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전반기의 모든 음향자료를 집대성하다!
근대 음향예술 분야의 '악학궤범'같은 『한국 유성기음반(전5권)』
이 땅에서 유통된 근대기(1907~1945) 유성기음반의 목록과 이와 관련된 자료를 집대성한 『한국 유성기음반』전집은 수림문화재단의 출판지원으로 5000쪽을 상회하는 방대한 자료를 음반발매사별로 묶은 4권의 자료집과 한국유성기음반의 약사와 색인을 담은 '해제ㆍ색인집' 등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900년대 전반기 즉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의 공연예술 음향자료의 전체 목록으로서, 『동국여지승람』이나 『악학궤범』처럼 우리나라 근대 음향예술 분야 문화유산을 집성하여 이 시대 국고정리(國故整理)의 한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모두 4권으로 구성된 자료집은 닙보노홍, 콜럼비아, 리갈, 빅타, 시에론, 오케, 폴리돌, 그리고 기타 군소회사 음반의 모든 목록 및 자료들을 최초로 집성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일제 강점기에 국내외에서 생산 ㆍ 발매된 우리 유성기음반의 자료 및 음반 발매 당시의 신보와 신문과 잡지에 실린 음반 관련 기사, 광고, 개별 음반에 딸린 가사지, 직접 듣고 채록한 사설 등을 총망라하여 음반 번호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 ㆍ 수록하였다. 음반아카이브 연구단장인 배연형 교수가 직접 집필한 해제는 4권의 자료집에 대한 이해와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해제ㆍ색인집'은 한국음반의 역사를 풍부한 원색사진자료와 함께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여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한국 유성기음반의 역사를 ‘유성기음반의 여명기(1899~1906)’, ‘유성기음반의 성장기’(1907~1927), ‘한국음반의 전성기’(전기녹음시기, 1928~1945) 등 3기로 나누고, 음향 기록 수단으로서의 녹음 기술의 발달과 한국의 음반 산업이 어떤 배경에서 성장 ㆍ 발달해 왔는지를 음반 실물과 관련 자료를 제시해 가며 세밀히 밝히고 있다.
초기 유성기음반 실물 사진 등 다양한 희귀자료들 수록
총 5권의 『한국 유성기음반』 자료집에는 목록 이외에도 많은 유성기음반 관련 자료를 싣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음반 실물 사진자료이다. 많은 사진자료 가운데 1907년 상업음반으로서 한국에서 처음 발매된 하늘색 딱지의 콜럼비아 음반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나팔통속 주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강아지 그림으로 유명한 미국 빅타 음반의 실물 사진이 소개되어 있으며, 속칭 ‘독수리표’ 음반으로 불린 붉은 바탕에 독수리 그림이 선명한 로얄 레코드 등 일반인들은 접할 기회가 없었던 희귀 음반의 다양한 디자인을 음반회사별, 시기별로 분류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북한에서 혁명가요로 탈바꿈된 정사인 작곡 ㆍ 안기영 노래의 가곡 '내 고향을 이별하고'(닙보노홍K548-A)와 나팔통식 음반 시대의 기념비적인 음반으로 평가되는 ‘일축춘향전’음반 등 수많은 음반의 실물 사진이 함께 실려 있어 유성기음반의 시대적 흐름을 시각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음반 재킷, 재킷에 들어있던 가사지, 각종 신문 광고의 사진도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다. 이 역시 일반인들이 그간 잘 볼 수 없었던 희귀한 자료들이다. 또한 유성기음반을 ‘말하는 기계’로 소개하고 있는 '만세보'의 광고(1907년 4월 19일자 만세보), 세야마 악기점의 제비표 음반 광고, 월남 이상재(당시 조선일보 사장) 선생이 육성 훈사(訓辭)를 넣은 사진 기사(조선일보 1926년 11월 21일자)자료, 윤심덕의 ‘사의 찬미’ 취입 광경 등도 한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진자료들이다. 특히 녹음 자료에 대한 핵심 정보인 ‘연주자’와 ‘곡목’은 색인으로 검색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어 자료집의 활용성을 높이고 있다.
