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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
중고도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 창비 | 1999년 09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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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5*200*20mm
ISBN13 9788936421212
ISBN10 8936421212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선운사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살아남은 자의 배고픔
혼자라는 건
속초에서
가을에는
그에게
마지막 섹스의 추억
먼저, 그것이
위험한 여름
어떤 족보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어떤 사기

2. 나의 대학
과일가게에서
목욕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어떤 게릴라
우리 집
사는 이유
슬픈 까페의 노래
돌려다오
대청소
다시 찾은 봄
북한산에서 첫눈 오던 날
폭풍주의보
인생
나의 대학

3.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1
지하철에서 2
지하철에서 3
지하철에서 4
지하철에서 5
지하철에서 6
마포 뒷골목에서
새들은 아직도
짝사랑
Personal Computer
차(茶)와 동정(同情)
24시간 편의점
관록있는 구두의 밤산책
라디오 뉴스

4.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생각이 미쳐 시가 되고
꿈 속의 꿈
영수증
사랑의 힘
어쩌자고
또다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자본론
한 남자를 잊는다는 건
귀거래사(歸去來辭)(1992)
내 속의 가을
담배에 대하여
어떤 윤회(輪廻)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시(詩)

발문/김용택
후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한 남자를 잊는다는 건


잡념처럼 아무데서나 돋아나는 그 얼굴을 밟는다는 건
웃고 떠들고 마시며 아무렇지도 않게 한 남자를 보낸다는 건
뚜 뚜 사랑이 유산되는 소리를들으며 전화기를 내려놓는다는 건
편지지의 갈피가 해질 때까지 줄을 맞춰가며 그렇게 또 한시절을 접는다는 건
비 개인 하늘에 물감 번지듯 피어나는 구름을 보며 한때의 소나기를 잊는다는 건
낯익은 골목과 길모퉁이, 등 너머로 덮쳐오는 그림자를 지운다는 건
한 세계를 버리고 또 한 세계에 몸을 맡기기 전에 초조해진다는 건
논리를 넘어 시를 넘어 한 남자를 잊는다는 건
잡념처럼 아무데서나 돋아나는 그 얼굴을 뭉갠다는 건


마지막 섹스의 추억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 p.102, 22, 36
지하철에서 1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지하철에서 4

세 여인이 졸고 있다.
한 여인의 머리가 한 여인의 여깨에
한 여인의 어깨가 한 여인의 가슴에
한 여인의 피곤이 또 한 여인의 시름에 기대
도레미 나란히

세 남자가 오고 있다.
순대 속 같은 지하철
데친 듯 풀죽은 눈알들 헤집고
삶은 듯 늘어진 살덩이 타넘고

먼저, 거지가 손을 내민다.
다음, 장님이 노래 부른다.
그 뒤를 예언자의 숱 많은 머리
휴거를 준비하라 사람들아!
외치며 깨우며 돌아다니지만

세 여인이 졸고 있다.
세 남자가 오고 있다.

오전 11시 지하철은
실업자로 만원이다.
--- p.60-65
아스팔트 사이 사이
겨울나무 헐벗은 가지 위에
휘영청 쏟아질 듯 집을 짓는구나

된바람 매연도 아랑곳 않고
포크레인 드르륵 놀이터 왕왕시끌도
끄떡없을 너희만의 왕국을 가꾸는구나
부우연 서울 하늘 무색타
까맣게 집을 박는구나

봄이면 알 낳고 새끼 치려고
북한산 죽은 가지 베물고
햇새벽 어둠 굼뜨아 훠이훠이
부지런히 푸들거리는구나

무어 더 볼 게 있다고
무어 더 바랄 게 있다고
사람 사는 이 세상 떠나지 않고
아직도
정말 아직도 집을 짓는구나

게으른 이불 속 코나 후빌 때
소련 붕괴 뉴스에 아침식탁 웅성거릴 때
소리없이 소문없이
집 하나 짓고 있었구나

자꾸만 커지는구나
갈수록 둥그래지는구나

봄바람 싸한 냄새만 맡아도
우르르 알을 까겠지

모스크바에서도 소리없이
둥그렇게 새가 집을 지을까?

내 가슴에 부끄러움 박으며
새들은 오늘도 집을 짓는구나
--- p.70-72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p.8-9
'대청소' 중에서

내 청춘의 푸른 잔디, 어지러이 밟힌 자리에 / 먼지처럼 일어나는 손거스러미도 / 뿌리째 잘라 없애야지 / 매끄럽게 다듬어진 마디마디 / 말갛게 돋아나는 장미빛 투명으로 / 새롭게 내일을 시작하리라
--- p.48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던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귀퉁은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 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번 곱씹는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 p.12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 p.22
가을에는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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