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가름 굼발이와 칼재비, 군신관계와 복종관계
1989년 5월 26일 (금) 나는 동경의 중앙선에 있는 니시오기쿠보역앞에 있는 코케시라는 불란서 요리집에서 5시부터 11시반까지 무려 여섯시간반동안이나, 일본사상사의 최대거봉이라고 불리우는 노석학 마루야마 마사오(구산진남 전 동경대법학부교수) 선생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영광된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김군! 무사와 군인이 어떻게 다른 줄 아는가?'
'네엣?'
일본근대정신과 명치유신 그리고 조선사상사의 특색등등의 광범위한 논의를 전개하던 중, 불쑥 드리미는 선생의 질문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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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가름 蛇 足
미국의 민주는 케리쿠퍼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오케이 목장의 총재비들의 정정당당한 싸움의 규칙이야말로 미국민주주의의 알파이며,오메가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적으로 민주는 어김없이 칼재비-총재비들의 싸움의 공공한 논리로부터 출발한 것이며,민주는 결국 폭력의 바란스체계일뿐이라는 가설을 성립시킨다. 사실, 역사적으로 민주에는 이 이상의 로맨스는 없다. 이것은 인류의 보편사를 꿰뚫은 자로서 확언하건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기철학의 이상은 기사,무사,총재비의 역사적 현실에서 출발한 민주의 개념을 우리 역사가 반드시 반복함으로써만 성취할 수 있다는 필연적 과정을 전제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왕정에서 민주에로라는 축의 전환의 보편사적 가능성은 바로 이러한 전통적 구성물로서의 폭력적 민주개념을 본질적으로 극복하는데,존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민주의 과제는 우리의 유교전통의 장점과 사회변동양식의 특수성과 남북통일이라는 인류사적 과제와 더불어 깊게 생각해봐야 할 과제이다. 19세기후반의 우리 동학의 창시자들은 내가 이 글에서 논파한 왕정을 선천개벽이라 부르고, 민주를 후천개벽이라 불렀음을 명기해둔다.개벽이란 원래는 하늘과 땅의 분화를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동학의 사람들은 개벽을 새로운 문명의 작위라는 의미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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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의 붕괴는 20세기가 끝나가는 무렵에 발생한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20세기를 지탱해왔던 모든 인간의 이해구조가 붕괴하는 데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이해구조와 삶의 양식을 희구하는 인간의 조건에 의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20세기를 재건하기 위한 사건이 아니라 21세기를 신축하기 위한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20세기의 붕괴와 더불어 붕괴되어가는 인간의 이해구조방식에 의하여 해석되어서는 아니되는 사건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21세기에 새롭게 태동되어지는 인간의 이해구조, 그리고 그 이해구조가 지어내는 새로운 작위의 문명양태에 의하여 이해되어야만 하는 사건인 것이다. 이상이 <날개>의 첫머리에서 "십구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라고 절규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또다시 절규해야 할 것이다. "이십세길랑 봉쇄해 버리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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