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게, 이 양철 쌀통은 우리 아이가 태어날 즈음 들인 주방용품 중 하나다. 쌀통을 들인다는 것이야말로 내 살림의 토대를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절박한 바람과 각오의 반영이 아닐까. 20대 중반, 물렁하고 못 미더운 살림 솜씨였어도 ‘우리 집 쌀통’이 생기고 나니, 급한 대로 살림 한구석에 믿음직스러운 닻을 내린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양철이 좋았다. 그 이유도 확실히 기억한다. 가볍고 녹슬지 않으며 튼튼하다. 붙임성이나 애교 따위 전혀 없다. 모든 군더더기를 깎아 낸 심플한 통이라는 점이 좋았다.
---「만족을 알다_양철 쌀통」중에서
이론은 이해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완전히 마른 줄 알았는데 아주 약간의 수분만 남아도 녹이 슬기 시작했다. 만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참고 있으면, 녹이 점점 퍼져서 기껏 만들어 놓은 하얀 막까지 무정하게 잠식해 갔다. 이를 갈면서 지켜보지만, 적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에잇, 될 대로 되라지. 분노에 차 수세미로 쓱쓱 밀어 녹을 퇴치하고 결국 ‘길들이기 시간’은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를 꼬박 세 번. 땀과 눈물의 한 달을 보냈을 무렵, 드디어 안쪽이 하얀 물때로 뒤덮였고, 내 무쇠 주전자는 녹이라고는 모르는 강한 아이로 성장했다. 무쇠 주전자와 고락을 함께한 그 새벽의 물맛은 둥글둥글 보들보들한 것이 흡사 감로와도 같았다.
---「길들이기 시간_무쇠 주전자」중에서
일 년 내내 잎사귀 찾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뜻밖의 수확과 맞닥뜨린다. 바로 레몬그라스 잎을 손에 넣었을 때다.
(요리에만 넣으면 재미없지!)
그래서 결국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가 하면. 긴 레몬그라스 잎을 그릇 크기에 맞춰 잘라서 그 위에 과일과 케이크를 얹었다. 시트러스 향과 어울리는 과일이라면 뭐든지 좋다. 케이크 중에서는 심플한 것과 어울린다. 오븐에 구워 바로 내는 심플한 케이크도 좋고, 고급 쇼콜라를 듬뿍 사용해 맛이 매우 진한 케이크도 좋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를 더 곁들인다면, 또 어떻게 맛있어질까. 그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케이크라면 뭐든지 좋다.
---「천재 파티시에_잎사귀 그릇」중에서
대나무 찜통은 강한 수증기의 힘으로 가열 조리하는 주방 도구다. 열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가해지기 때문에 음식이 포실하게 되고 영양소도 파괴되지 않는다. 감칠맛 또한 지킬 수 있다. 신기하게도, 대나무 찜통에 찌면 맛이 더 촉촉하고 깊어진다. 그 이유는 대나무 찜통이 대나무와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금속 찜기로 찌면 뚜껑에 수증기가 맺히고 그 물방울이 식어 떨어지면서 음식이 질척해진다. 게다가 바깥 공기에 열을 쉽게 빼앗겨 내부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진다. 하지만, 천연소재의 힘은 대단하다. 대나무 찜통은 대나무 껍질을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뚜껑 틈 사이로 수증기가 적절하게 빠진다. 뚜껑 내부에 두꺼운 종이나 무늬목으로 된 심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수분을 흡수하기도 하고 내뿜기도 하면서 습도를 조절해 준다.
---「다시, 사랑_대나무 찜통」중에서
난 이 프레스글라스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앤티크 잡화점에서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하나씩 소중히 사 모은 컵이 예닐곱 개, 귀때 달린 작은 물병이 하나, 납작한 볼도 하나 있다. 물을 꿀꺽꿀꺽 마실 때나 싱글 몰트를 마실 때, 선반 옆 진열해 놓은 수많은 컵들을 뒤로하고 결국 내가 선택하는 건 프레스글라스의 거친 투박함이다. 입술에 닿는 그 묵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두께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앞가슴이 두텁고 키가 큰 대장부한테 안겨 있는 느낌이랄까. 뭐야, 그런 거였어? 헤헤헤.
한편, 프레스글라스를 다룬 그 책의 결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머, 말도 안 돼요. 우리 집 프레스글라스 컵들이 얼마나 행복한데요?
---「한 방울의 기포_프레스글라스 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