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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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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 대한민국 1세대 과학자 정근모 박사가 전하는 과학기술입국의 생생한 역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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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48g | 145*210*30mm
ISBN13 9791190488174
ISBN10 1190488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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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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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한국에서 유학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물리학을 공부하러 가게 됐으니 자부심도 컸다. 머릿속이 뭔가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 나를 앞에 앉힌 김 원장은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군!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군. 그런데 내가 깊이 부탁할 일이 있네.” 이렇게 말문을 뗀 김 원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당부를 했다. 그는 중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를 언급하며 내게 질문했다. ㅡ“자네도 알다시피 얼마 전에 중국인 과학자 두 명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지 않았는가. 그 과학자들은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미국에 남아 과학 연구를 계속했다지. 그러면 그 사람들이 받은 노벨상은 중국의 것인가, 미국의 것인가?”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다. 미국 유학을 떠날 내게 중국인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를 꺼낸 의미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중략)

“자네는 미국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에 미국 과학자가 되지 말고 귀국하도록 하게. 돌아와서 할 일이 있네. 자네 세대는 빈약한 국내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자네 후배들까지 그렇게 되면 되겠나?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희생해야 거목이 될 수 있네. 자네는 한국의 미래 과학기술 기반을 위해 희생하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동안 나 잘되라는 덕담은 숱하게 들었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이야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일찍이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오랫동안 인재를 키워 왔다. 나라가 잘살려면 과학기술이라는 ‘비료’가 필수라는 김 원장의 혜안은 지금까지도 빛날 뿐 아니라 내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 「Chap 1. 가난한 나라의 과학자, 한 알의 밀알 되기로」 중에서

프린스턴대학교 핵융합연구소인 프린스턴 플라스마 물리연구소에서 낸 구인광고를 보게 되었다. 젊고 유능한 연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핵융합은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학문 분야였다. 핵분열이나 핵융합은 가공할 무기체계인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를 잘 활용하면 값싼 청정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 기술이 된다. (중략)

나는 프린스턴 플라스마 물리연구소(PPPL)라는 최고의 연구소에서 핵융합을 연구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과학기술자들의 사기와 연구 효율을 높이려면 제대로 된 연구와 평가 시스템이 필수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됐다. (중략)

나는 실험 물리학자가 아닌 이론 물리학자로 PPPL에 왔지만 일단 합류한 이상 세계 최고의 장비로 실험해 보겠다고 나섰다. 라이먼 스피처 소장과 토마스 스틱스 실험부장은 나의 이런 열정을 받아들여 스텔라레이터 실험팀에 넣어 주었다. 한국인 최초로 핵융합 실험 연구자가 된 것이다. 이는 20여 년 뒤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일하면서 ‘한국의 태양(K-STAR)’으로 불리는 핵융합 시설의 국내 건설을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자신 있게 건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미국 과학기술계는 연공서열이나 출신을 따지지 않고 젊은 과학기술자에게 기회를 주었다.
--- 「Chap 2. 각 나라 우수 인재 모이는 미국에서 본격적인 과학자의 길로」 중에서

나는 하버드대학교 행정대학원의 과학기술 정책과정에 다니면서 썼던 「후진국에서의 두뇌 유출을 막는 정책 수단」이라는 논문을 찾아 들고 워싱턴의 미국국제개발처(USAID) 처장실을 찾았다. 오랜만에 옛 제자를 만나 반가워하던 해너 박사는 이 논문을 보고 무척 만족해했다. 그는 “논문을 USAID 사업을 위한 사업계획서로 고쳐 써서 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에 응용과학 및 공학 전문대학원을 설립하는 안건」이라는 사업 제안서를 만들어 USAID에 넘겼다. 해너처장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게 새로운 이공계 특수대학원 설립을 권고하는 편지와 함께 이 제안서를 보냈다. 한국이 사업 추진을 결정하면 USAID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략)

1970년 3월, 나는 김기형 과학기술처 초대장관의 초청으로 일시 귀국했다. 귀국의 기쁨도 잠시, 제안서와 관련해 당정 협의회에 보고할 브리핑 자료를 당장 만들어야 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 장관들을 상대로 하는 브리핑이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썼던 논문의 내용대로 이공계 특수대학원 설립은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과학기술 인력을 꾸준히 양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역설했다. 산업을 일으키려면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중략)

이렇게 이루어진 한국과학원(현 카이스트) 설립은 1970년 1인당 국민소득 257달러의 대한민국에서 ‘과학기술 입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과학기술 입국은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국민,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관료, 그리고 과학기술인의 염원과 의지가 합쳐진 것이라 믿는다.
--- 「Chap 3. 무엇을 배우고 돌아가 조국 발전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 중에서

나는 1982년 7월 2일 당시 여의도 한국전력 건물에서 사장 취임식을 하고 사명을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KOPEC)’로 바꾸고 한국전력 일거리를 맡게 됐다. (중략)

