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벗어나 바다에서 형성된 근대의 세계를 조명하다
15세기 이후 동떨어져 있던 각 문명권들은 바다를 통해 갑자기 소통하기 시작했다. 특히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수십 동안의 짧은 기간에 전세계 모든 지역이 바다를 통해 연결됨으로써 진정한 세계사 혹은 지구사의 흐름이 형성됐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근대 세계는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이제까지 대륙 문명의 관점, 그중에서도 주로 농경문화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역사에서 벗어나, 바다를 통해 형성된 근대의 세계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즉 이 책에서는 연안 지역과 섬, 바다 사이에서 세계 문명들이 만났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다양한 역사적 현장 속으로 들어가본다. 바다에서는 사람들과 상품뿐만 아니라 지식과 정보, 사상과 종교, 언어, 동식물과 병균 등까지도 교환됐으며, 이러한 상호 접촉과 소통은 의욕에 찬 교류로 정착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갈등과 지배로 이어지고 무력 충돌, 경제적 착취, 종교적 탄압, 환경 파괴와 전염병의 발발 등이 일어나게도 했다. 해양세계를 무대로 일어났던 이러한 복잡다기한 사건들과 고통에 찼던, 혹은 활기찼던 삶들을 이 책에서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 저자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고 있으며,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여 역사적 사건들을 다각도로 짚어봄으로써 기존의 통설들을 뒤집거나 다시 생각할 여지를 주고 있어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 각 장마다 내용을 보강하는 사료나 기존의 정설을 반박하는 자료들을 박스 형식으로 곁들여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 책 전체에 200여 컷의 도판들을 컬러로 실어 활기찼던 해양세계를 생생하게 전하고자 했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제1부 아시아의 바다에서」에서는 먼저 근대 초까지 세계의 무게중심으로서 유라시아대륙의 여러 문명이 교류하던 인도양을 들여다본다. 특히 인도양에서도 근대 이후의 세계화가 준비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고 있는 중국 명나라 때 정화(鄭和)의 보선에 주목한다. 정화의 원정(1405-33) 등을 통해 중국은 일찍부터 해상 팽창을 했으며 근대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해양 방면을 포기하고 내륙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결국은 국가 기구와 자본이 효율적으로 결합한 서유럽이 아시아의 바다에 진입하여 세계의 바다를 연결하는 뇌관 역할을 맡게 됐다. 「제2부 폭력이 넘쳐나는 세계」에서는 유럽이 주도하여 세계의 바다를 연결해가는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나를 보여주고 있다. 근대 세계의 형성은 곧 전지구적인 차원으로 폭력이 일반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포르투갈, 에스파냐 등 유럽 국가들의 해양 팽창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다. 「제3부 근대세계의 이면, 선원과 해적의 세계」에서는 세계의 해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한 선원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고통과 핍박 속에서 힘겨운 노동을 해야 했던 선원들은 최초의 프롤레타리아였는데, 이들 중 일부 사람들은 이제 막 형성 중이던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저항하여 해적 집단이 되기도 했다. 「제4부 노예무역 잔혹사」에서는 근대 세계의 가장 참혹한 비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노예무역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 노예무역 중에서 잘 알려진 대서양 노예무역뿐 아니라 북·동쪽 노예무역에도 주목하고 있으며, 사탕수수나 담배 플랜테이션의 참혹한 실상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노예의 기록을 통해 노예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던 아프리카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공포와 고통도 들여다본다. 「제5부 세계 화폐의 순환」에서는 세계 경제가 창출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화폐의 순환을 분석했다. 아메리카대륙의 은 생산과 유통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이때까지의 화폐사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아편, 인삼 등이 가졌던 유사화폐로서의 기능도 조명해본다. 「제6부 물질과 감각의 교류」에서는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에 직접 닿아 있는 음식, 차와 도자기, 작물, 염료, 총기 등의 사례를 통해 각 지역마다 문화적인 선택과 수용이 상이하게 나타남을 예시해봤다. 「제7부 정신문화의 충돌」에서는 정신적인 측면의 교류와 충돌을 살펴봤다. 언어와 종교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추적해봄으로써 근대 이후 우리의 내면세계가 받은 충격을 살펴봤다. 「제8부 생태 환경의 격변」에서는 생태 환경의 극적인 변화를 다루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환경은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것이 아니라 대항해시대 이후 인간의 이동에 의해 변화되고 새롭게 짜여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각 지역에 고립되어 살았던 생물종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뾵해서 생태계 전체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고, 어느 한 지역의 병원균이 다른 대륙으로 퍼져 전지역의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참혹한 재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