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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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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 경제학자들이 말하지 않는 경제학 이야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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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426쪽 | 546g | 153*224*30mm
ISBN13 9788936485634
ISBN10 8936485636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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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며
서론 기대수명
제1장 왜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발생했을까?
제2장 기업가란 누구인가?
제3장 종교는 자본주의와 공생 가능한가?
제4장 위험사회 또는 새로운 금융 자본주의
제5장 자본가와 학자, 또는 공짜가 어떻게 돈을 만들어내는가?
제6장 특허는 발명을 가로막는가?
제7장 협력의 반격
제8장 P2P
제9장 케인즈의 정신 분석학 - 돈
제10장 케인즈의 정신분헉학 - 공포
제11장 호모에코노미쿠스의 불행 : 자발적 예속
제12장 자본주의의 핵심, 죽음 충동
제13장 경제와 환경 "내가 엄마를 살해한" 방법
결론 오는 정, 가는 정
보너스 경제학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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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희소성에서 탄생한다.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희소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희소성은 계산?조직?분배, 즉 경제를 요구한다. 희소성에서 출발한 경제학자들은, 사물의 가치라는 인류에게 던져진 근본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서 가치란 화폐적 가치를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가치를 수요와 공급이라는 길을 통해 가격으로 측정한다.
그러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무용과 무상(無償), 선물, 무관심, 쾌락, 봉사적 추구, 시(詩), 우연의 창조라면? 만일 상인은 사실 시인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일 베짱이가 없는 개미는 아무것도 아니라면? 자, 이제는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무용이 유용을 창출하고, 무상성이 부(진정한 부,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부)를 만들어내며 이윤은 봉사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할 시간이다.
이 책의 존재이유는 “무상이 부를 창출한다”는 문장에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추상적인 부가 아니라 화폐적 부를 의미한다. 내가 볼 때 이 분야는 계산의 틀에 박혀 쩨쩨한 생각에 갇힌 경제학자들이 감히 일구지 않은 밭이다.

나는 이번 책이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을 극복하려는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궁금증이 풀렸는지는 독자가 답해주어야겠지만, 나는 적어도 몇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나는 “왜 자본주의인가?” 또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왜 상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인가?”라는 질문에 항상 관심이 많았다. 왜 인류는 “이기적 계산이라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맑스) 속에서 가쁘게 숨 쉬면서 이를 덜덜 떠는 운명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상인이나 중개인 같은 ‘이익’의 세상(이익을 뜻하는 단어 ‘interest’는 사람들 사이를 의미하는 ‘inter’가 어원이다)을 살고 있는 이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왜 상인들은 지배계급이 됐을까? 왜 우리는 일부 원시종족이 “아름다움 속을 걸어다니던”이라 노래하던 수렵채취사회에서 뛰쳐나왔는가? 우리는 줄곧 유용하지만 추한 것을 추구해왔다. 떼오필 고띠에는 “유용한 것은 모두 흉하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동시에 우리의 거대한 모험이자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를 멸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삶을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자본주의인가?”라는 질문에 경제학자들은 답하기 어려워한다. 그들은 어떻게 상업적 가치가 무상에서 발생하는지를 부분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무상에서 상업적 가치가 발생하는 과정이야말로 바로 근대경제학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존재론에 접근하려면 경제학의 길에서 벗어나 역사와 인류학, 심리학과 부대껴야 한다. 자본주의와 관련해, 역사학은 왜 유럽에서인지 인류학은 왜 계약과 돈인지 그리고 심리학은 왜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지 속삭인다. 자본주의라는 모험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자멸을 택한 것인가?
마셜과 빠레또(V. Pareto)처럼 심리학에 심취하거나 케인즈와 슘페터(J. A. Schumpeter)처럼 프로이트(S. Freud)에 심취했던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책은 경제학의 경계 또는 그 너머에 자리한다. 우리는 경제학자나 조금 특수한 사상가들을 만날 것이다.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로겐과 과학기술의 사상가들(자끄 엘륄, 베르나르 샤르보노와 이반 일리치), 세르쥬 라뚜슈와 감소론, 지라르의 모방주의―르네 지라르는 이 책을 관통하는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다―그리고 케인즈나 슘페터와 같은 확실한 사상가들 말이다. 역사학자(페르낭 브로델, 데이비드 랜즈……)나 사회학자(막스 베버, 레몽 부동……), 인류학자(마르셀 모스……) 등을 자주 인용하면서도 카를 맑스가 그렇게 자주 등장하지 않아 독자들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내가 맑스를 너무 많이 읽어서일지도 모르고 이런 선택이 잘못일 수 있다. 어쨌든 그는 여전히 위대한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근대경제학의 기본개념인 씨너지나 네트워크 등을 그의 저서에서 찾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에서 가장 반(反)자유주의적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 A. Hayek)에 대해서도 충분히 언급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나와 내 이전 세대의 경제학자들은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지만 레옹 발라(Leon Walras)와 그의 일반균형론이 경제학에 무슨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발라는 불행히도 경제학을 미라로 만들었고 냉동시켜버렸다. 그는 수학적 문제를 제시했고 브라우버가 이를 풀었으며, 내쉬(J. F. Nash)는 이를 다른 훌륭한 방식으로 정리하여 자유주의 사고에 대해 매우 파괴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수학적 문제는 수학적 문제일 뿐이다. 그게 전부이다. 게다가 공급이 자신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쎄이(J. B. Say)의 법칙은 발라의 즉흥적 균형보다 훨씬 심오한 방식으로 균형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솔직하게 생각해보면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경제적 계산이 기업 경영인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시경제학과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궤변학에서나 볼 수 있는 사고의 과장이고 탈선이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케인즈에 대한 매혹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에게는 명확한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아주 단순하게도 경제학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진 커다란 빚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빌린 것을 제대로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 들어가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열심히 일한 당신, 왜 불행한가?
