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처리된 유진의 가족사진을 본 날, 미호는 인터넷으로 ‘반포동 부부피살사건’에 대해 찾아봤다. 사람들은 부유하고 행복한 가정에 사고처럼 찾아온 비극을 두고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10월 4일 밤 9시 20분경, 반포동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 102동 702호로 신고가 접수됐다. 희생자는 남편 강도준과 아내 오유진. 출동한 경찰들은 방안에서 등에 칼이 꽂힌 채 엎드려 있던 강도준을, 베란다 난간에 배를 걸치고 있던 오유진을 발견했다. 등에 일격을 맞은 강도준은 목숨을 구했지만, 옆구리에 자상을 입은 오유진은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사건은 다양한 이유에서 화제가 됐다. 반포동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라는 사건의 배경, 부유한 가정에 갑자기 찾아온 비극이라는 극적인 스토리. 살해당한 젊은 엄마의 눈부신 미모 역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크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건, 엽기적인 사건현장의 모습이었다. --- p.52
미호는 그들의 갈등이 어느 정도 수위였을지 생각했다. 과연 살인으로 이어질 만큼이었을까. 상대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것과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 건 다른 문제다. 서로 질투하고 헐뜯는 건 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세 여자 모두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었다.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기 위해서는 더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했다. 아마도 그 결정적인 일이 발생한 건 3주 전. ‘3주 전쯤인가. 셋이 싸웠다는 얘긴 들었어요. 셋이서 같이 다녔는데 언제부턴가 같이 안 다니더라고요.’ ‘나영 씨는 사람이 완전히 변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넋이 빠진 것처럼 저러고 다니더라고요. 언제부터였더라. 3주 전?’ ‘유진 씨하고는 다 풀었어요, 3주 전쯤에.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더라고요. 얘기 좀 했으면 싶다고.’ 모두에게서 반복해 등장하는 시기였다. 미호는 그 결정적인 사건이 3주 전 발생한 거라 확신했다. --- p.105
저 멀리 비죽 솟은 오피스텔 건물이 보였다. 익숙한 장소에 도착하고, 집이 가까워졌다는 생각만으로도 안도감이 느껴졌다. 미호는 대로변을 따라 걷다 편의점을 끼고 골목을 돌았다.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한 번 더 골목을 도는데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덩달아 머릿속이 환해지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 그 사람들 중 하나의 얼굴이……. 익숙했다. 분명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50대 아주머니 그리고 젊은 남자. 어디에서 봤더라. 그 순간, 뒤에서 들리던 발걸음 소리가 빨라졌다. 미호가 몸을 크게 트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 번쩍 불꽃이 튀었다. 누군가 미호를 벽 쪽으로 세게 밀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