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불러 죽은 계집애네 부모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하라고 일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되뇌인 말은 '희생'이었는데, 그의 이 말은 그의 생애와 하나도 상관이 없었다. 형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 p.241
'여러분은 십대 공원이라는 주제를 놓고 삼십 분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십대 공원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행복동에 살 때 어느 분의 소개로 난장이 아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들과 딸이 공장 지대에 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힘든 일을 합니다. 그들의 어린 동료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어떻게 해야 받는지도 모릅니다. 현장 일이 그들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날마다 무지한 생산 계획을 세웁니다. 공원들은 기계를 돌려 일합니다. 어린 공원들은 생활의 리듬을 기계에 맞춥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기계에 빼앗깁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생각나죠? 그들은 낙하하는 물체가 갖는 힘, 감겨진 태엽 따위가 갖는 힘과 같은 기계적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처럼 십대 공원이야기를 하며 노동이라는 말, 의무라는 말, 자연적인 권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처럼 그들을 돕자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갖는 감상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못 줍니다.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이 겪는 일을 보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197X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 p.143
서쪽 하늘이 환해지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면 내가 우주인과 함께 혹성으로 떠난 것으로 믿어달라. 긴 설명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알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 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 뿐인가? 시간이 다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 모두들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빈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 p.276
'나는 도도새다. '
지섭이 말했는데, 윤호는 이렇게 근사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형, 도도새는 어떤 새지?'
'십칠세기말까지 인도양 모리티우스섬에 살았던 새다. 그 새는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개가 퇴화했다. 나중엔 날 수가 없게 되어 모조리 잡혀 멸종당했다. '
--- p.55
그의 집은 부자였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은 작은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에게도 말했었다. 그는 아버지 회사로 들어가 더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었다. 밤에 아파트로 돌아오면 집으로 전화를 하고는 했다. 그 전화선 저쪽 끝에 그의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가 한 일을 보고하고 자문도 구했다. 그는 거의 차렷자세로 아버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끝나면 그의 고용인들이 정리한 대장을 하나하나 실토했다. 그는 우리 동네에서 사온 아파트 입주권을 사십오만 원에 팔았다.
그 이하로는 팔지 않았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나는 미리 사두었다가 일이만 원 정도 더 받고 넘기겠지 했었다. 그가 거실에 앉아 일을 하는 동안 가정부는 음식을 차려놓고 그가 식탁 앞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는 어머니가 보내 준 가정부였다. 그는 그 가정부에게 별도의 돈을 주었다. 집식구들에게 나에 관한 일을 보고하면 안 된다는 조처였다ㅣ 가정부는 내가 온 다음부터 잠을 나가서 잤다. 나는처음 약속대로 '안 돼요'라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안 돼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과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보급받지 못했다. 그의 출생은 따뜻한 것이었다. 나의 첫 호흡은 상처난 곳에 산을 흘려넣는 아픔이었지만, 그의 헛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성장 기반도 달랐다. 그에게는 선택할 것이 많았따. 나난 두 오빠는 주어지는 것 이외의 것을 가져본 경험이 없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 그가 나를 원했다. 그는 원하고 또 원했다. 나는 밤마다 알몸으로 잠을 잤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오빠들은 다른 공장에 취직이 되어 일을 나갔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잠이 든 듯 만 듯한 상테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했다.
--- p.112-113
그런데 경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윤호가 경애를 들여다 보았다. 경애가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경애는 얼굴을 돌려 먹은것들을 토해냈다. 윤호가 손수건을 꺼내 옆 얼굴에 대어주고 보이지 않는 내게의 말뚝에서 경애를 풀었다. 아이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