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예술의 특징을 ‘완전하게 만듦, 완전하게 봄’으로 생각한다. 예술은 부정의 부정을 행함으로써 힘에의 의지를 완전하게 구성하고 표현한다. 먼저 예술은 부정적인, 오성적 혹은 이성적 미판단을 파괴함으로써 힘(힘에의 의지)을 완전하게 하고 또 완전하게 통찰한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의 특징은 아름다운 것에 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은 ‘더 많은 힘’과 ‘명정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대상이나 사태, 더 정확히 말해서 존재 원리로서 힘에의 의지를 보다 더 완전하게 만들고, 보다 더 완전하게 통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과 ‘명정의 감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은 아름다움과 예술, 그리고 완전성의 관계를 분명히 부각시킨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예술가에게 모든 위계질서 밖에 있는 어떤 것이다.” “예술은 우리들에게 동물적 활력의 상태를 상기시켜준다.” 니체가 뜻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감각적인 미학차원의 예술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원리, 곧 힘에의 의지의 완전한 구성과 완전한 통찰 및 표현을 내용적으로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형이상학적 혹은 존재론적 아름다움의 성격을 소유한다. ---p.53
일반적이고 피상적 관점에서는 니체의 철학을 이론적 정통 철학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나아가 그의 철학적 표현이 상징과 은유 그리고 경구로 충만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이 마치 비합리적, 비체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판단하기도 쉽다. 그러나 그의 유작 『힘에의 의지』의 부제 ‘모든 가치들의 전도에 대한 추구’만 보더라도 그의 철학이 방법론상 문명 비판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니체는 지금까지의 종교, 도덕, 철학을 비롯하여 예술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것들은 문명(또는 문화)을 형성하는 핵심적 요소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종교, 도덕, 철학 및 예술은 이른바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에 물들어 있어 세계와 인간을 환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 니체의 비판적 반성이 도달한 결론이다. 그의 결론은 지금까지의 문명이 근대성으로 대변되며 근대성은 허무주의적 퇴폐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술 역시 근대의 퇴폐주의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니체는 무엇을 시도하는가?
그의 시도는 다음과 같은 표현에 잘 나타나 있다. “나의 우울함은 완전함의 은폐와 심연에서 휴식하고자 한다. 그것을 위해서 나는 음악을 필요로 한다.” 니체는 예술의 근대성을 전도시킬 수 있는 근거를 음악에서 찾는다. 근본적으로는 비극의 본질이 음악의 상징을 통해서 가능하고, 음악 이외의 예술은 부차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p.69
니체에게 ‘비극적’이라는 말은 ‘음악적’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과도한 충만함 자체에 대한 고통’이 있기 때문에 음악 내지 비극은 몰락이나 타락을 극복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니체가 말하는 비극적 신화는 비록 신화라고 할지라도 몰락이나 타락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음악적 신화이다.
다음과 같은 니체의 물음은 비극적 신화의 성격을 한층 더 부각시킨다. “그리고 다시금 비극을 죽인 것은 도덕의 소크라테스주의, 이론적 인간의 변증법, 충족 및 청명함인가--어떻게? 바로 이 소크라테스주의는 몰락, 피로, 질병, 무정부적으로 해체되는 본능의 징표가 아닐 수 없었던가?” 니체에게 비극은 바로 생동하는 삶 자체, 힘에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삶에 대한 비유임에 반하여 그것에 대립하는 것은 합리주의적 염세주의 혹은 퇴폐주의이다. 이와 같은 내용에 관해 필자는 니체 철학에 관한 여러 글에서 수차례 논의한 일이 있다. 니체의 원근법주의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합리주의는 가장 좁고 얕은 원근법주의를 뜻하는 반면 ‘비극적’ 내지 ‘음악적’은 가장 넓고 심원한 원근법주의를 뜻한다. 그러므로 ‘비극적’ 혹은 ‘음악적’ 신화만이 비극을 정립하여 생동하는 삶을 대변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니체가 뜻하는 신화가 신들이나 영웅들의 단순한 행위가 결코 아니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엄청난 현상’, ‘과도한 충만함 자체에 대한 고통’이라는 것이다. 신화는 신과 영웅의 일화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운명애적 행위로서 의미를 가진다. 과도한 충만함 자체에 대한 고통으로서의 신화는 바로 운명애로서의 신화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p.104
니체는 문명 비판의 차원 그리고 존재론적 차원에서 비극을 논의함으로써 존재론적 의미를 우리에게 각성시켜 주었다. 더 나아가 니체는 오늘날 획일적 상업화 전략에 빠져 있는 예술의 의미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니체의 비극론은 우리들에게 개별 예술들에 대한 고찰과 아울러 예술철학의 가치 및 철학에서 존재론이 가지는 의의 등에 관해 다시 한 번 철저한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p.132
예술은 존재를 창조하고 표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니체는 ‘완전하게 만듦, 완전하게 봄’을 예술의 특징으로 꼽는다. 여기서 ‘완전하게’는 미를 지시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오성적?이성적 판단을 해체하고 힘에의 의지를 완전하게 하며 동시에 완전하게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는 결국 예술을 통한 힘에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p.153
니체는 영원 회귀와 운명애를 긍정함으로써 힘에의 의지를 공감하였다. 힘에의 의지는 또 하나의 절대적 신인가 아니면 그것은 또 하나의 합리주의적 존재 근거인가? 니체는 부단히 인간의 감옥을 해체하면서 다시금 합리적 언어의 감옥에 자기 자신이 갇힌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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