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여행』을 세상에 내 놓은 지 2년 만에 두 번째 권을 꾸미게 되었다. 애초에 소설을 통해 근대사 전체를 살펴보겠다는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니었지만, 전편을 출간하고 나니 이 주제를 한 권으로 끝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지역의 소설들을 빠뜨렸고, 아프리카와 동유럽의 역사에서도 생략한 것이 너무 많았다. 이 책은 이런 아쉬움이 낳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지만 더 다닐 만한 곳이 생기면 그때 다시 길을 나서기로 하고 일단 한 매듭을 짓는다.
이번에도 소설로 역사를, 역사로 소설을 읽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나갔다. 구성이나 구체적인 기술 방법도 전편의 예를 따랐다. 서유럽에서 시작하여 동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 대륙을 한 바퀴 도는 소설 여행이다. 지역에 따라 8개로 장을 나누고 그 안에 3편씩, 모두 24편의 글을 모았다. 이야기의 출발이 서유럽인 이유는 근대 소설이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우리가 쓰는 근대의 표준 시간이 서유럽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관심 있는 지역의 소설을 먼저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록 전편의 형식을 따르긴 했지만 소설과 역사의 배경은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했다. 전체 24편 중 18편이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소설들을 다루고 있는데,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들이 다수 포함 되었다. 티베트나 몽골, 카자흐스탄이나 캄보디아, 대만의 소설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서유럽과 미국 소설은 책의 균형상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경우에도 전편에서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소설을 선택하였으니 굳이 중복이라 보기는 어렵다.
소설을 모아놓고 보니 근대 소설이 관심을 가진 주제란 결국 ‘자본과 노동’, ‘전쟁과 평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였다. 자본과 노동의 갈등이 우리가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면 전쟁의 고통과 평화의 의지는 우리를 각성하게 만든 힘이었다.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꿈이지만 디스토피아는 실제로 닥칠지도 모를 불안한 미래이다. 놀랍게도 이런 주제를 다루는 데 지리적인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럴 때 쓰자고 만든 말은 아니었겠지만 소설을 기준으로 볼 때 지구는 하나였다. 근대 소설이 기쁨보다 슬픔에 친숙한 양식이라는 점도 다시 확인했다. 근대 소설의 주인공들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해자가 된 인간들, 절망 속에서 가엾게 죽어간 용사들, 가난으로 신음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여기 실린 소설들은 민족주의, 제국주의, 이념, 전쟁 등 일부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들이 정작 그것들과 무관한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가족은 이산되고, 사랑은 깨지고, 병사는 사망하고, 희망은 무너지고, 진실은 가려지고, 가치는 훼손된다. 소설이 역사를 담아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최근의 소설은 지난 세기 소설들처럼 사실적으로 역사를 기록하려 하지는 않는다. 나아가 소설에 역사를 담는다는 시도를 촌스럽게 생각하거나 불가능한 일로 여기는 경향까지 있다. 하지만 이런 ‘세련된’ 생각이 일부 지역의 소설에 한정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가 요동치는 곳의 작가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자기 소설의 기반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번 책을 쓰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여전히 그러한 소설이 감동을 준다는 사실도 재확인했다. 소설이나 역사나 인간들이 살다 간 흔적들의 기록이라는 면에서는 같다. 그것을 기록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인간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도 같다. 단지 역사에 비해 소설은 많은 부분을 감성에 의지한다.
우리가 굳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인간을 만나 그들의 경험에 공감하기 위해서이다. 공감을 통한 감정의 흔들림만큼 인간을 잘 이해하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소설 읽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여러 지역의 소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소설로 읽는 세계사”를 마친 나의 결론이다. 역사의 진보 혹은 인간 의식의 발전에 대해 의심하면서 보낸 한 해였다. 주로 정치적인 것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야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이성을 사람들이 어떻게 합리화하는지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이러한 비이성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에 경악 이상의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런 시대를 견디는데 소설 읽기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작은 승리가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두운 역사가 빨리 기억 속으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