나는 한국전력기술에서 원자력발전의 기술 자립과 설계 표준화를 추진했다. 미국과학재단에서 1979년 수행했던 스리마일섬(TMI)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원인 분석과 대응 정책을 연구하면서 원전 안전을 위해서는 건설과 운전을 포함한 설계 표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같은 기술 후발국이 원전과 같은 고등기술을 안전하게 사용하고 기술 자립화를 이루려면 ‘설계 표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게 됐다. 모두가 시기상조라고 말렸지만 나는 과감하게 나섰다. 지금 하지 않으면 더욱 오랫동안 기술 종속국에 머물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나를 행동으로 이끈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전 세계에서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는 한국형 표준 원전은 이렇게 첫걸음을 뗐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을 종속형에서 자주형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과감한 발상이었다.
--- 「Chap 6. 가난한 나라의 살 길은 오직 기술 자립뿐」 중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총회의장국과 이사회의장국이 각자 맡은 의결 활동을 하고 사무총장이 실무를 총괄하는 구조다. 1989년 총회의장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맡을 순서였다. 총회는 만장일치로 나를 의장으로 선출했다.

IAEA 이사회 소속 각국의 적극적인 후원과 사무국 간부들의 호의적 분위기 조성으로 만장일치로 IAEA 의장에 당선된 것에 대해 국내 언론은 크게 보도하였다. 더욱이 그 당시 분할되지 않았던 소련이나 동독 대사의 적극적인 추천 발언은 의외였다. 내가 외교관 출신이 아니고 과학기술자로서 국제 원자력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무국 후원자로서의 이사 역할을 다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 「Chap 7. 과학기술처 장관 두 번 맡다」 중에서

내가 1990년 처음 과학기술처 장관을 맡으면서 배운 깨달음의 하나가 ‘장관 수명은 평균 1년’이라는 것이다. 인사·정책 결정과 실무 집행을 속전속결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1994년 12월 24일 ‘재수생 장관’이 된 후 첫 간부회의에서 나는 “장관으로서 꼭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에만 전념하려고 하니 행사성 업무는 가급적 차관과 차관보가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고 실무자들과 함께 추진하려던 업무 가운데 첫째는 고등과학원(KIAS) 설립이었다.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처럼 기초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고등과학원을 서울 홍릉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옛 교정에 1996년 10월 세웠다. 가난 탈출을 위한 경제개발을 이끄는 과학기술을 넘어 이제 ‘노벨상에 도전하는 기초과학의 전당’을 만들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둘째는 한국 과학기술자들에게 ‘미래 무한 청정 에너지원’인 핵융합을 연구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는 1995년 12월 ‘국가 핵융합 연구개발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이듬해 1월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을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2007년 9월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인 케이스타(K-STAR)가 완공되고 국가핵융합연구소가 설립돼 본격적인 연구를 펼치고 있다. 현재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짓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을 한국 과학기술자들이 이끄는 것은 이런 투자가 밑거름이 되었다.

셋째는 항공우주 종합계획 수립이다. 이를 통해 우리 손으로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첨단 과학기술 연구를 수행할 뿐 아니라 유도탄 방어망을 구축해 북한 핵무기나 미사일을 쓸모없는 쇳덩어리로 전락시키고 싶었다. 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의장 시절부터 북한의 핵무장 계획을 퇴치하려면 핵무기를 무력화하거나 사용할 수 없도록 방어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과학기술을 활용해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 「Chap 7. 과학기술처 장관 두 번 맡다」 중에서

1998년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는 처음 미국의 전미과학공학의학한림원 회원이 됐다. 최고 과학기술인 조직으로 입회 규정이 까다로워 분과별 심사를 거쳐 전체 회원 투표에서 유효 투표수의 85% 이상을 얻어야 한다. 워싱턴에서 열린 입회식에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는데 윌리엄 울프 전미공학한림원장의 개회 연설을 듣고 놀랐다.

“오늘 대한민국 회원 1호가 탄생하면서 이 건물에 태극기를 처음 게양했습니다.” 아내와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내가 처음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한국인 과학기술자로 일한 보람이다.
--- 「Chap 8. 미국한림원에 휘날린 태극기와 해비타트 운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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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연재 칼럼 정근모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일반 대중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의 흥미진진한 역사와 뒷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제 그 이야기가 책자로 출판되니 대단히 반갑습니다.
-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한 사람의 과학자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어떻게, 또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 과학기술자들과 청소년들에게는 감동과 깨달음을 주고, 정책전문가와 역사가에게는 귀한 과학기술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
과학자 정근모의 발자취가 곧 대한민국 과학계의 역사이고, 그의 족적이 곧 우리 과학계의 성취임을 절감합니다. 그리고 그 생생한 이야기들이 이제 이 책을 통해 더 깊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음에 안도감이 듭니다.
- 박형주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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