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과 일상이 만났다.
진료실 밖 정신과 의사의 친절한 상담
『당신의 속마음』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진료실 ‘밖’에서 쓴, 우리들 마음 ‘속’에 관한 이야기다. 10년 넘게 쌓인 임상 경험에다 생활인으로서의 일상 경험이 함께 녹아 있어 전문성과 현실 감각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나 또한 겉으로는 사람들 마음을 잘 헤아리는 정신과 의사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매일 작은 일로 상처받고 애간장이 타고 머리 뚜껑이 반쯤 열리고 있는 사람이다.”라면서 본인 또한 생활의 무게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전제하고 있다.
저자가 책날개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힌 부분도 무척 흥미롭다. “인간이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애쓰는 존재라 믿고 있기에 이성 및 부부 관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치유력을 믿고 몇 년 동안 꾸준히 기고를 한 덕분에 전보다 나아진 인간이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여전히 집에서는 ‘너나 잘해’ 내지는 ‘알면서 왜 못해’라는 핀잔을 들으며 살고 있다.”고 하니, 현실과 글 세계의 간극을 메우기란 꽤나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글 세계의 합일이 일어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꾸준히 내공을 연마하고 있다.”라는 저자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 또한 한 수 높은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이야기 형태로 풀어낸 고민거리들
예리한 분석과 명쾌한 힌트가 막힌 속을 뚫어준다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Q&A 형식의 상담서와는 색다른 차별성을 지닌다. 한때 희곡과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던 저자는 각종 고민거리와 갈등 상황들을 한 편, 한 편의 짧은 이야기 형태로 풀어내고 있다. 부담없는 꽁트처럼 재미있게 읽히지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예리한 분석과 명쾌한 힌트가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이 책의 1부 <남과 여>에서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갑남을녀의 가감없는 일상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근육질 남성형은 한물 가고 꽃미남이 득세하는 이유, ‘골드 미스’가 좀처럼 결혼하기 힘든 까닭, 연상녀 연하남 커플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 등, 최근의 사회문화 현상들을 꼼꼼히 짚어내고 있다.
2부 <부부 리포트>는 부부의 일상 풍경을 조망하고 그 속에 스며 있는 증상들을 포착하고 있다. “그러든지” “어느 길로 갈까?” “난 괜찮으니까 다녀와” “당신이 웬일이야?” 등 부부간의 언어습관을 분석하여 그 속에 방어나 투사projection, 이중구속 메시지 등 갈등의 불씨가 숨어 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3부 <시네마 테라피>는 전능 환상, 동화와 조절, 정체성, 망상, 말실수, 직관, 우울증, 화, 불안, 상실감 등 생애주기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장애의 코드를 영화 속에서 포착해내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갈등을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내 안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야를 획득하게 된다.
왜 남녀 두 가지 성이 있는 것일까?
언제까지 동상이몽만 꾸고 있을 것인가?
하지현 교수는 남녀의 속마음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며 생생하게 보여준다. 남성에게는 조직화 능력이, 여성에게는 공감 능력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동상이몽을 꾸는 순간들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남성들은 효율성과 결과를 우선으로 하지만 여성들은 친밀감의 확인이나 진행 과정을 중요시한다. 상대방의 안부가 궁금해서 “지금 어디야?”라고 물었을 뿐인데, “어디긴 어디야? 회사지. 내가 뭐, 바람이라도 피고 있는 것 같아?”라는 싸늘한 공격이 돌아오는 것도,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야구로 치면 남자들은 장타자, 여자들은 교타자에 해당된다. 남자들은 돈을 크게 벌거나 승진을 하는 등 야구로 치면 ‘홈런 한 방’으로 그간의 잘못을 모두 날려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기쁨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즉 홈런보다는 적시에 필요한 안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1승만이 아니라 30시즌 이상을 함께해야 하는 부부생활에서는 콤비 플레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왜 남녀 두 가지 성性이 있을까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본 적 있는가?”(57p)라는 저자의 물음에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시너지를 내기 바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감정에도 튜닝이 필요하다
동감과 공감의 차이
서로의 속마음을 보다 잘 이해하고 관계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동감同感’과 ‘공감共感’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감정에도 튜닝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동감은 자기 입장에서 “아, 너 힘들겠다, 뭐 도와줄 것 없니?”하고 말하는 것이지만, 공감은 일시적이나마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의 바로 그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경험이다. 공감은 진심어린 애정과 유연성, 감수성이 요구되는 지극히 섬세하고 어려운 의사소통 과정이지만 튜닝에 성공할 경우, 잡음이 음악으로 변화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이때의 경험은 두 사람을 더없이 강한 결속감으로 묶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