍기에 몰두하며 즐거운 노년기를 보낸 쇼를 보면, 미적 취향이야말로 인생의 풍요를 좌우하는 열쇠임을 알 수 있다.

‘서프라이즈’ 뺨치는 이야기 보따리
명언의 성지 순례


쇼는 남들보다 오래 살았던 만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에는 쇼를 포함해 겨우 너댓 명의 젊은이가 페이비언협회를 통해 영국 노동당 탄생과 집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과정의 뒷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윌리엄 모리스, 하인드먼, 애스퀴스, 램지 맥도널드, 애스터 여사, 스탈린 등 여러 정치인들과의 일화는 현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쇼의 시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쇼의 사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쇼가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연애편지를 주고받은 사연, 마르크스의 딸, 윌리엄 모리스의 딸과 소위 ‘썸’을 탔던 사연, 로댕을 비롯한 당대 최고 조각가들의 모델이 된 사연, 타이타닉호 사건을 놓고 코난 도일과 논쟁을 벌인 사연 등은 쇼라는 인물을 말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이다.

생전에 쇼는 편지를 50페이지나 쓰고 마지막에 가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저의 긴 편지를 용서하세요. 시간이 없어서 편지를 짧게 쓸 수 없었답니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다 읽지도 못할 분량을 특유의 속기법으로 매일같이 썼던 쇼. 그의 전기를 쓴다는 것은 작가로서 엄청난 도전이었음에 틀림없다. 번역도 마찬가지였다. 헤스케드 피어슨의 버나드 쇼 전기는 이전과 이후에 나온 그 어떤 버나드 쇼 전기보다도 짧고 잘 읽히기로 정평이 났다지만, 여전히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과 다방면으로 지성과 해학을 자랑한 쇼 덕분에 보통 넘기 힘든 고개가 아니었다. ‘명언제조기’답게 숱한 명언을 쏟아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분야를 종횡무진 누볐던 쇼를 따라잡느라 번역에만 꼬박 2년이 걸렸다. 그 동안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버나드 쇼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를 통해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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