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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Performing Arts 2021: Mult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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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Performing Arts 2021: Mult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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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9쪽 | 170*260*20mm
ISBN13 9788963032962
ISBN10 8963032965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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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6 발간사 - 윤범모
8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성용희
28 권하윤
38 움직임, 차이에 대한 레토릭 / 손옥주
51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감각의 세계 / 맹지영
60 서현석
76 몸짓의 영화를 위한 산책 / 유운성
89 지우고 다시 쓰는 극장, 연극: 증발된 것들을 위해 / 이경미
100 안정주/전소정
110 허공에서 깨어나다 / 김윤경
126 김치앤칩스
142 불확정성, 스코어, 퍼포먼스 / 레프 마노비치
151 〈응시〉의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며 / 엘리엇 우즈, 손미미
166 정금형
176 정금형의 프로토콜: 만들기와 좌대 / 현시원
188 후니다 킴
198 세계를 감각하고 나를 인지하는 장치 / 신예슬
210 데이터스케이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 오영진
220 리뷰 잠재성으로서의 멀티버스 / 성용희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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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꾸준히 시도해왔던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 또 다른 감각과 인식에 대한 실험은 최근의 기술과 과학을 만나 ‘새로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다른 세계의 실재적 가능성을 과학과SF 소설에서 종종 사용하는 용어인 ‘멀티버스(Multiverse)’를 통해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이 개념은 전시의 개별적인 작품을 세부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프로젝트를 포괄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가까웠다. 멀티버스는 다중우주라고 번역된다. 우주(UNI-verse)라는 단어에는 ‘유일함’과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에 멀티버스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최근에 물리학과 여러 최첨단 기술은 “세계가 우리가 생각한 실체의 전부가 아닌, 더 크고 은밀한 어떤 실체의 일부분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기한다.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 성용희(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중에서

권하윤의 이번 작업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점은 바로 이 같은 신체성에 대한 작가의 독창적인 사유이다. 사유의 중심에는 ‘우연성’에 대한 작가의 순수한 호기심이 자리하는데, 이는 몰입형 매체인 VR의 코드화된 정보들과는 다른 감각 층위, 즉 VR을 매개로 시시각각 자극되고 발현되는 신체 움직임과는 구분되는 또 하나의 감각 층위를 작품에 부여한다. 특히 예측 불가능함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이 철저히 VR 세계의 외부에서 발견될 수 있는 신체 움직임으로 향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작업 형식 전반의 구성 체계로 삼는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움직임, 차이에 대한 레토릭, 손옥주(공연학자)」 중에서

가상세계가 정교해질수록 현실세계와의 간극은 커지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양극으로 향하게 된다.때로는 다른 두 세계의 단절이 가속화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한 세계로의 과도한 몰입은 다른 세계와의 구분과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권하윤은 가상세계를 현실처럼 만들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가상현실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감각의 세계, 맹지영(독립기획자)」 중에서

자기지시적/비지시적 행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미적 형식은 바로 춤이다. 하지만 서현석은 미적인 것을 안무하는 작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또한, 작가는 공연을 통해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나마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X(무심한 연극).과 비슷한 시기에 문화역서울284에서 선보인 공연 〈안개 1〉(2021)에서도 그러했듯이, 다른 참여자들이 배제된 상태에서 관객과 수행자가 일대일로 대면케 하는 편을 선호한다. 공연 내부의 행위자로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관객이 무심결에 취하게 되는 불안(정)한 몸짓이야말로 진정 서현석의 흥미를 끄는 것이다.
---「몸짓의 영화를 위한 산책, 유운성(『오큘로』공동발행인, 영화평론가)」 중에서

서현석의 .X(무심한 연극).은 이제껏 극장 안에 누적되어 온 빛의 환영, 그리고 그에 대한 ‘정신적’ 응시에 대해 질문한다. 어찌 보면 사방으로 팽창된 가상현실을 담아 비대해진 눈으로, 하지만 정방향감각은 상실한 채 무대 한가운데 서 있는 내 몸 자체가 지금까지 재현의 욕망으로 팽창되어 온 극장의 무대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실재와 환영의 경계마저 지워진 채 방향마저 상실한 그 무감각의 몸 혹은 무대 공간 말이다.
---「지우고 다시 쓰는 극장, 연극: 증발된 것들을 위해, 이경미(연극평론가)」 중에서

절대적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명징하고 투명하게 파악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대상이 관찰자의 눈을 중심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원근법의 역설이다. 현실의 관찰자는 실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현실의 대상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내 눈의 움직임조차 고통 없이 오랫동안 고정시키지 못한다. 하나의 일관된 시각 경험, 고정된 단일 시점은 허구일 뿐이다. 본다는 행위는, 인식한다는 행위는, 그래서, 원근법이라는 시각 도구를 통해 눈앞의 세계를 재현하듯이 정연하게 도식화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유동적이며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허공에서 꺠어나다, 김윤경(독립기획자)」 중에서