유성기음반은 근대기에 축적된 음향기록물로서 전통과 근현대를 관통하는 문화의 광맥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속에는 선인들이 호흡하던 전통음악과 대중음악, 연극, 영화, 등 다양한 공연 예술은 물론 당대 저명인사들의 육성까지 두루 담겨 있어 근현대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고리가 된다. 그럼에도 유성기음반은 그동안 몇몇 소장자들의 전유물이거나 높은 가격으로 인해 일반인은 물론 전공자들도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했다. 1990년대 이후 많은 유성기음반이 복각되어 나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해도, 전통음악 및 대중음악 전공자들에게 잃어버린 역사를 재구해 줄 유일한 열쇠와도 같은 자료가 곳곳에 사장되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류의 기록은 문자ㆍ영상ㆍ음향 세 가지 수단이 있다. 국가 기록물을 보존하는 기관으로서 도서관과 영상원은 이미 건립되어 있으나, 그 한 축에 해당하는 음향자료 즉, 음반이나 녹음 자료를 전문적으로 보존하는 국가 기관은 아직 없다. 공공이 아닌 민간에서 음반 보존을 위한 시설을 꺰춘다는 것은 많은 재원이 필요하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곧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이다. 디지털 음반아카이브는 적은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본 유성기음반 아카이브는 향후 국립 음반아카이브의 설립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근대 공연예술의 전모가 기록된 유성기음반
유성기음반은 근대 공연예술의 전모가 기록되어 있다. 기울어가는 조선의 궁중음악, 20세기 초엽 녹음된 초기 산조와 고제 판소리, 오늘날 볼 수 없는 다양한 레퍼토리, 오늘날과 비교되는 민요의 창법과 선율, 1930년대와 40년대의 유행가 등 유성기음반 한 장 한 장에는 근대음악의 변천과정을 드러내는 생생한 증거가 적지 않다. 이 외에도 월남 이상재, 마라토너 손기정 등 명사들의 육성 녹음도 오늘날의 미디어와는 다른, 당시 음반의 취입 경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예를 들면, 전통재담과 현대 코미디를 잇는 당대 최고의 만담꾼이었던 신불출(申不出)의 음반은 무려 153건이 검색되는데, 이는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 시스템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전모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예술가로서 재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신불출은 향토색이 짙은 신민요 ‘노들강변’을 작사한 인물일 뿐 아니라, 논개(論介)와 계월향(桂月香)을 찬양하는 노래 ‘장한가(長恨歌)’를 작사하기도 했다. ‘장한가’는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으로 인해 금지곡이 되었는데, 이는 신불출의 민족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수많은 넌센스나 스케치 같은 코메디 음반은 당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어서 장차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전설적인 경기명창이자 재담소리의 일인자인 박춘재의 초기 녹음, 송만갑ㆍ임방울ㆍ이화중선 등 판소리 명창의 주옥같은 소리, 나운규의 아리랑을 포함한 초기 영화의 해설 등 말로만 듣던 명인명창의 소리가 유성기 음반에는 보석처럼 담겨 있다. 한국 유성기음반 검색 시스템에는 이 모든 음향 자료가 가공되어 저작권이 허용하는 한에서 일반인들에게 제공될 것이다. 이로써 그 동안 일부 마니아들만 접할 수 있었던 유성기음반 자료를 책과 웹 서비스를 통해 일반인들도 쉽게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판소리를 비롯해 민요, 대중음악, 연극, 영화, 저명인사의 육성 등에 이르기까지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현존하는 유성기음반에 담긴 모든 음향기록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됨으로써 우리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를 일반대중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림문화총서
수림문화총서는 (재)수림문화재단에서 문화ㆍ예술과 인문학 분야의 우수한 저술ㆍ번역ㆍ역주ㆍ자료원고 등을 선정하여 출판하는 시리즈로서 2010년 하반기부터 상시적으로 원고를 공모하고 있다. 콘텐츠 가치는 높으나 상업적으로 수익성이 낮아 출판하기 어려운 원고를 우선적으로 지원 대상으로 하여 소정의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