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한 지배력은 커져가지만 개인적인 삶에서나 사회적인 삶에서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또한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끊임없이 구상해내지만 우리 현대인은 무수한 수단들의 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 수단들에 존재 의미를 부여하는 궁극적인 목적, 즉 ‘인간 자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기계의 노예로 전락했다. 결국 물질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인간다운 삶과 관련된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의문에 대해서는 무지한 실정이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방출하고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다.--- p.18
인본주의적 윤리는 인간 중심적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은 아니다. 가치 판단을 비롯해 어떤 식으로든 판단을 내릴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경우에도 인간은 자신의 특이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또한 오직 그런 이유에서만 개개인의 가치 판단은 유의미하다는 점에서 인간 중심적이란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인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보다 소중한 것은 없고 고귀한 것도 없다고 전제한다.--- p.34
현대사회에서는 행복과 개성과 개인의 이익이 유난히 강조되지만, 이상하게도 삶의 목표는 줄곧 행복(신학적으로는 구원)이 아니라 노동에서 얻는 성취감, 즉 성공이라고 가르쳤다. 돈과 명성과 권력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자극제인 동시에 목적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행동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착각에서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배제한 채 다른 모든 것을 위해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 자신의 삶과 삶을 살아가는 기술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것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p.43
양심과 교감하는 법을 터득하기란 주로 두 가지 이유에서 무척 어렵다. 첫째, 양심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자신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목소리,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와 신문, 라디오와 쓸데없는 잡담 등 사방에서 소음처럼 웅웅거리는 소리와 주장에 끊임없이 노출된 채 지낸다. 설령 우리가 우리 자신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의도적으로 계획했더라도 이보다 더 잘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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