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진실. 결정적인 순간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소방관 엄마 아빠 때문에 생일날에도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소년이 있다. 이번 생일에도 어김없이 혼자 케이크를 자르려는데, 이상한 목소리가 말을 건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소년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텅 빈 집 안에 누군가 있을 리가 없다. 다시 나이프를 드는 순간,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어이, 나를 그 칼로 찌를 셈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식탁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케이크였다! 얼빠진 소년 앞에서 케이크는 자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늘어놓는다.
『초콜릿 케이크와의 대화』는 어느 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시적(詩的)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짧지만 오랫동안 기억되고, 힘들고 지칠 때 달콤한 케이크처럼 늘 조금씩 꺼내 맛볼 수 있는 순간.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오며 이런 순간을 잘 받아들여야 비로소 아름다운 세계에 눈뜰 수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소년과 케이크는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는 동안 서로의 고민과 꿈을 알게 되고, 서로 ‘공감’한다. 그리하여 케이크는 소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게 되고 소년은 케이크를 영원히 ‘추억’하며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한 채.
소년이 늘 혼자 시간을 보내며 애완동물이나 친구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소년에게 찾아온 순간이 단지 느닷없는 순간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소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슴 속에서 싹터 자라난 소통에 대한 갈망이 말할 수 없는 케이크를 말하게 하는 ‘기적’의 순간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에게는 이런 순간이 언제 찾아올까? 나라면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을까? 내가 초콜릿 케이크라면?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지만 책장을 덮자마자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진다. 이 질문들에 스스로 대답하면서 독자들은 상실, 희생, 공감, 극복과 같은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진실.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 가장 강력한 독을 감추고 있다.
평범해지는 것이 꿈이지만 도저히 평범해질 수 없는 가정환경 때문에 고민하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클레망스’. 예술품 전문 도둑으로 활약하느라 집에 붙어 있을 새 없는 부모님 대신 뱃살 빼는 것이 꿈인 괴짜 유령 ‘오스카’와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레망스네 학교에 온몸에 형형색색의 반점을 지닌 ‘시몽’이 전학 오고, 그 즉시 학교의 스타가 된다.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반점의 비밀을 알아내던 중, 클레망스는 시몽의 고통스러운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 아름다운 반점은 부모님께 맞아서 생긴 멍이었던 것! 시몽을 일깨우려는 클레망스와 유령 오스카의 노력은 실패하고, 급기야 시몽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삶의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클레망스는 너무나 자상해 보이는 시몽의 아빠를 보며 생각한다.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 가장 강력한 독을 감추고 있는 법’이라고. 소통과 대화도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초콜릿 케이크와의 대화』에서 소년과 케이크가 서로의 고민을 주고받으며 공감했던 것과는 달리, 클레망스와 시몽의 대화는 계속 겉돌기만 한다. 그리고 컬러보이의 죽음으로 클레망스는 그나마 남아 있는 소통의 가능성마저 잃고 만다. 의미 없이 여겨지던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상상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이 두 가지야말로 ‘강력한 독’을 품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진실이 아닐까?
세 번째 진실. 파괴를 멈추는 것은 사랑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손에 닿는 것마다 죄다 금이 가고 들어가는 건물마다 흔들리는 이상한 현상을 겪게 된 소년이 있다. 자신이 그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는 소년은 급기야 의사로부터 믿을 수 없는 진단을 받는다. “이 아이는 지진입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소년의 사진이 가게 유리창이며 공중전화 박스, 우편함과 가로수에 나붙기 시작한다. 다음과 같은 글과 함께. “시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여러분의 안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이 소년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모든 일에 책임을 지기로 한 소년은 아무도 없는 '세상의 끝'으로 떠나기로 한다.
“마르탱 파주는 이 책을 통해 어른들의 무차별적 폭력으로 인해 삶의 안정감을 잃어버린 아이가 그 공포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경고합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서로를 파괴하고 있습니까?’”
- '추천의 글' 중에서(『궼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의 저자,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나는 지진이다』는 세상에서 얻은 상처 때문에 ‘지진’이 된 아이가 그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나도 세상에게 복수하리라는 무의식의 표현일지 모르지만, ‘지진’으로 인해 가장 고통 받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 자신이다.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자신을 입양해 준 사랑 많은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고통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아이는 부모 곁을 떠나 끔찍한 고통을 혼자 겪어 내기로 결심한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여행을 떠난 소년은, 잠시 쉬어가던 숲 속에서 식물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서 세상으로 관심을 옮길 때 지진이 잦아드는 것을 체험한다.
숲 속으로 도망친 소년을 찾아낸 것은 ‘지질학자’다. 아이가 지진 때문에 고통 받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진’이야말로 모든 것을 창조해 낸 원동력이라며 지진을 찬양하는 사람이다. 이 ‘지질학자’와 부모의 도움으로 아이는 지진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간다.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물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소년의 집과 학교, 온 도시에 연못이 만들어진다. 세상을 파괴하지 않으려면 소년은 늘 물 곁에서 살아가야 한다. ‘물’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노력하는 한 언젠가는 지진을 극복할 것이라는 믿음, 설령 달라지는 것이 없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소년을 사랑하는 것. 이 믿음과 사랑이야말로 소년의 흔들리는 내면을 잠재우는 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