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미전도 종족에게 성경을!”
번역, 선교, 제자훈련의 3박자 율동
“내 맘대로 길을 가려 하지만 그 길을 이끄시는 이는 하나님입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은행원의 길을 버리고 경제학 교수의 꿈을 키우다가 문득 이슬람권 선교사의 꿈을 품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계성경번역선교회WBT의 선교사가 되는 훈련을 받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SIL의 1기생 훈련을 마친다. 그리고 영국에 체류하며 아랍,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꾼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가게 된 곳은 이슬람권도 아프리카도 아닌 남태평양 섬나라의 파푸아뉴기니, 그는 마치 마지못해 니느웨로 향하는 요나처럼 가족을 이끌고 비행기에 오른다.
문명화 되지 않은 소수부족이 넘쳐나는 파푸아뉴기니, 경비행기로 오가야 하는 험난한 오지마을 메께오. 돼지와 마법과 원시의 삶이 있는 땅. 그곳에서의 삶은 따지기 좋아하고, 문명 생활에 젖어 살던 한 남자를 서서히 변화시켜, 소명의 뜻을 깨닫게 한다. 현지인과 부대끼며 20여 년을 살면서 메께오 부족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오묘한 뜻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변화와 조정의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 있다. 변화와 조정은 파푸아뉴기니뿐 아니라, 내가 낙망하고 좌절한 이 자리에서도 일어난다. 오만함을 버리면 삶의 모든 것이 바뀐다. 이 책에는 3가지의 초점이 있다. 평범한 신앙인이 어떻게 세계적인 성경번역 선교사가 됐는가의 신앙 모험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참뜻을 알아가는가의 고백적 간증, 소수부족 선교는 어떠해야 하는가의 현대 선교학 등.
이 책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파푸아뉴기니의 메께오 마을에서 20년을 헌신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소수부족어 신약성경을 완역한 후, 새로운 소명을 받아 세계번역선교회의 지도자이자 번역대학원의 교수가 된 정제순 선교사와 그 가족이 겪은 지난 20여 년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난 부분을 다듬으실 때 참 다양한 방법을 쓰신다. 길을 막는 것처럼 보이는 것,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것들을 가지고 다시 다듬으시니 말이다.” ― 본문 중에서
“나는 이슬람 선교를 위해 7년 넘게 키워온 꿈을 접어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대와 초조가 뒤섞인 채 1989년 1월, 우리는 파푸아뉴기니로 떠났다. 훗날 돌아보니 하나님 뜻은 내 뜻과 달랐고(사도행전 55장 8~9절), 우리가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성취되는 것을 그분의 뜻이었다(잠언 19장 21절). 그리고 항상 그분이 옳았다.” ― 본문 중에서
“자기 말 성경처럼 큰 기적은 없습니다.”
메께오에서의 삶은 정 선교사 가족에게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카고컬트(화물숭배)라는 남태평양 특유의 혼합종교 탓에 얼떨결에 부활한 조상신으로 오해받은 일, 그곳 사람들이 자식만큼 귀히 여기는 돼지를 실수로 두 마리나 돌팔매질로 죽게 한 일, CIA 스파이로 오해받아 부족회의에 서게 된 일, 무장 강도에게 차를 빼앗긴 일, 현지 메께오 부족이 보여준 뜻밖의 인정과 사랑, 그리고 성경공부를 통한 자발적인 부흥 등…. 지은이가 점점 자라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편으로는 성경번역의 소명을 띤 선교사로서 조금씩 성장하고, 또 변화해가는 과정이 이 책 속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생각도 있다. 아무것도 없이 열정과 이상만으로 뛰어들었던 20여 년의 세월. 어느덧 세월이 지나 현지인의 마음속에 들어온 친구이자 성경번역의 지도자로서, 한국에서 또 파푸아뉴기니에서 새로운 '예수의 제자'를 키워내고 있는 그는 지금도 이렇게 얘기한다.