〈헤일로〉(2018)는 다른 시대에 속한다. 우리가 오늘날 모더니티와 산업화에 대해 갖는 감정은 양가적이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천연자원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 환경 파괴, 기후 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산업화의 결과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만든 기계에 감탄하기보다는 자연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싶어 한다. 자연은 기계보다 더 풍요, 복잡성, 상호연결성을 갖추고 가변적이면서도 분명 더욱 연약하다. 그렇지만 자연 자체는 〈헤일로〉의 주제가 아니다.
---「불확정성, 스코어, 퍼포먼스, 레프 마노비치(문화분석연구소 디렉터,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교수)」 중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다 허상이라고 아무리 전제해도 나 자신까지도 허구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도 허구일까 라고 생각하는 이 순간의 나를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다시 위에서 언급한 ‘보는 것’과 ‘실재하는 것’의 논리로 돌아가면 나 또한 타인의 바라봄 안에서 벗어나면, 즉 누군가가 나를 봐주지 않는다면 쉽게 허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의 관계를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었고 그 지점이 본 작품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타인의 존재가 내가 보는 것에서 시작되듯, 나의 존재 또한 타인이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그렇다면 나는 나를 직접 볼 수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응시〉의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며, 엘리엇 우즈, 손미미(김치앤칩스)」 중에서

전시뿐 아니라 안무가로서의 정금형이 독립적으로 굴려갔던 다양한 퍼포먼스 작업들 안에서 그는 인체를 둘러싼 여러 정제된 동작들을 안무해왔다. 이 안무의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움직이는 동작을 제작했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들을 결정했다. 작가는 동작의 작동에 필요한 신체의 일부가 움직이는 방식, 근육과 근육이 협조하는 방식, 훈련을 통해 나아가거나 지연하는 방식 등을 탐구해왔다. 주로 혼자 해내는 일련의 안무-공연-만들기 과정에서 여러 레디메이드 재료들이 함께 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그의 안무에서의 ‘만들기’는 사물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왔다. 그는 초기 작업에서부터 레디메이드로서의 인형, 사물, 인체 더미(dummy) 등을 발견하고 구입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정금형의 프로토콜: 만들기와 좌대, 현시원(독립큐레이터)」 중에서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 속 공간은 라이다 센서를 거쳐 디지털적으로 디코딩되고, 그 정보들은 다시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뀐다. 디지털을 거쳐 세계를 읽어내는 일은 일견 낯설어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인간 삶을 둘러싼 정보들은 수많은 센서를 통해 입수되며, 우리가 세계를 인지하는 경험 안에는 온갖 종류의 디지털 디바이스가 침투해 있다. 그 센서와 디바이스들은 각자의 감각체계와 논리로 세계를 읽어내고, 우리는 이들에 깊게 의존한다.
---「세계를 감각하고 나를 인지하는 장치, 신예슬(음악평론가)」 중에서

후니다 킴은 자신의 장치에 매뉴얼을 부여함으로써 이 기계의 사용법에 대한 부단히 주의를 주고자 했다.『바라보고 읽어내는 장치』의 첫 장은 곤충의 눈에 대한 사유로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는 바라본다는 감각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눈이라는 장치의 획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모든 생명이 인간과 같은 눈을 가진 것이 아니며, 곤충의 경우 겹눈을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인지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각을 담당하는 눈-기계가 얼마나 한정된 발명품인지 깨닫게 만든다. 이어 그것의 부단한 변형과 이식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데이터스케이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오영진(문화평론가, 한양대학교 에리카 ‘기계비평’ 주관교수)」 중에서

기술이 가져다줄 가상과 초월이란 ‘메타’에 대한 동시대의 반응은 양가적이다. 가상과 초월이라는 아득한 기대에 앞서 올해 다원예술은 잠재적인 것(the virtual)과 기술의 단면으로서의 현실적인 것(the real)을 다뤄보려고 했었다. 이 잠재성과 현실성은 시간적인 흐름에서도 각각 연결된다. 들뢰즈의 구분처럼, 가상성이 상상력의 세계라면 잠재성은 확립된 영역, 확정된 세계 밖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상상, 일상적인 용도, 관습적인 재현에서 벗어난 기술-세계, 그것이 멀티버스가 제안하는 잠재성이다. 기술의 지금, 즉 이번 다원예술 개별 작업에서 보여준 현실적인 기술의 단면은 우리(혹은 산업)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잘게 쪼개진 이 현실은 헛헛함으로, 예기치 못한 오류로, 인간의 노동과 보살핌을 초래하는 요구로 작동하기도 했다. 잠재성과 잘게 쪼개진 단면들은 이렇게 순환한다. 멀티버스는 초월보다는 다원화하는, 굴곡이 있지만 평탄한, 통합보다는 여러 개로 나눠질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제안한다.
---「잠재성으로서의 멀티버스, 성용희(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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