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포장마차 풍경을 담은 수묵담채화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스타화가'의 원조 사석원이 대폿집의 추억을 담아 《막걸리연가》(조선북스)를 펴냈다. 그동안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대폿집 기행’을 묶어 《바람아 사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를 펴낸 지 5년 만이다.
추억과 낭만이 발효되어 만들어 낸 《막걸리연가》는 술과 예술을 오갔던 예술가의 세계,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60여 점의 정감어린 그림이 대폿집에 관한 추억을 더욱 그립게 한다.
“저녁 무렵마다 대폿집들을 다니며 나는 그리운 지난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풍경들, 사람들……. 풍경도 사람도 변했다. 아지랑이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어디서 무얼 할지, 모두가 보고 싶구나. 가난했지만 낭만이 보석같이 빛나던 세월들이여!”
“5년이란 세월이 그렇게 길었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혜화동 할머니집이 가장 먼저 가게 문을 닫았고, 예천 삼강리 나루터 주모는 돌아가셨다. 나루터 주막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사뭇 규모가 커져 예전의 정취와는 많이 달랐다. 대구 도로메기집은 이사했고, 제주잠녀 주막도 요즘엔 해녀들의 쉼터로만 쓰고 있다. 피맛골 철거 때문에 광화문 소문난 집도 근처 르메이르빌딩 지하로 옮겼다. 그저 남은 주모들의 만수무강을 빌 뿐이다.
이미 사라진 대폿집들, 더 이상 예전의 따뜻한 체취를 느낄 수 없는 곳들이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들이 사랑했던 추억의 그곳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꼭 필요한 의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래서 비록 사라진 대폿집도 빠짐없이 전편 그대로 싣고 새로 네 곳을 더해 《막걸리 연가》로 새롭게 출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새로이 그림을 그렸다.
이제 얼마 후면 그나마 있던 대폿집들도 사라질 것이다. 대폿집이 있던 시절을 그리워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도 같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이 우리 시대 대폿집들의 마지막 증언이 될지도 모르겠다. “- 작가의 글 중에서
〈월간 미술〉 선정 한국의 인기 작가 1위, 〈한국일보〉 선정 '2000년대를 빛낼 새별 100인'이기도 한 화가 사석원은 자칭 타칭 사한량이다. 2012년 전시 畵題 폭포를 그리기 위해 전국 각지의 명폭포를 답사하다가 대폿집 기행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60여 점의 그림을 새로 그렸다. 그 뿐인가. 막걸리 상사병을 고스란히 옮긴 절친, 사진작가 이명조 선생을 부추겨 전설의 주모와 풍류를 렌즈에 옮겨 담았다.
그래서 술을 즐기고, 멋을 즐기고, 사람의 향기를 즐기는 사한량의 〈막걸리 연가〉는 추억과 낭만이 발효되어 만들어낸 글과 그림, 사진의 향연이다.
우리 시대 사라져가는 대폿집에 대한 마지막 기록!
가난했지만 낭만이 보석같이 빛나던 세월을 노래한 《막걸리 연가》
요즘도 1주일에 평균 6.5번씩 술을 마시며 사람 사는 정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술자리를 사랑하는 사석원.
그의 발길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이 얽힌 ‘광장시장’에서 시작하여 사람 사는 인정이 가득한 ‘여수 말집’으로, 연탄불에 도루묵을 구워내는 할머니 주모가 있는 ‘대구 도로메기집’에서 수줍은 시인 윤동주와 별을 헤는 ‘두만강 주막’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한 ‘왕십리 대중옥’으로 향한다.
인정을 마시고 흥에 취하는 그의 발걸음은 대폿집의 위치와 메뉴, 주모의 개성에 따라 작은 차이는 있을망정, 사람 사는 정을 찾아 이어진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막걸리 사발을 주고받으며 어울릴 수 있는 곳, 가난했지만 낭만이 보석같이 빛나는 세월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대폿집이다.
사석원은 대폿집 여행을 통해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을 깊이 아쉬워하면서, 세상은 고단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곳이라며 나이 들어가는 우리의 외로운 어깨를 어루만져준다.
‘멋을 알고 풍류를 아는’ 한량 사석원의 《막걸리연가》는 어쩌면 이 시대 대표 한량이 남기는 우리 시대 대폿집들의 마지막 증언이 될 지도 모른다.
막걸리 한잔이 그리워지는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
여수 공화동 언덕 위의 ‘말집’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수탈되던 곡물을 운반하는 마차를 끌었던 말을 주위에서 길렀다 해서 대폿집 이름이 말집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반찬 도루묵의 추억은 대학시절 화실이 있던 ‘아현동시장’ 술집 언니들의 추억으로 이어지고, 인천 차이나타운 ‘만남의 집’으로 가는 길은 김민기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무대가 된다. 서울 종각 앞 남원집은 서양화가 임옥상, 고영훈, 유선태, 전병현, 이동기 선생과 사진작가 배병우 선생의 단골 아지트이다. 부산 중앙동 부산포는 화가와 문인, 언론인의 단골집이기도 하고.
《막즰리연가》는 대폿집에 얽힌 예술가와 문인, 영화 에피소드에, 집마다 다른 독특한 막걸리의 맛, 그리고 푸짐한 안주에 대한 절묘한 묘사가 화가의 글 솜씨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푸짐한 읽는 재미를 준다. 거기에 그 시절을 떠올리며 새롭게 그린 사석원의 한국화 60여 점, 저자와 돈독한 친분을 나누는 사진작가 이명조의 흥과 정을 담아낸 사진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우리 대폿집에서 한잔 할까?
사석원의 글을 읽으면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며 그의 흔적을 뒤쫓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 책의 말미에는 전설의 주모들이 빚어내는 맛의 향연을 쫒아 갈 수 있도록, 이 책에 소개된 대폿집들을 찾아갈 수 있는 정보를 담았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막걸리 집, 영원히 기억된 막걸리 집, 세상에서 가장 맛깔스런 막걸리 집, 내 고향 같은 막걸리 집으로 함께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