월요일 아침. 숨 쉬기도 힘들 만큼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회사에 도착하면 날마다 반복되지만 어쩐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 잠시 숨이라도 돌릴 겸 인터넷포털을 검색하면 각종 신제품 광고가 우리의 눈을 현혹하고, 할인가 여행상품이 당신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그러나 정신적 여유도 물질적 여유도 없을뿐더러 주말휴일에도 일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불안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열심히 일할수록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는 시간을 희소하게 만든다. 내가 빨리 달릴수록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줄어들고 풍요가 자신의 모습을 과시할수록 초라한 자신만을 발견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일할 시간과 동시에 상품을 소비할 시간을 주지만, 삶의 진정한 가치를 성찰할 시간은 빼앗고 대신 과도한 스트레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삶이 피곤하고 즐거움은 적고 고통이 가득하여 죽음이 오히려 구원으로 주어진다면 긴 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프로이트의 우울한 반문은 경제학의 영역 안에서 적극적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똑똑한 아이 하나가 나을까, 멍청한 아이 둘이 나을까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인적자본이론의 창시자라 불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개리 베커(Gary Becker)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의 간명한 예를 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똑똑한 아이 하나를 낳는 것이 합리적인가, 멍청한 아이 둘을 낳는 것이 합리적인가?” 언뜻 타당해 보이는 이 질문은 이미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을 건드리고 있어서 황당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비인간적인 면을 지닌다. 저자 베르나르 마리스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이러한 극단적 합리성 추구가 난쎈스와 비인간성을 초래한다고 본다. 게다가 경제학자들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혼란스런 군중의 움직임을 속수무책 관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가설은 현실경제에서는 오히려 예외적이다. 케인즈가 상상했듯이 인간의 경제적 행위는 비합리적이고 본능이나 열정, 군중 현상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심리학을 경제학에 적극 접목하여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행동경제학이 케인즈의 이론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자유주의 경제학이 포기해야 할 것도 바로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의 합리성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불행, 자발적 예속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초 모델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며 따라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고 필요에 따라 여가를 즐기며 살아갈 수 없다. 오히려 대다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불행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먹고살기 위해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워커홀릭으로서 자발적으로 일과 회사에 예속된 노예로 살아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르네 지라르를 빌려 이를 ‘모방적 경쟁’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 경제학자들이 ‘필요’라고 표현할 사물에 대한 욕망이 시기와 부러움으로, 사물을 소유한 사람들을 모방하고자 하는 필요로 돌변하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욕망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의 가치는 그것이 부럽거나 감탄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가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회는 계속해서 이러한 경쟁심리를 부추기지만 경제학자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스스로 시장에 뛰어들어 무한경쟁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신자유주의 시대: 모든 위험은 월급쟁이에게
고용불안은 만성화됐다. 과거 통합적 기능을 하던 대기업은 이제 해체되고 있다.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를 쫓아낸다. 해외공장 이전과 운송비용 축소는 생산, 포장, 디자인 유통의 ‘다국적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변화는 노동자에게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불안과 고립, 스트레스와 두려움 그리고 젊은 나이에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제 고용 없는 성장은 불황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씨스템의 만성적 특성이 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감옥이 실업의 사회적 관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노동력의 5분의 1은 단기고용직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 노동자들은 항시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전혀 행복하지 않다. 새로운 자본주의체제에서 임금노동자는 언제나 위험조정의 변수다. 이제 “다(多)위험 봉급쟁이의 시대”가 온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을 불안에 떠는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린다. 불안을 조장하는 노동시장은 두려움의 조직이다. 미국의 수많은 사회학자들은 미국인들이 오늘날 이 노동시장의 공포를 내면화했다고 지적했다. 투자은행가 펠릭스 로하틴(Felix Rohatyn)은 이와 관련해 “미국인들이 얼마나 실업의 두려움을 내면화했는지 이제 실업 자체가 필요치 않을 정도”라고 밝혔다.

자본주의의 두가지 축: 돈과 공포라는 수레바퀴
케인즈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요구한다. 삶의 유일한 목표가 축적하기 위해 축적하는 것이고 삶과 예술을 누릴 줄 모른다면 그것은 경멸해서 마땅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물신(物神)이란 삶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 즉 죽음을 부정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돈은 우리에게 환상적 불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에 대한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두가지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시간의 개념을 파괴하고 삶의 순간성과 우연성 대신 단선적이고 지속적인 축적의 철칙과 이윤과 미래를 향한 인간의 획일적인 행동을 강요하려 한다. 즉 자본주의는 시간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는 체제이며 자신이 불멸할 것이라 착각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로부터의 탈출은 가능한가? 그것은 순간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사회가 조장한 경쟁의 사슬을 끊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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