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은 세 아이 중 첫째였다. 1959년 인간을 지구궤도로 보내는 머큐리 계획을 위해 선발된 7인의 우주비행사들 역시 모두 맏이였다. 그뿐이 아니다. 최초로 지구대기권 밖을 탐험한 우주비행사 23명 중 21명이 맏이였고, 다른 두 명은 외동아이였다. 중간아이나 막내는 어디에도 없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도 대부분 맏이였다. 『타고난 반항아: 출생순서, 가족관계 그리고 창조성』을 쓴 MIT의 저명한 학자 프랭크 설로웨이에 따르면, 맏이들은 나중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성실하고, 보수적이고, 책임감이 강하고, 성공지향적이고, 조직적이다. 상대적으로 융통성이 있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속에 품은 아이디어와 이론을 뜨겁게 분출하는 동생들에 비해 맏이들은 현상유지에 힘쓰고, 현실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맏이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지도자 자리를 휩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008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되돌아보자. 최종 대권후보 3인 중 한 명은 외동아이였고(버락 오바마, 오바마를 외동아이로 보는 이유는 나중에 설명한다), 한 명은 맏딸이었고(힐러리 클린턴), 나머지 한 명은 맏아들이었다(존 맥케인). --- p.13~14
주도권을 잡는 것은 첫째들의 천부적 자질이다. 이런 자질이 이들을 사회에서 리더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앞서 말했듯, 지도자 위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 중에 유난히 맏이가 많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리더 자질이 맏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한편, 반대로 이들을 환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정작 맏이는 리더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인가? 아니다. 말해 주기 전에는 알아서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짜증나긴 하지만 환장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맏이는 태어나던 날부터 그런 상황에 익숙하다. 맏이를 정말 미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문제를 지적해 주고 필요한 일을 하나하나 일러 준 다음에도 여전히 눈만 멀뚱거리고 어깨만 움츠리고 있는 인간들이다.
맏이 아닌 사람들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이거다. “음, 네 말이 맞아. 여기 손 좀 봐야겠네. 근데 누가 해?”
맏이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다짐한다. ‘이번에는 절대 먼저 나서서 일을 맡지 말자. 이제 다른 인간도 제 몫을 할 때야.’
하지만 마감기한이 다가오고, 프로젝트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일이 이렇게 돼도 신경 쓰는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고 완벽주의자인 맏이밖에 없다. 맏이는 결국 어떻게 반응할까? 맏이는 넌더리를 내며 말한다.
“에이, 젠장. 내가 하고 말지.”
그리고 그 일을 한다. 그리고 아주 잘 해낸다. --- p.24~25
비자카드 광고가 생각난다. 고객들은 물건 값을 모두 비자카드로 결제하고, 세상은 광속으로 질주하며 행복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난데없이 현금을 낸다. 그러자 세상이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멈춰서고, 모두들 놀라 쳐다본다. 현금을 내민 한심한 남자는 달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포착된 사슴 같은 표정으로 서 있다. 이것이 바로 완벽주의자가 실수했을 때의 모습이다. 완벽주의자는 실수를 하거나 실패를 하면 인생 전체가 멈춰 서 버린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실패를 쳐다보고 있다고 느낀다.
완벽주의자는 사소한 실패에도 속절없이 나가떨어진다. 그리고 좌절한다. 그러다 보니 발끈발끈 화를 잘 내고(울화통), 남 탓을 잘 한다(책임 전가). ---p.108~109
맏이는 ‘실험적인’ 아이다. 나쁘게 말하면 ‘실험용 쥐’다. 맏이는 하필 부모가 생초보일 때 태어나 괜한 실험을 당한다. 부모는 각종 자녀양육 지침서에서 읽은 조치와 수법들을 맏이에게 골고루 시도한다. 그중 어떤 것은 먹히고 어떤 것은 불발에 그친다. 그리고 그 탓도 부작용도 모두 맏이의 몫이다. 맏이가 중학생 정도 되면 부모도 자신이 아이에게 가혹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글쎄? 부모의 이런 깨달음이 열 살 난 여동생과 일곱 살 난 막내에게는 희소식일지 몰라도, 이미 겪을 것 다 겪은 맏이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맏이의 성격에는 이미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실패한 완벽주의자’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너무나 많은 부분이 부모 하기에 달려 있다. 혹시 부모가 흠잡기의 대가였는가? ‘당연히’를 입에 달고 사는 부모였나?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 p. 137
놀라운 통계 결과가 또 있다. 맏이는 중간아이나 막내보다 이른바 ‘중년의 위기’에 취약하다. 맏이들은 평생 남들을 만족시키고 남들이 원하는 것이 되고자 노력하며 산다. 그러다 40대 또는 50대에 들어서면 불현듯 이런 생각이 밀려든다. ‘여태껏 나 좋은 일은 하나도 못했어.’ 중년에 접어든 맏이들 가운데 갑작스레 직업을 바꾸고, 뜬금없이 나라 반대편으로 이사하고, 노란색 스포츠카를 사고 (그러다 과속 위반으로 걸리고), 심지어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조강지처를 떠나기도 한다. 이들의 행동이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사는 거 이제 진력나. 난 자유롭고 싶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는 인간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비판적 태도를 참고 참다가 엉뚱한 반란을 일으키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 그 대신 크든 작든 모든 면에서, 그리고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솔직하도록 노력하자. 원하지 않는 것을 하거나 되고 싶지 않은 것이 될 필요는 없다.
--- p.162~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