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5
|
그녀의 입술에 닿아 있던 엄지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입술을 쓸었다.
“이은재 씨. 나와 계약하죠?” 마치 달콤한 고백처럼 들리는 녹일 듯 부드러운 목소리다. “당신은 날 통해 복수를, 난 당신을 통해 후계자를.” 복수. 그 한마디에 심장이 뜨거워졌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인간들의 면면이 안구에 새겨지기라도 한 듯 선명히 떠올랐다. “복수…….”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열자 무영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맞아요. 복수. 우리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자고요.” 그의 말에 여태 가둬 두었던 눈물이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영혼도 팔아 치울 수 있다. 차마 감기지 않던 아버지의 눈꺼풀을 감아 드릴 수만 있다면. 그래, 아이 열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 “좋아요. 계약해요. 할게요. 그 계약.” 무영의 손가락이 입술까지 흘러내린 눈물을 짓이기듯 걷어 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전에 확인 하나만 할까요?” 또 무슨 확인이 필요한지. 은재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당신에게 끌리는 내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 달아 봐야지. 당신 역시 내 아이를 낳아 줄 수 있을지 어떨지 시험해 봐야 할 거고 말이야.” 비스듬히 기울어진 그의 얼굴이 느리게 다가섰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바짝 움츠린 은재가 몸을 뒤로 뺐다. “그게 무슨.” 그러자 그녀의 턱을 움켜쥔 그가 벌어진 틈을 대번에 좁히며 입술을 부닥쳐 왔다. “일단 해 보자고.” 뜨거운 숨결과 함께 마지막 말을 내뱉은 그가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베어 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