“자기 말로 쓰인 성경을 갖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땀이 배이고 눈물이 흐른 줄 모르는 거죠. 성경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으니 … 자기 말 성경처럼 큰 기적은 없습니다. 아직 자기 말 성경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들이 구하는 기적은 오히려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있으니까요.” ― 한국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인터뷰 중에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해외 선교에 대해 이런저런 좋지 않은 얘기가 들린다. 물량주의, 기능주의, 대형주의, 세속주의 등 한국 교회의 선교가 갈수록 대형화하고, 또 갈수록 성과 위주로만 나가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 역시 종종 들린다. 특히나 한두 해도 아닌 장기 사역을 나선 선교사들에게는 경계해야 할 것들이 유독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정 선교사는 신약성경번역을 마친 후, 정이 들었던 파푸아뉴기니를 미련 없이 떠났다. 제자훈련의 기본 그대로이다. 번역 과정에서 만난 숱한 현지인 동역자들, 그들과 함께 생활해 나가면서 그들므 변화시키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면 결국 변화된 건 선교사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들 하나하나를 예수의 제자로 만들고, 그 자신이 변화되어 메께오 부족의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제도까지 깔끔하게 갖추어놓은 후 정들었던 그곳을 떠났다. 현재 파푸아뉴기니의 구약성경 번역은 현지인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지인의 손으로 직접 세운 교회까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정 선교사는 새로운 소명을 받고 현재 한국에 머물며 한동대학교 소재 아릴락 연구소장으로서, 통번역대학원의 교수로서 자신의 뒤를 이어 새로이 선교의 길을 떠날 사람을 길러내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그때가 너무 이른 시기가 아니라 “꼭 떠나야 할 시기이며, 사역이 절정일 때 떠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믿었다. … 사역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선교사 없이도 자립할 수 있다면 과감히 떠나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 본문 중에서
“오만함을 버리면 생각이 바뀐다”
파푸아뉴기니는 860여 개 이상의 언어가 공존하며, 접근이 쉽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그런 만큼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갖가지 풍습이 많이 존재하는 곳이다. 특이한 종교 의식, 결혼 축제, 탈상 의식, 우리와는 사뭇 다른 메께오의 갖가지 생활환경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 20년간의 삶의 체험이 배어 있는 그런 모습들을 찾아보는 것 역시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그러나 "슬픈 열대"를 쓴 레비스트로스처럼 인류학적인 시선, 참여관찰자의 관점으로 씌어진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이렇게 강조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제이지 우리의 관찰대상이나 연구대상이 아니라고, 그들은 그저 우리와 다른 문화를 지닌 피를 나눈 하나님의 형제일 뿐이라고.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모습,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말하며, 우리가 오만함을 버리고 그들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이들도 원래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 … 이들은 원래 하나님의 소유였다. 이제 그 형상을 회복시켜야 한다. 회복시켜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려드려야 한다. 그때라야 이들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의 진면모가 무엇이고 얼마나 위대한지 알 것이다. … 필수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다.” ― 본문 중에서
"소수부족의 성경번역을 왜 굳이 해야 하나, 차라리 영어를 가르치면 될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발달된 문명을 앞세워 그들을 계몽시켜버리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 역시 우리가 버려야 할 오만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식민지의 아픔이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말을 없애려 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었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다른 부족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냐는 거죠. … 소수부족이라는 말 자체가 성경적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승자독식 세계관의 영향이죠. 세속주의입니다. 이거는요, 죄악입니다.”
― 한국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인터뷰 중에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
이 책은 오지 선교의 소명을 받고 20여 년을 성경번역에 힘쓴 정제순, 홍정옥 선교사와 세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만난 숱한 현지인과 동역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태평양의 동쪽 끝 파푸아뉴기니의 갖은 풍광들 속에, 평생을 헌신해온 가족의 이야기가 때론 벅차게, 때론 잔잔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과, 문화 다양성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종교인이라면, 특히 선교사역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물론 현대의 기독교 문화에 관심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잠시 사는 삶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메께오족과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저희들에게는 큰 복입니다.” ― 『국민일보』 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